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여행의 필수품인 여권.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신분증이지만, 국가마다 그 겉면의 색상은 제각각이다. 흔히 여권 색상에 국제적인 규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여권 색상에는 정해진 공식 규정이 없다. 다만 각국은 경제적 연합, 종교적 배경, 혹은 실용적 이유를 근거로 네 가지 주요 색상 중 하나를 선택하고 있다.
14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외신 등에 따르면, 여권의 재질이나 크기, 폰트 등에 대해서는 기계 판독의 편의성을 위해 권고안이 존재하지만 표지 색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각국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여권을 제작하는 업체 관계자들은 “기술적으로는 보라색이나 밝은 노란색 여권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부분의 국가는 어두운 계열의 파랑, 빨강, 초록, 검정을 선택하는 것일까.
가장 흔한 파란색 여권은 주로 ‘신세계(New World)’를 상징한다. 미국을 비롯해 호주, 아프가니스탄 등 약 90개국이 사용 중이다. 특히 남미 공동시장(메르코수르)이나 카리브 공동체 소속 국가들이 주로 파란색을 채택하고 있어 경제적 연합체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붉은색(버건디) 여권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상징과도 같다. 과거 영국은 EU 회원국일 때 버건디색 여권을 사용했으나, 브렉시트(EU 탈퇴) 이후 다시 파란색으로 회귀했다. 반대로 EU 가입을 희망하는 터키는 연합국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여권 색상을 빨간색으로 변경했다. 스위스는 국기 색상에 맞춰 빨간색을 선택한 사례다.
초록색은 이슬람권 국가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모로코 등 많은 이슬람 국가가 선지자 무함마드가 가장 좋아했던 색이자 이슬람의 상징인 초록색을 여권에 담았다. 종교적 이유 외에도 멕시코나 바티칸 등 약 40개국이 각자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초록색을 사용한다.
가장 희귀한 검은색 여권은 뉴질랜드, 타지키스탄 등 10개국 미만에서만 사용한다. 검은색은 국장이 가장 선명하게 대비되어 보이고 오염이 잘 타지 않는다는 실용적인 장점이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국가 상징색인 검은색을 반영한 결과다.
단일 국가 내에서도 여권 색상이 나뉘는 경우도 있다. 인도는 일반인(파랑), 공무원(흰색), 외교관(빨강)으로 색상을 구분해 신분을 나타낸다. 전문가들은 “어두운 색상은 공식적인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잦은 출입국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모나 오염을 가려주는 데 실용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