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소비자들이 흔히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서구권 및 선진국 브랜드로 오인하고 사용하는 대형 글로벌 가전·IT 브랜드 중 상당수가 사실은 중국 자본에 통째로 인수되었거나 처음부터 중국에 뿌리를 둔 ‘국가대표급’ 중국 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글로벌 외식 및 가전 시장 소식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이 급변하면서 소비재 테크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이 미국과 일본의 헤게모니를 빠르게 잠식했다. 이 과정에서 왕년의 유명 서구권 브랜드들이 껍데기(브랜드명)만 남긴 채 속알맹이는 중국 대기업으로 소유권이 대거 넘어갔다. 베트남 가전 매장이나 스마트폰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위장된 중국 브랜드’들의 실체를 짚어봤다.
전 세계에 촘촘한 오피스 네트워크를 두고 서구권 시장에서 압도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레노버가 사실은 순수 중국계 기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의외로 많지 않다.
1984년 중국 베이징에서 ‘레전드(Legend)’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중국 내 컴퓨터 대중화를 이끈 주역이다. 2003년 명칭을 레노버로 바꾼 뒤 2005년 미국 IBM의 PC 사업부와 전설적인 비즈니스 노트북 라인업인 ‘씽크패드(ThinkPad)’를 통째로 인수하며 세계 경영사를 새로 썼다.
이 승부수를 발판 삼아 레노버는 2013년 전 세계 PC 공급량 1위 자리에 올랐으며, 2025년 기준 현재까지도 미국의 HP, 델(Dell), 심지어 애플(Apple)을 제치고 글로벌 컴퓨터 출하량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14년 IBM의 x86 서버 사업부를 추가 인수한 데 이어, 최근 2026년에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피닉스 테크놀로지스(Phoenix Technologies)의 펌웨어 사업까지 인수하며 기술 내재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0년대 폴더폰 시절 ‘레이저(Razr)’ 스마트폰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토로라는 과거 애플과 아타리 등에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급하던 미국 하이테크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휴대전화 사업부인 ‘모토로라 모빌리티’는 2012년 미국 구글(Google)에 125억 달러에 매각되었다가, 불과 2년 만인 2014년 중국 레노버에 29억 1천만 달러에 다시 팔리면서 공식적으로 중국 자본의 품에 안겼다. (보안 및 IoT 솔루션을 제공하는 ‘모토로라 솔루션’은 여전히 미국 기업으로 남아있다.)
중국계 자회사로 편입된 이후 모토로라는 가성비 좋은 폴더블폰 라인업을 앞세워 중남미 시장을 공략, 현재 브라질 스마트폰 시장에서 약 30퍼센트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비록 본사는 여전히 미국에 있고 미국 브랜드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제품의 설계와 조립, 출하는 전량 중국에서 이뤄진다. 레노버는 자사의 기존 스마트폰 브랜드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모토로라 브랜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미국 가정의 주방을 책임지며 가장 가치 있는 미국 기업 중 하나로 꼽혔던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가전 부문(GE Appliances) 역시 현재는 중국 소유다.
원래의 GE는 가전 부문을 전면 정리하고 현재 GE 에어로스페이스(항공), GE 버노바(에너지), GE 헬스케어 등 3개 독립 회사로 쪼개졌다. 핵심이었던 가전 사업부는 지난 2016년 중국의 가전 공룡 하이아(Haier) 그룹에 54억 달러(한화 약 7조 원)에 통째로 매각됐다.
하이아는 미국 가전 시장에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홈페이지와 광고에 ‘가장 미국적인 가전’, ‘미국 내 제조’라는 이미지를 교묘하게 투영하는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지배구조상 꼭대기에는 중국 하이아 그룹이 있다. 하이아 그룹은 미국 가전 부문의 선전에 힘입어 2025년 연간 매출 3천23억 5천만 위안(한화 약 57조 원, 미화 440억 달러 이상)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며, 북미 시장에서 4년 연속 시장 선두 브랜드 자리를 지켰다고 발표했다.
베트남의 대형 전자제품 마트나 쇼핑몰 가전 코너에서 삼성, LG와 함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TCL과 하이센스 역시 전형적인 중국 토종 기업들이다.
1981년 설립된 TCL은 2003년부터 전 세계 디스플레이 가공 공장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과거 삼성전자의 LCD TV 위탁 생산(OEM)을 맡기도 했던 이 회사는 2013년 기준 중국 1위, 글로벌 3위의 LCD 패널 제조사로 성장했다. 미국 로쿠(Roku) 플랫폼과의 합작을 통해 스마트 TV 시장의 맹주로 떠올랐으며, 과거 프랑스 브랜드였던 알카텔(Alcatel)을 인수해 2016~2020년 기간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위탁 생산하기도 했다.
1969년 청도 제2라디오 공장으로 시작한 하이센스(Hisense) 역시 글로벌 TV 출하량 4위를 달리는 중국의 대기업이다. 하이센스가 개발한 자체 TV 운영체제(OS)인 ‘비다(Vidaa)’는 2024년 기준 한국 삼성전자의 타이젠(Tizen) OS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설치된 TV 플랫폼으로, 일본 도시바(Toshiba) 스마트 TV 등에도 탑재되고 있다. 이들은 중국 청도에 80 헥타르 규모의 대형 정보산업단지를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2억 6천만 달러를 투자해 메히코(Mexico) 누에보레온주에 대규모 북미 전진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등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