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쭝탄환경엔지니어링개발 대표
대기업 법인장 그만두고 창업 4년 만에 50명 고용… “욕심 안 부리고 오래 가는 게 비결”
2021년 10월 1일. 대기업 법인장 명함을 반납하고 호찌민 거리를 걷던 55세 남자가 있었다. 회사가 매각되면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3년 뒤, 그는 50명의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사장이 됐다. 10개 산업 현장을 관리하고, 대한보증증권에서 담보 없이 신용만으로 증권을 발급받는 기업인이 됐다.
지난 10월 2일 호찌민시 쭝탄 (Trung Thanh) 사무실에서 만난 황인호(55) 대표의 이야기다. 30년 경력의 물 전문가인 그는 “욕심 안 부리고 오래 가는 게 비결”이라고 했다. 그 뒤엔 아내에게 빌린 돈으로 직원 월급을 챙긴 초창기의 악전고투가 있었다.
태광그룹 프로젝트로 베트남 첫 발
황 대표가 베트남을 처음 밟은 건 2015년 3월 24일이었다. 당시 그는 휴비스워터(Huvis Water) 베트남 법인장으로 발령받아 태광(TaeKwang)그룹의 TMTC 공단 폐수처리장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호찌민에 왔다.
“태광그룹 박연차 회장님이 생존해 계실 때였습니다. 목바이(Mộc Bài) 쪽 캄보디아 국경 인근에 TMTC 공단을 건설하신다는 정보를 입수했죠. 2만톤 규모의 폐수처리장과 1만9천톤 규모의 용수처리장 프로젝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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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학원과 군대를 마치고 1995년 8월 한국정수공업(Hankook Jungsoo Industry)에 입사했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수처리 엔지니어링 회사였다. 특히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에 들어가는 초순수(Demi Water,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된 물) 설비 분야의 전문가였다.
“발전소 터빈을 돌리는 증기가 깨끗하지 않으면 터빈 브레이드(날개)에 스크래치가 나서 수천억원짜리 장비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H2O만 존재하는, 이온 성분조차 없는 완벽한 물이 필요한 거죠.”
그가 베트남에 온 것도 이런 전문성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정수의250명 엔지니어 가운데 폐수처리와 초순수분야를 모두 아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2015년 11월, 그는 박연차 회장 앞에서 계약서에 사인했다. 1990만 달러(약 22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2016년 1월 1일 휴비스워터 베트남 법인을 정식 설립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회사는 팔리고, 그는 백수가 됐다
하지만 순탄하지 않았다. 휴비스워터는 모회사인 휴비스가 삼양사와 SK가 합작한 상장사였는데, SK 계열의 TSK코퍼레이션(TSK Corporation)에 매각됐다. 그는 TSK 베트남 법인장으로 승진했고, 베트남에서 M&A(인수합병) 사업을 주도했다.
“TSK가 비와세(BIWASE, 빈증성 상하수도 공사)라는 HOSE(호찌민주식시장) 상장사의 지분7.8%를 확보해서 3대 주주가 됐습니다. 빈증성의 하수처리장, 정수장, 쓰레기 매립장을 모두 관리하는 환경 기업이죠.”
그러나 2019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TSK코퍼레이션이 에코비트(ECORBIT)라는 더 큰 회사와 합병하면서, 모회사의 주도권이 글로벌 사모펀드인 KKR코리아의 손에 넘어갔다.
“본사에서 통보가 왔습니다. ‘해외 M&A는 하지 않는다. 사업개발실 인원은 모두 나가라.’ 중국 법인도 없애고, 저더러도 나가래요. 그래서 2021년 10월 1일자로 백수가 됐습니다.”
락다운이 풀린 직후였다. 그는 실업자 신세로 호찌민 거리를 배회했다. 그때, 평소 알고 지내던 동나이(Đồng Nai)성의 정우비나(Jungwoo Vina)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황 대표, 우리 폐수처리장 운영관리를 현지 업체가 하고 있는데 계약이 끝나간다. 당신이 놀고 있으니 한번 해볼래?’ 그래서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2021년 겨울, 쭝탄이 탄생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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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이라는 이름에 담은 경영 철학
쭝탄(Trung Thanh)은 베트남어로 ‘충성’을 뜻한다. 황 대표는 회사 이름에 자신의 경영 철학을 담았다.
“직원을 리크루팅할 때 여러 가지를 보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로열티(Loyalty·충성심)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 충성을 약속했습니다. 첫째 고객에게 충성하겠다. 둘째 직원에게 충성하겠다. 셋째 가족에게 충성하겠다.”
그의 충성은 말뿐이 아니었다. 창업 초기 자금이 부족할 때 개인 돈을 회사에 쏟아부었다. 아내에게 빌린 돈도 있다.
“직원들에게 맨 처음 한 말이 있습니다. ‘절대 밀리면 안 되는 게 월급과 사회보장이다. 의료보험 못 받으면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겠냐. 돈이 부족하면 바로 얘기해라.’ 지금도 매달 50명에게 제 손으로 직접 급여를 줍니다.”
