Book Column – 과학자의 서재 (최재천)

우리는 가끔 방황을 합니다. 인생은 우리에게 각각의 나이에 맞는 과제와 목표를 줍니다. 기억은 안나겠지만, 부모님의 기대어린 눈빛 아래에서 첫번째 발자국을 내딛었을때부터, 그것을 통해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았을때부터 우리의 사회적 인생은 시작됩니다. 엄마 아빠의 질문에 몇 마디 말만 대답해줘도 영특하다는 얘기를 듣고, TV에서 본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따라추면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 합니다.

이때는 입에서 멜로디만 뱉고, 몸만 흔들면 모두가 HOT, 소녀시대, BTS, 블랙핑크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초등 학교에 들어가면서 같은 반 모든 아이들이 나와 똑같은 금쪽이들임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고, 지적 능력과 신체적 능력, 싸움 실력과 외모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고, 인기있는 사람과 인기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학교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객관적인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자아 도취와 열등감 사이를 오가며 급발진, 급정지 과정을 통해 감정 브레이크 조절법을 배우죠. 부모님 입장에서는 가장 미쳐버리는 시기입니다. 고등학생때는 입시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입시 공부라는 것이 딱딱하고, 지루하고,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주다보니, ‘이런 공부를 왜 해야하나? 이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찾아 옵니다. 대부분 이 시기에 첫번째 방황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후의 인생은 점수에 맞춰 들어간 대학과 학과, 억지로 끌려간 군대, 어쩌다 들어간 회사, 꽁깍지가 씌어서 한 결혼, 내가 낳은 것은 맞으나 유전자 조합은 신이 해주신 자식키우기, 돈은 벌고 있으나 감동이 없는 일상, 벼락 부자가 된 친구 지켜보기, 시력에서 부터 시작되는 (핸드폰과 눈의 거리가 계속 가까워지는…) 노화의 시작, 가까워지는 은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과정이 진행될 수록 박수 받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계속해서 바뀌는 환경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목표에 맞춰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고, 다시 방황도 하고, 때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우리의 인생인것 같습니다.

방황이란 새로운 환경에서 목표를 잃었을 때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남들이 던져준 목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표와 타협을 통해 조화시켜서 보다 성숙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게 해주는, 삶이라는 불을 터 크고 뜨겁게 만들어주는 불쏘시개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과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은 1954년생 생물학자, 유투버 최재천 교수의 자서전과 같은 책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사회생물학, 동물행동학, 생태학, 진화생물학을 서울대, 팬실베니아 대학교, 하버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하버드 대학교(강사), 미시간대학교, 서울대학교, 이화여대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30여권의 책을 썼으며(번역포함), 국립생태원장(2013~2016)을 역임하고, 지금도 ‘최재천의 아마존(구독자 77만명)’이라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입니다.

독서인으로서 제가 취약한 부분이 과학 분야인지라 책 제목과 저자만 보고 ‘과학책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자’라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목표로 읽게 된 책인데, 본의 아니게 이 분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제 자신의 인생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갖게 된 책입니다.

1954년의 6.25 전쟁 직후 대한민국에서 군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난 최재천 소년은 어렸을때 시골 강릉에서 자연과 벗삼아 뛰놀고, 세계 문학전집을 읽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행복하게 보내다가, 자녀의 학문적 성공을 바라던 어머니의 등쌀과 보살핌으로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와 명문중학교, 고등학교를 가게 됩니다.

공부 보다는 노는 것과 독서가 좋았던 최재천 학생은 중학교때는 한국 문학에 빠지고, 고등학교때는 문예부에서 글을 쓰며 시인을 꿈꾸다가 고3때 우연히 미술적 재능을 발견하고 선생님의 추천과 후원으로 미대에 가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 아버지의 반대를 이길 만큼 힘있는 꿈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표현합니다 ) 서울대 법대, 그리고 결국 서울대 의대로 진학 목표를 바꾸게 됩니다.

최재천 학생은 평소 공부를 안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마지막 6개월간의 시간동안 순식간에 성적순위를 바닥에서 최상급으로 올릴수 있는 무서운 집중력과 두뇌의 소유자였습니다. 부러운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해 서울대 의대 진학은 좌절되고, 재수 끝에 선생님이 정한 2지망이었던 마음에 없던 서울대 동물학과에 입학을 하게됩니다. 사진 동아리, 독서 모임, 학생회 활동에 빠져 지내다가 3학년 말에 가서 ‘이러다 내인생 아무것도 못하고 끝나겠다’는 현실적인 고민 끝에 방황을 끝내고 학과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연구실에서 <우연과 필연>이라는 사회생물학 책을 읽고 생물학에서 공부의 의미를 찾고,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마련된 유학자금으로 미국 유학을 가게 되고, 좋은 스승을 만나 생물학 및 글쓰기에 대한 배움을 얻고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 교수, 이대 교수로 활동하며 한국의 진화생물학이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합니다. 또한 다양한 저술활동과 학회 활동을 통해 ‘통섭학(분야의 경계를 뛰어넘는 학문)’의 전도사가 되며 과학의 대중화와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일생의 노력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공과는 관계가 없었던 세계문학전집, 한국 문학전집, 독서 모임 활동을 통한 경계가 없었던 독서가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 뿌리가 되었음을 책전반에 걸쳐 고백하고 있고, 자신의 아들에게 책읽는 습관을 물려준것을 최고의 재산을 물려준 것으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방황은 실패가 아닙니다. 자기답게 사는길을 찾는데 꼭 필요한 통과 의례 같은 것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최재천 교수는 이 말을 썼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드디어 그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는 자기가 있던 곳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던 사람이었고, 오래, 그리고 자주 방황했으며 자신의 길을 확고히 정한 후에는 결국 그 방황하던 시절의 인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보통 사람의 몇 배에 달하는 성과를 거두며 큰 삶을 살고 있습니다. 대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는 놀 때는 구슬 치기에도 진지했고 집중했으며, 독서 모임이든 서클활동이든 할 때는 남들이 다 인정할 만큼 치열했고 사람을 끄는 리더쉽을 발휘했다는 점입니다. 이점에서 방황과 단순 ‘현실 도피’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인트는 ‘방황’이 아니라 ‘자기답게 사는 길’이고, 자기 답게 살기 위해선 인생에서 주어진 목표를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며 내면화 시키는 ‘방황’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최재천 교수가 주는 조언이라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어린 시절부터 돌아 보고 싶은 성인, 어른의 세계가 궁금한 청소년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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