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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릇 무게가 곧 지갑 무게
– 180가지 토핑의 환상과 냉동의 현실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건물 지하 쇼핑몰을 걷다 마주친 드래곤 핫팟(Dragon Hot Pot)의 붉은 간판은 중국산으로 보이는 본 브랜드가 베트남에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냉장 진열대 앞에 선 손님들은 자신만의 그릇을 채우느라 여념이 없다. 이곳의 방식은 명확하다. 골라 담고, 무게를 재고, 육수를 선택하면 끝이다.
180가지 토핑과 12시간의 육수
중국계 호주인 창업자 루이스 쿠오(Louis Kuo)가 중국 한위안(Hanyuan) 산지에서 직접 선별했다는 촨자오(Sichuan pepper, 花椒)는 이 집의 시그니처 육수를 떠받치는 핵심이다. 높은 고도에서 자란 이 붉은 산초는 일반적인 촨자오의 얼얼함과는 다르다. 혀에 닿는 마비감이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퍼지며, 뒷맛에 남는 향이 은은하다.
23가지 향신료와 함께 12시간 이상 돼지뼈와 소뼈를 우려낸 시그니처 육수는 첫 모금부터 복잡하다. 스타 아니스(star anise)의 단맛, 정향(clove)의 따뜻한 향, 블랙 카다몸(black cardamom)의 스모키한 풍미가 겹겹이 쌓여 있다. 매운맛(辣)과 얼얼한 마비감(麻)의 균형은 레벨 2 정도가 적당하다. 그 이상은 순수한 고통의 영역이다.
산미가 강한 이들이라면 핫앤사워 육수도 나쁘지 않다. 중국식 식초의 신맛과 칠리 오일, 쓰촨 핫앤사워 소스가 더해진 이 육수는 시그니처보다 훨씬 직설적이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즐기는 타입이라면 드래곤 핫(Dragon Hot) 레벨까지 시도해볼 만하다. 매운 걸 못하는 이들을 위한 콜라겐 뼈 육수는 진하고 고소하지만, 솔직히 이 집에 와서 그걸 시키는 건 기회비용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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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앞에서의 선택
냉장 진열대는 제법 볼만하다. 우동, 쌀국수, 당면, 라면까지 12종의 면류가 있고, 각각의 식감이 확연히 다르다. 우동은 쫄깃하고 탱글한 식감을 원할 때, 넓적한 쌀국수는 육수를 잘 머금고 싶을 때 선택하면 된다. 소고기는 여러 부위가 준비되어 있는데, 얇게 썬 양지(brisket)는 육수에 익히면 부드럽게 풀어진다. 수입 소고기라는 설명이 붙어 있지만, 신선도는 날에 따라 다르다는 게 함정이다. 어떤 날은 선홍빛이 도는 신선한 고기가, 어떤 날은 색이 탁한 냉동육이 나온다. 해산물도 마찬가지다. 새우, 오징어, 홍합, 가리비가 있는데, 신선할 때는 탱글한 식감이 살아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물컹하고 비린내가 올라온다.
개구리 다리(frog legs)와 닭발(chicken feet)은 도전 정신이 있는 이들을 위한 선택지다. 닭발은 콜라겐이 녹아나와 국물에 걸쭉함을 더하고, 개구리 다리는 담백한 닭고기 같은 맛이다. 한때 있었다는 오리 혀(duck tongue)는 아쉽게도 지금은 없다. 각종 어묵류와 피시볼은 아시안 훠궈의 클래식이다. 버섯 돼지고기 완자는 육즙이 배어나오며, 중국식 도넛(Chinese doughnut)은 육수를 흠뻑 머금어 폭신하다. 두부는 종류별로 있는데, 부드러운 실크 두부부터 단단한 프라이드 두부까지, 취향껏 고르면 된다.