이런 원칙 덕분에 2025년 올해 처음으로 대한보증증권에서 하자이행증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지난 3년간의 재무제표가 우상향 곡선을 그렸고, 실적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예전엔 은행에 돈을 Depo(담보) 맡기고 증권을 끊어와야 했습니다. 이젠 회사 신용만으로 증권이 나와요. ‘아, 이 회사는 망하지 않겠구나’ 인정받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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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가격의 비밀… “조금씩 먹고 오래 간다”
쭝탄의 가장 큰 경쟁력은 가격이다. 황 대표는 베트남 현지 업체보다도 25% 저렴한 가격에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어떤 공장에 갔더니 현지 회사가 운영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가격의 75%에 하겠다고 했더니 법인장님이 깜짝 놀라더군요. ‘정말 이렇게 할 수 있냐?’ 저는 수주했고, 지금도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결이 뭘까. 그는 “조금씩 먹고 오래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저는 법인장을 10년 넘게 했습니다. 내 비즈니스니까 한 방에 큰 돈을 벌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벌면서 오래 가려고 합니다. 공자님 말씀이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먼 사람이 찾아온다)’잖아요.”
실제로 그의 고객 확보 방식은 독특하다. 과도한 영업보다는 현장 관리에 집중한다.
“현장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노티스를 붙입니다. ‘이 장비가 고장났습니다. 언제까지 고치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고객이 보기에 ‘아, 이 현장은 관리되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좋은 레스토랑 화장실에 청소 기록지가 있는 것처럼요.”
이런 평판이 쌓이면서 소개가 이어졌다. 바리아 붕따우(Bà Rịa-Vũng Tàu)성의 한 공장에서 문제를 해결해주자, 그 공장을 지은 건설사에서 연락이 왔다. 빈증성 다른 공장의 폐수처리장 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해결 중이다.
시스템으로 일하는 조직
황 대표는 현재 동나이, 빈증성, 빈푹성, 롱안성 등에 약 10개의 현장을 운영한다. 총 직원 50명 중 8명의 엔지니어가 각 현장에 배치돼 있다. 프로세스 엔지니어, 전기 엔지니어, 작업반장이 팀을 이뤄 여러 현장을 담당한다.
“매일 아침 각 현장에서 보고가 옵니다. ‘오늘 우리 현장의 COD(화학적 산소요구량)는 841ppm에서 82ppm수준으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약품 사용량은 몇 %입니다.’ ‘유량은 얼마입니다’ 이런 식으로 엔지니어마다 담당 데이터를 보고합니다.”
그는 이를 ‘크로스 체크’라고 표현했다. 한 사람의 보고만 믿지 않고 여러 경로로 확인한다는 뜻이다.
“제가 몸은 하나인데 10개 현장을 매일 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시스템이 일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잘로(Zalo·베트남 메신저)로 8개 화면을 분할해서 영상통화를 하기도 합니다. 엔지니어가 아닌 직원의 말을 들었으면, 다시 현장에 전화해서 엔지니어에게 확인하고요.”
약품 구매도 체계적이다. 한 달에 두 번씩 10여 개 업체에서 견적을 받아 가격을 비교한다. 한국, 중국, 베트남 업체를 모두 검토해 최적의 선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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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물 산업의 오해와 진실…한국보다 엄격하다
황 대표는 베트남 물 산업에 대한 한국인들의 오해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람들은 ‘베트남은 후진국이니까 환경 규제가 느슨하겠지’ 생각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 9월부터 적용되는 개정된QCVN 40(산업폐수에 관한 국가규정)에서는 무려 61개 항목을 관리합니다. 한국은 2019년에 개정해서 56항목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COD(Chemical Oxygen Demand·화학적 산소요구량, 유기오염물질을 측정하는 지표) 측정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 한국과 일본은 망간법(Permanganate Method)을 쓰는데,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하는 크롬법(Dichromate Method)을 베트남도 사용하고 있더라구요. 크롬법이 훨씬 강한 산화력을 가져서 더 엄격한 기준입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엄청 놀랐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융통성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직원 실수로 약품을 덜 넣어 기준을 초과한 적이 있었다.
“리텐션 타임(Retention Time·물이 처리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4시간이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 백업하겠다’고 했습니다. 관계 당국도 이해해줬습니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겁니다.”
전문가의 자세… “짜장면 잘 만들면 된다”
황 대표는 87학번으로, 대학원까지 마쳤다. 아버지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환경공학을 선택했다.
“그때도 사람들이 ‘앞으로 환경이 뜰 거야, 돈 되는 분야야’ 했는데,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돈이 언제 되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이왕 하는 거 잘하자는 주의입니다.”
그는 스탠다드 메소드(Standard Methods·미국 수질 분석 표준서) 1985년판을 지금도 갖고 다닌다. 현재 24판까지 나왔는데, 기본 원리는 같다고 했다.
