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Column – 느긋한 플레이

주말 오후 골프장은 늘 붐비기 마련이다. 일주일동안 일에 매진하다가 주말을 맞아 필드를 찾는 사람들도 분주하다.
이런 날은 서두르면 안 된다. 그러려니 해야 한다. 으레 늦은 팀이 앞에 걸린다는 것은 당연한 팩트라는 것은 인정하고 시작하면 늦어도 전혀 개의치 않아질 수 있다. 말은 이렇게 해도, 개의치 않은 것은 아니고 그냥 참고 넘기는 게 자신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입 다물고 있는 것뿐이다.

앞 팀에 여성 골퍼 두 명이 있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텐션이 올라간다. 아 긴 하루가 되는구나.
기다리면 길어지고, 잊고 있으면 짧아지는데 시간인 듯하다.
저렇게 느긋하게 치면 마음이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나도 저런 느긋함의 경지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좀 느리게 쳐보고 싶다.
다른 이들이 다 치는 거 구경하고 내 차례가 되면 느긋하게, 거리도 좀 열심히 재 보고 바람도 체크하고 공이 놓인 라인도 살펴보고, 핀의 위치에 따라 위험한 지역과 아닌 지역을 구분하며 명심해야 할 스윙의 다짐을 되새겨 보면서 충분히 연습스윙도 하고 다시 한번 공 뒤로 가서 위치를 정하고 차분한 어드레스를 한 후 후회 없는 샷을 날리고 싶다.

그린에서도 퍼팅 라인을 살피기 위해 그린 전체의 경사와 공에서 핀까지의 거리에 있는 사방의 경사와 홀 근처의 잔디 결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나서, 서너 번의 가상 퍼팅으로 공이 핀을 향해가다가 홀안으로 사라지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들어간다는 확신을 심고 가벼운 리듬으로 퍼터 스퍼트에 공을 때리고 싶다.

그리고 천천히 공을 짚고 공에게 감사를 전하고 친절하게 캐디에게 퍼터를 전한 후 여우로운 걸음으로 다음 홀로 항하면서 다음 홀의 진행을 계획하고 싶다.
새로운 홀이 시작되면 티 그라운드에서 핀의 위치를 파악하고 어느 방향으로 드라이버를 보내야 그린 공략이 편해지는지 확인하고 홀 전체길이를 계산하여 두번째 샷을 어디서 몇번 아이언으로 치겠다는 작정을 하고 드라이버를 들고 공에 접근한다.

멋지지 않은가? 이렇게 집중하며 시간에 구애 받지 않으며 치고 싶은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혼자 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반자와 속도를 맞춰서 함께 가야하고 가끔 말벗도 해야 하고 실수한 동료를 위로하기도 해야 하니 내 공에만 집중하며 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느긋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동반자가 적을수록 좋다. 아예 없는 것은 안되고, 4명은 너무 많다는 느낌이다. 4명이 되면 그들의 공 치는 모습을 제대로 챙겨 보기도 힘들어진다. 자연스럽게 소원해지는 동반자가 생겨서 그의 훌륭한 샷에 치하를 보내는 것도 잊기 일수이고. 때로는 안타까운 샷에 애석함을 표하는 것도 기회가 사라진다.

2명이면 너무 상대에게 집중해야 하고, 행여 어색함이 생기는 경우 피할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3명이 좋다. 3명은 대화는 한 주제로 이어지는데 4명은 두 명씩 다른 화제로 대화가 갈릴 수 있다.
동반자가 적으면 천천히 갈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다. 웬만큼 늦지 않으면 마샬이 다가와 눈총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천천히 여유롭게 라운딩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인간이 실제 필드에서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코웃음이 나온다. 여유는커녕 너무 서두르다 못해 공이 내가 다가서는 것을 무서워할 정도다. 공만 보면 다가가자 마자 바로 때린다. 그래놓고는 남들이 치기를 기다리며, “발리 쳐라. 공 달아난다”며 주문을 외운다. 이러니 공이 제대로 갈 턱이 없다. 앞 팀이 좀 늦어지면 공만 보면 때리던 리듬이 완전히 깨져버려 개판이 된다. 자업자득이다.
이제 나이에 맞게 플레이를 하고 싶다. 여유롭게 치고 느긋하게 즐기고 싶다.
나이가 차면 천천히 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공부 좀 한 학자들이 말한다. 신체적으로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면 정신적으로도 마음의 속도 역시 느려지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속도란 무슨 의미인가? 마음의 속도를 진짜 조절할 수 있는가? 아마도 이는 생각의 속도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 역시 자연스러운 반응 현상으로 나오는데 제어가 가능할까? 이런 저런 사고가 꼬리를 이어간다. 결국 마음의 속도를 늦추라는 것은 생각을 한 번 더 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생긴다.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맞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과정을 거친다면 마음의 속도도 느려지고 그에 따라 신체의 반응 속도 역시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다보면 너무 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빨리 반응하는데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까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런 우려는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들도 감안하는 지 요즘은 <deep think> 라는 기능이 생겼는데, 바로 다시 한번 생각하며 답이 맞는지 검토하는 기능이다. 그것을 통해 인공지능도 많이 성숙해졌다는 말을 듣는다.

결국 우리도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 실천하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할 줄 안다면, 실수도 줄이고 마음의 속도도 늦추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머리가 허연 늙은이가 잽싸게 스윙을 하고 총총 걸음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다.
이제 느리게, 여유롭게 움직이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들의 세상은 어떤 세계인지 더 늦게 전에 경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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