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중부 지역에 체류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가던 미국의 저명한 해양생물학자가 자택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8일 필리핀 국립경찰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밤 필리핀 네그로스 오리엔탈주 시불란군의 해안가 자택에 복면을 쓴 남성 3명이 난입했다. 이들은 당시 필리핀인 동반자와 함께 있던 미국 국적의 켄트 카펜터(73) 교수에게 접근해 머리에 총을 쐈으며, 카펜터 교수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괴한들은 현장에서 노트북과 배낭, 현금 등을 챙겨 달아났다. 국립경찰 대변인은 현장에 있던 동반자가 부상을 입고 치료 중이며,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범행 동기와 용의자 신원 파악을 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살된 카펜터 교수는 미국 버지니아주 노포크에 위치한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의 생물과학과 교수로 1996년부터 재직해 왔다. 그는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의 산호초 지대인 ‘산호 삼각지대’와 필리핀 해역을 중심으로 해양 보존 생물학을 연구하며 전 세계 해양 생태계 보호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석학이다. 대학 측은 그가 장기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필리핀에 체류 중이었으며 오는 9월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총장은 성명을 통해 그의 학문적 열정이 전 세계에 큰 영감을 주었다며 비극적인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카펜터 교수는 생전 연구를 통해 지구 온난화가 통제되지 않을 경우 100년 이내에 지구상의 모든 산호초가 멸종할 수 있으며, 이는 해양 생태계 전체의 붕괴와 엄청난 연쇄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의 필리핀과의 인연은 1970년대 평화봉사단 활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1976년부터 필리핀 실리만 대학교와 협력해 해양 연구를 지속해 왔다. 실리만 대학교와 현지 환경 단체들은 그가 필리핀 해양 생물 다양성에 대한 글로벌 인식을 바꾼 독보적인 과학자였다며 추모 성명을 발표했다. 필리핀 경찰 당국은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다루고 있으며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