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 많이 변합니다. 세월보다 변화가 항상 먼저 달리지요. 특히 요즘은 인공지능이 출연하면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습니다. 모든 요소가 정신없이 달리며 변화하는데, 운동은 그래도 보수적인 변화만을 허용하는 듯합니다. 오늘은 골프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만히 세어보니 골프 경력이 올해로 37년이 되는군요. 참 오랜 세월 골프와 함께 했습니다. 37년전 그 당시 골프와 지금의 골프 어떻게 바뀌었나요?
약속의 무게
제일 먼저 실감하는 변화는 골프 약속의 무게입니다.
37년 전 골프 약속은 그냥 단순한 약속은 아니었지요. 절대 지존의 약속이었습니다. 일단 정해진 골프약속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은 한 바뀔 수 없다는 것이 마치 사회적 규약처럼 인식되던 때였습니다. 그런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갓길로 마구 달리는 무도한 차량 중 상당수는 골프 티오프 시간을 늦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골퍼들의 자동차였습니다.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골프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지요.그렇게 엄하고 무겁던 골프 약속이 베트남에 오더니, 참으로 한가한 약속으로 변모합니다. 마치 여유로운 시간에 정해진 차 한잔의 약속처럼 자유로워집니다. 만들어지기도 쉽지만 파기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당일 날 무슨 일이 생겼다고 취소되는 경우도 등장합니다. 티오프 시간을 맞추지 못해 자연스럽게 시작이 늦어지는 경우도 흔하게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갑니다.
예전 골프 약속은 일종의 이벤트나 행사 같은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같이 모여 운동하는 시간입니다. 이런 변화가 결코 부정적인 변질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낯선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골프 룰 적용
이 부분은 장년의 골퍼인 제가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많은 허용이 생겼으니까요. 내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엄격한 룰의 룰레에서 좀 벗어나자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명랑골프라는 핑계로 룰의 굴레를 자의적으로 벗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만한 태도는 임자를 만나면 아주 혼 줄이 납니다. 일단 게임이니 룰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법대로 진행을 주장하는 분을 만나면 머쓱해 집니다. 반대할 명분이 없지요. 법대로 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사회인이 아니니까요.
장년의 연세에도 룰대로 엄격하게 치는 진심골퍼를 만나면, 고개가 숙여지고 존경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룰을 제대로 지키시는 분들에 의해 우리 사회 정의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정식 골프룰도 변한 것을 아십니까? 예전에 금지했던 것을 많이 양보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습니다. 그 예로 티박스의 라인을 좀 넘는 부분, 벙커에서 의도하지 않은 모래 터치, 한번 스윙에 공이 두 번 맞는 것 등 많은 부분에서 룰이 골퍼를 위해 양보를 했습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그렇게 조금은 대중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인데, 이에 나이까지 더해지며 여유로운 팀룰이 가해지니 골프는 더욱 정겹고 편안한 친구처럼 다가옵니다.
의상
많은 변화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게 의상입니다. 워낙 베트남에서는 의상에 관한 제약이 별로 없지요. 한국에서는 의상에 대한 규제가 참 많았습니다. 반드시 컬러가 있는 셔츠와 긴바지, 벨트가 꼭 있어야 하고, 셔츠는 바지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밖으로 내놓으면 안되었습니다. 꼭 모자를 착용해야 하고 신발 역시 스파이크에 대한 규제가 있었지요. 20년 전쯤 말레이시아 골프장에서 벨트를 안 매고 나가다가 제지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프로들은 모자를 안 써도 되는 규정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부러워 가끔 모자를 안쓰고 프로 흉내를 내곤 하기도 했지요. 베트남에서 그런 흉내를 내다간 일사병으로 쓰러질 겁니다. 여성 골퍼들의 의상은 더욱 자유로워졌지요. 이것은 의상에 대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세대 흐름에 대한 반영인 듯합니다. 멋진 의상으로 자신있는 자세로 필드를 누비는 골퍼는 아름답습니다.
골프 클럽
제일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이 골프 클럽이 아닐까 싶네요.
37년전에는 드라이버가 막 변화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퍼시몬 나무로 된 드라이브가 사라지고 캘로웨이 사에서 빅버서라는 쇠로 된 드라이브가 출현하여 골프계를 평정합니다. 지금은 무려 5-600 cc 크기의 드라이버 고반발 헤드, 탄력도 엄청 좋은 샤프트 등이 출현하여 골프클럽도 엄청 좋아졌습니다.
아이언 로프트 각도도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7번 아이언이 36도 정도였는데 요즘은 32도 근처에서 나옵니다. 또 아래로는 60, 64도짜리 웨찌도 나오고 있으니 클럽이야 말로 가장 많이 변화한 골프 요소입니다. 골프 클럽이나 공이 엄청 발전한 것에 비해 프로골퍼들의 평균 스코어는 50년전에 비해 고작 1타 정도 좋아졌다고 합니다.
변함없는 변명
골프에 있어서 다른 요소들은 다 변해도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골프를 못 쳤을 때 나오는 변명입니다. 어제 잠을 못자서, 감기약을 먹어서, 캐디가 클럽을 잘못 가져와서, 운전을 너무 오래해서, 집에 고민 거리가 있어서, 아이들이 아파서, 집사람에게 눈치를 보여서, 새 클럽이 낯설어서 등 수백가지 변명이 아직도 변함없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젊은 이들에게는 절대로 없는 변명이 하나 있습니다. 백가지 변명 중에 그나마 가장 타당한 이유인데, 바로 “나이가 들어서” 나이를 이기는 장사는 없지요. 골프 역시 나이를 이기지는 못합니다. 나이가 들면 거리가 줄고 감각이 무뎌지고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멘탈이 좋아진다고요? 나이든 사람의 멘탈은 포기와 통합니다. 이제는 안될 것을 알기에 아등거리지 않고, 실수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지 결코 멘탈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당연히 성적이 좋을 리가 없지요.
하긴 나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버둥대는 독한 장년들이 있기는 합니다. 심심찮게 에이지 슛을 때리는 인간들,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독종들이죠.
나이 답게 살아야 합니다.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답게 무너지는 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제 받아들이고 포용하고 인정해야지요. 조금은 서글프지만 자연의 섭리를 부정할 수는 없지요.
세월 따라 골프의 모든 요소가 변하듯이, 자신도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골프는 오랜 친구로 내 옆을 지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