야채는 솔직히 아쉽다. 어떤 리뷰어의 표현처럼 “썩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들거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배추, 양배추, 숙주, 각종 버섯류가 있지만, 픽할 때 잘 살펴봐야 한다. 신선한 채소를 원한다면 오픈 직후나 피크타임 직전에 가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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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는 가격이다
이곳의 무게 그릇은 특이 하다, 양은 냄비같이 생긴 냄비에다가 먹을 재료를 담으면 된다. 양은냄비가 먹는 그릇이 된다고 오해하면 안된다. 이것은 재료만 담는 냄비일뿐이고, 내가 먹을 완성된 음식은 중국식 그릇에 따로 나온다. 가격은 100g당 33,800동. 즉 1kg에 338,000동이다. 야채는 229,000동/kg, 육류와 해산물은 399,000동/kg로 책정되어 있다는 메뉴 설명과는 약간 다른 계산법인데, 아마 혼합 가격인 듯하다. 문제는 그릇이 생각보다 빨리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적당히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계산대에 올리면 500~600g이 나온다. 여기에 육수 선택하고 서비스 비용 더하면 한 끼에 15만~20만 동은 기본이다. 푸짐하게 먹으려면 30만 동 이상 각오해야 한다.
가성비 논란은 여기서 시작된다. “저렴하다”는 평과 “인생 최악의 가격”이라는 평이 공존하는 이유는, 결국 본인이 무엇을 얼마나 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야채와 면 위주로 담으면 합리적이지만, 고기와 해산물을 실컷 담으면 일반 훠궈집보다 비쌀 수 있다.
식당은 넓고 깨끗하다. 현대적인 도시 감성과 아시안 전통 분위기가 섞여 있는데, 조명은 은은하고 좌석 배치는 여유롭다.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고, 여럿이 와서 둘러앉아 먹기에도 좋다. 예약 불필요하다 그냥 와서 담으면 된다. 직원들은 대체로 친절하다. 초행자에게 시스템을 설명해주고, 매운맛 레벨 선택도 도와준다. 다만 직원의 태도 문제는 개별 케이스로 나타나는거 보면은 교육은 아직 부족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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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평가의 이유는?
이 집의 평점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건 우연이 아니다. 재료의 신선도가 일정하지 않고, 가격에 대한 기대치가 사람마다 다르며, 무엇보다 “냉동식품 마라탕”이라는 본질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냉동 재료를 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량으로 운영되는 체인의 숙명이다. 하지만 그걸 “사기”라고 느낄지, “합리적 시스템”이라고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몫이다. 육수 자체는 제법 공들인 흔적이 있고, 매운맛 조절과 토핑 선택의 자유도는 분명한 장점이다.
신선한 재료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혼자서도 빠르게 마라탕을 즐기고 싶고, 자기 취향대로 커스터마이즈하는 재미를 원한다면 나쁘지 않다. 특히 생전 처음 먹어보는 재료들을 한두 조각씩만 담아 시도해볼 수 있다는 건, 일반 훠궈집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다.
전통 사천 마라탕은 식탁에서 직접 끓여 먹지만, 북경식은 주방에서 조리해서 그릇에 담아 나온다. 드래곤 핫팟은 후자를 따른다. 본인이 고른 재료를 주방에서 익혀주면, 5~7분 후 뜨끈한 그릇이 나온다.
면은 적당히 익었고, 재료들은 육수와 잘 어우러진다. 첫 숟가락을 뜰 때의 그 얼얼하고 뜨거운 느낌, 코를 찌르는 향신료의 향, 혀에 남는 촨자오의 마비감이 이 집의 정체성이다. 고추기름을 추가하면 더 자극적이지만, 웬만하면 처음엔 기본으로 먹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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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는 타이밍이다
드래곤 핫팟은 완벽하지 않다. 재료의 신선도는 들쭉날쭉하고, 가격은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며, 냉동식품이라는 한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개인 마라탕이라는 컨셉, 180가지 토핑의 선택지, 12시간 우린 육수의 깊이는 무시할 수 없다.
호주에서 시작하여 9개 매장을 운영하는 체인이 베트남에 상륙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완벽한 맛을 기대하기보단, 색다른 경험과 개인화된 선택을 즐기러 가는 곳. 그 정도의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단, 피크타임 직후나 영업 막바지는 피하길. 신선도는 타이밍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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