“최근에 어떤 고무장갑 공장에서 방류수에 염소성분이 초과하는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QCVN 40에 나와있는 ‘Chloride’와 ‘Excess Chlorine’는 다른 항목인데, 베트남어로는 ‘Clorua’와 ‘Clo dư’로 표현돼서 한국 사람들이 혼동하더군요. 제가 분석기관의 분석방법을 스탠다드 메소드를 통해서 확인하고 검증해서 찾아냈습니다.”
그는 제3자 기관의 분석 결과를 적극 활용한다. 비용이 수천만 동(수백만원)씩 들어도 먼저 투자한다.
“우리가 분석한 것보다 제3자 기관이 분석한 데이터를 보여주면 고객이 신뢰합니다. 직원들은 ‘사장님, 분석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왔어요’라고 하지만, 저는 ‘기다려라. 그래야 고객이 오케이 한다’고 합니다.”
그의 철학은 단순하다.
“짜장면을 만드는 사람은 짜장면만 잘 만들면 됩니다. 고객이 짬뽕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고 해서 ‘왜 짬뽕을 먹느냐, 짜장을 먹어야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가는 고객이 알아야 할 수준까지만 설명하고, 적절한 방법을 제안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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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업체와의 차별점
베트남에는 수처리 관련 한국 업체가 여럿 있다. 황 대표는 자신의 차별점을 ‘루틴한 고용’이라고 표현했다.
“베트남 회사들 중엔 제대로 된 곳이 많습니다. 직원 30명을 정식 고용하고 여러 부서를 갖춘 회사들이죠. 제가 매달 급여를 주는 직원만 50명입니다. 하지만 한국 분들 중에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만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한국정수 시절 이규철 회장의 말을 인용했다.
“‘건설회사는 상장하면 안 된다. 왜? 건설회사에 뭐가 있나? 지게차, 포크레인 다 임대다. 건물도 임대다. 그냥 전화 거는 회사다.’ 엔지니어링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실과 사람만 있으면 되죠. 하지만 진짜 차이는 ‘루틴하게 법적으로 고용된 직원을 몇 명이나 갖고 있느냐’입니다.”
“70세까지 일할 겁니다”
황 대표는 코참(KOCHAM·주베트남한국상공인연합회), 옥타(OKTA·세계한인무역협회), 민주평통(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이사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한다.
“예전에 법인장 할 때는 큰 회사 소속이니까 ‘저 사람이 사기 칠 것 같진 않다’는 신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개인 회사 대표잖아요. 그래서 사회 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저는 도망 안 갑니다’를 보여주는 겁니다.”
사이공리더스포럼(SLF, Saigon Leaders Forum) 회장도 6년째 맡고 있다. 호투협(호치민투자협의회) 회장이 바뀌어도 “SLF는 계속하세요”라는 요청을 받는다.
“타이틀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이런 활동을 하면 손가락질 받을 행동을 하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벌었으면 봉사도 해야죠. 그래야 오래 갑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1~2년 하고 그만둘 게 아닙니다. 요즘 70세 넘어서도 일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저도 앞으로 10년 이상은 할 수 있습니다. 크게 욕심내지 않고, 지금 있는 현장들 잘 관리하고,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 차근차근 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하겠죠.”
사무실 벽에는 그가 좋아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와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일정한 재산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 전자는 공자의 말이고 후자는 맹자의 말이다.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먼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밀리지 않아야 그들도 회사에 충성하려고 하죠. 고리타분하지만, 이게 제 방식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그가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활성슬러지(Activated Sludge) 공법의 흐름도였다. 최근 방문한 현장에서 SVI(슬러지 부피 지수)가 970까지 올라간 특이한 케이스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보통은 600수준인데말이다.
“이게 왜 이렇게 됐는지 궁금해서요. 보통 사람들은 ‘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저는 ‘왜 그럴까’ 고민하는 게 즐겁습니다. 그게 바로 엔지니어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56세 엔지니어는 여전히 현장이 궁금하다. 그의 명함에는 간단한 문구가 적혀 있다. “Anyway Water Business(어떤 물 문제든 해결합니다)”.
황인호 대표는 1987년 대학 입학, 1994년 환경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정수(휴비스워터, TSK코퍼레이션 등으로 명칭변경)에서 27년간 근무하며 발전소 및 석유화학단지의 수처리설비 설치운전과 폐수 및 하수처리공정개발/상업화를 담당했다. 2021년 쭝탄(Trung Thanh) 설립, 현재 베트남에서 10여 개 폐수처리 현장을 관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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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설명]
– COD(Chemical Oxygen Demand·화학적 산소요구량): 물속의 유기오염물질을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 물속의 유기물이 화학적으로 산화될 때 필요한 산소량을 나타낸다. 수치가 높을수록 오염도가 높다.
– 데미워터(Demi Water·Demineralized Water): ‘탈염수’ 또는 ‘초순수’라고 하며, 이온 성분이 완전히 제거된 물. 발전소 터빈 등 정밀 장비에 사용된다.
– SVI (Sludge Volume Index·슬러지 부피 지수): 활성슬러지의 침강성을 나타내는 지표. 수치가 너무 높으면 슬러지가 제대로 가라앉지 않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