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 한글과 한국어

오늘이 한글날이라는 소리가 들리니,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한글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글을 인류 최고의 문자로 꼽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요. 쉽고, 과학적이고, 우리 말소리를 가장 가깝게 받아 적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듣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그런데 올해는 생각이 조금 다른 데로 흐릅니다. 우리가 정말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은 글자 자체보다, 그 글자가 담고 있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한국어는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표현이 워낙 다양하고 오묘해서 다른 나라 말로 옮길 마땅한 길이 없다는 것이지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을 잠시 볼까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 시를 영어로 옮긴 것을 한번 볼까요?
When you are disgusted with me and leave, I shall gently let you go, without a word.
Azaleas of Yaksan, In Nyongbyon, I shall gather and scatter them on your path.
Step by step, Upon those flowers placed before you, Walk gently, tread softly as you go.
When you are disgusted with me and leave, Though I die, I will not shed a tear.

두 시를 따로 읽어 보면 그 맛이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영문 시는 마치 설명문을 읽는 느낌입니다. 시라기보다 산문에 가깝지요. ‘사뿐히 즈려밟고’가 ‘tread softly’가 되는 순간 발끝의 그 망설임이 사라지고, ‘보내 드리오리다’의 낮추고 삼키는 어미는 옮겨 갈 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이건 저만의 느낌이 아닌 모양입니다. 영어권 자료에서도 소월 시의 매력은 영어로 온전히 되살리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시에 우리 민요의 가락에 실려 있기 때문이지요.
이 맛은 글자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시를 로마자로 적어 놓아도 한국 사람에게는 같은 맛이 날 겁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감성이 빚어 온 말, 한국어에서 옵니다.
그리고 말은 감성만 담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쓰다 보면 사람의 행동까지 만들지요. ‘손’이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우리말 ‘손’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몸의 손인 수(手)가 있고, 찾아오는 사람인 객(客)이 있지요. 학자들은 이 둘이 소리만 같을 뿐 각각 독립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한 소리가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뜻을 함께 지니게 된 데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손님의 ‘손’은 본래 바깥에서 찾아오는 낯선 존재를 뜻하는 순 우리말입니다. 한자가 들어오면서 客에 이 ‘손’을 맞춰 썼는데 그 연유가 있을 듯합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외부에서 찾아오는 존재를 잘 대접하여 주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외부에서 찾아오는 존재를 잘 대하려 하니 신경 쓸 일도 많고, 몸의 손으로 해야 할 일이 끝이 없지요. 손을 많이 써서 맞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 존재를 ‘손’이라 부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귀한 존재이니 님을 붙여서 존경을 표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몸의 손과 찾아오는 이가 왜 같은 말을 쓰게 된 이유를 알 듯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손 없는 날’ 이사를 한다는 말이 있지요? 이때의 ‘손’은 또 무엇일까요?
처음에 말했듯 손은 바깥에서 제멋대로 찾아오는 존재입니다. 그 손에는 방문객이나 나그네만이 아니라 지신(地神)과 귀신, 그리고 병을 옮기는 역신까지 들어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천연두를 ‘손님’ 혹은 ‘마마’라 불렀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목숨을 앗아 가는 역병마저 높여 부르며, 잘 달래서 고이 돌려보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잘 달래서 보내는 것보다 아예 만나지 않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그런 손이 돌아다니지 않는 날을 골라 이사를 했고, 그날이 바로 ‘손 없는 날’입니다.

이렇게 여러 겹의 뜻을 품은 ‘손’이라는 말이 한국인의 인식에 깊이 새겨진 탓에, 우리에게 손님은 무조건 잘해 드려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의 친절에 감탄하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겠지요.

우연히 집에 들른 아들의 친구도 손님이고, 허름한 식당을 찾은 주머니 가벼운 사람도 손님이며, 화려한 백화점 명품관에 들어선 고객도 손님입니다. 우리는 찾아오는 모든 존재를 ‘손’이라 부르고, 설사 그것이 귀신이라 할지라도 ‘님’을 붙여 예우해 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본래 우리말에서 나온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이 말을 유난히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맞이하는 쪽의 다짐이지, 손님이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닙니다. 그걸 모르고 “손님은 왕인데 왜 이래” 하는 사람을 보면 측은해집니다.

오늘 우리는 한글을 기립니다. 그런데 한글이 귀한 까닭은, 이렇게 한 단어에 수백 년의 마음을 겹겹이 쌓아 온 우리말을 고스란히 받아 적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릇이 훌륭하면, 그 안에 담긴 것도 한 번쯤 들여다볼 일입니다.
올해 한글날에는 글자보다 말을, ‘손님’이라는 두 글자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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