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있는 사람들, 보이스피싱·마약·자금세탁같이 나쁜 짓 한 범죄자 맞아요. 하지만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되지 않고 있고, 신변 문제가 생겨도 대사관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캄보디아 이민청 수용시설에 구금된 제보자 A씨의 호소에는 자업자득의 처지와 생존의 위협이 교차한다.
비인간적인 과밀 수용과 마약 유통, 현지 경찰의 금품 갈취 등에 방치된 이들은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수용자들은 “영사에게 연락해 마약 밀반입 상황에 대해 계속해서 신고했지만 9일이 지나서야 답장을 받았다”거나, “대사관은 전화 연결도 잘되지 않고 어쩌다 연락이 돼도 ‘캄보디아 측에 요청하겠다’는 얘기만 할 뿐 변화가 없다”고 주장했다.
◇ “억울한 시민 아니지만”…정부는 딜레마
해외 수감자에 대한 영사 조력 논란은 과거에도 종종 불거졌다.
2004년 평범한 주부가 마약 밀수범에 속아 프랑스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른바 ‘집으로 가는 길(장미정씨 사건)’ 당시 대사관의 소극적 대응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하지만 캄보디아 사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용자 대다수는 억울한 시민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불법 도박 등 초국가적 중범죄에 연루된 피의자이기 때문이다.
동정 여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캄보디아 정부의 엄단 기조까지 맞물리며 우리 정부의 개입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인터폴 적색수배자의 경우 캄보디아 정부가 최근 들어 단순 추방이 아닌 현지 재판 절차까지 밟아야 하는 ‘범죄인 인도 청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사법주권의 문제라 무작정 ‘빨리 돌려보내라’고 압박할 수 없는 셈이다. 대사관 직원이나 파견 경찰이 함부로 현지 수용시설 내부를 조사할 권한도 없다.
외교부는 영사 조력을 소홀히 했다는 수용자들 주장에는 선을 긋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대사관이 수용 중인 국민을 수시 접견하고 있으며, 수용소 과밀 등 여러 불편 사항을 당국에 전달하고 필요한 조치를 적극 요청해 왔다”고 해명했다.
마약 유통 의혹에 대해서도 “수용시설에 마약이 밀반입됐다는 제보 등도 캄보디아 당국에 전달하고, 이러한 문제나 우리 국민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사관의 사실 확인 요청에 캄보디아 당국은 마약 유통 등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고 한다.
◇ 전문가 “인도적 처우는 별개…적극적 외교 노력 필요”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범죄를 저지르다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한국인은 143명이다.
올해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1월 전세기를 띄워 73명을 데려왔으며, 2∼4월 집중 송환 기간에는 42명이 추가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들 대부분은 사기, 절도, 도박 등의 혐의를 받지만, 송환을 기다리며 무법천지 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마약이라는 또 다른 굴레까지 쓰고 돌아올 위험이 커졌다.
재외 범죄인 인권 문제를 넘어, 송환 이후 국내 마약 범죄 확산이라는 2차 치안 위협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사법주권의 벽에 막혀 있다 하더라도, 자국민 보호라는 정부의 기본적 책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 아시아 지역 전직 대사는 연합뉴스에 “아무리 잘못을 한 사람이라도 인권 보장과 인도적 처벌을 위해 지속적인 영사 조력을 해야 한다”며 “마약 반입 등 위험 요소가 있다면 영사 조력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정현 교수는 “대사관이 필요한 조치를 강제할 힘이 없어 한계가 있지만, 권리 침해 여부를 살피고 캄보디아 측에 협조를 요청하는 원칙적인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