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금융권에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의 엄격한 세무 관리와 자산 신고 의무화 조치까지 맞물리면서 민간 저축 예금의 일부가 은행 시스템을 빠져나가는 자금 이동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 이처럼 이탈한 자금은 정기 예금 대신 증시와 부동산 등 자산 시장으로 유입되며 전반적인 총수요 진작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일 베트남 금융·경제 전문 매체 베트남파이낸스(VietnamFinance)가 주최한 ‘2026년 부동산 재정 트렌드 진단’ 세미나에 참석한 레쑤언응히아(Lê Xuân Nghĩa) 전 국가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현행 베트남 경제의 실질적인 자금 흐름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이같이 밝혔다. 응히아 박사는 최근 발표되는 공식 통계 지표들이 경제 생태계 내 실제 투자 자금의 실체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외국인직접투자(FDI)나 정부의 공공투자 자금 중 상당액이 인허가 지연이나 집행 프로세스 대기로 인해 실물 경제에 바로 주입되지 못한 채 여전히 은행권 내에 묶여 있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민간 기업의 정관 자본 증액이나 대규모 투자 공언 역시 수년에 걸친 장기 로드맵에 따라 분할 이행되므로 실질적인 생산 자금 투입 규모는 훨씬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두드러진 거시 경제적 현상으로 개인 저축 예금의 증가세 둔화와 이탈을 꼽았다. 응히아 박사는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실질 예금 금리가 낮아진 데다, 당국이 세무 관리를 옥죄고 개인 자산 및 소득에 대한 신고 및 규제를 강화하면서 자산 노출을 꺼리는 민간의 자금 한 축이 은행 시스템 외부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2년 넘게 외국인 투자자들이 베트남 증시에서 역대급 매도 우위를 기록하며 자금을 뺐음에도 국내 주식시장이 견고한 상승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예금 대신 대체 투자처를 찾아 나선 민간 자본의 강력한 국내 유입 덕분이라고 짚었다. 이 같은 자금 이동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래를 활성화하며 경기 전반의 총수요를 자극하는 순기능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부동산 시장 전망과 관련해 응히아 박사는 정부와 국회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 기조 덕분에 공급 측면이 크게 개선되고 있으며, 대기 수요도 여전히 견고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과거와 같은 광범위하고 비이성적인 ‘시장 과열’이나 급격한 폭등세가 전방위로 재현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과거처럼 전국적으로 아파트나 토지 가격이 20~30%씩 무차별 폭등하는 장세는 오기 어렵다”며 “현재 nền kinh tế(경제 체질) 내의 가용 자금은 부동산뿐만 아니라 정부의 강력한 인프라 확충 정책, 제조업, 무역, 서비스업 등 전 산업 분야로 분산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베트남 정부가 향후 고성장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총사회투자율을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34% 수준에서 향후 40% 가까이 끌어올릴 계획인 만큼, 민간의 숨은 자본을 제도권 투자로 이끌어내기 위한 신개념 금융 매커니즘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베트남 민간 경제 체질상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사재기해 보관 중인 실물 금(金)이나 가치 축적 자산의 규모가 막대하므로,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연구 중인 ‘민간 보유 금 수신 및 금융 활성화 모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러한 민간 자산 유치 사업은 개인의 재산 안전과 국가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도록 매우 정밀하고 엄격한 당국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응히아 박사는 중장기적으로 베트남 부동산 시장이 경기 성장, 공공투자 확대, 교통 인프라 개선에 힘입어 전반적인 하방 지지력을 확보하겠지만, 철저한 대차대조표 분화와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최종 발언을 통해 “시장 전체가 차갑게 얼어붙는 일도 없겠지만, 반대로 묻지마식 투기 광풍이 불지도 않을 것”이라며 “똑똑해진 민간 자금은 인프라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고 실거주 및 실이용 가치가 증명된 확실한 핵심 프로젝트로만 정밀하게 쏠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