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사무실 창고를 정리하다가 잡지 사이에 끼어 배송되던 낡은 카탈로그 한 권을 찾았습니다.
2015년 2월호 소라쇼핑입니다. 표지에는 설 선물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박혀 있고,
속지를 넘기니 홍삼이며 김이며 크리스탈 세트가 가지런히 줄을 서 있습니다. 누렇게 바랜 종이 냄새 속에서
명절이 다가오면 온 직원이 주문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던 그 시절이 고스란히 되살아납니다.
소라쇼핑을 기억하시나요?
한국 물건 하나 구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었지요. 명절이면 교민 가정마다 이 책자가 배달되었고, 많은 분들이 책장을 넘기며 고국의 부모님께 보낼 선물이며 우리 집 식탁에 올릴 반찬을 고르셨습니다. 베트남 교민사회에서 유일한 쇼핑 창구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그 소라쇼핑을 접었습니다. 장사가 안 된 탓이 아닙니다. 사업의 구조를 우리 형편과 다르게 잡은 탓이었지요. 물건을 저희가 직접 판매자에게서 받아 쌓아 두고, 집집마다 배달하고, 돈을 받고, 바꿔 달라, 물려 달라는 전화까지 받다 보니 작은 잡지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팔리기는 잘 팔리는데 사람이 먼저 지치더군요. 잘되는 가게를 스스로 닫는 심정이 어떤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교민사회도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국 물건을 파는 가게는 몰라보게 늘었고, 이제는 반찬 한 가지, 떡 한 접시도 교민이 직접 만들어 파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파는 사람은 많아졌는데 사는 사람이 그 가게를 찾아가는 길은 오히려 더 흩어졌습니다. 좋은 반찬집이 있다는 소식은 단톡방에 올라왔다가 하루도 못 가, 글 더미에 묻혀 버립니다. 새로 오신 분들은 떡은 어디서 사느냐, 홍삼은 어디가 믿을 만하냐를 오픈채팅방에 물어보고 누군가 답해 주기를 기다립니다.
가게를 하시는 분들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자니 엄두가 안 나고,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으니 매일같이 카톡방에 사진을 다시 올리며 손님을 부릅니다. 사고 싶은 사람도 있고 팔고 싶은 사람도 있는데, 정작 둘이 만날 자리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라쇼핑을 다시 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종이가 아니라 휴대폰 안에서 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이번 소라쇼핑에서 씬짜오는 물건을 사고 팔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저희가 중간에서 물건을 떼어다 파는 것이 아니라, 손님과 가게가 직접 만나 직접 거래합니다. 손님이 주문서를 보내면 그 주문서는 곧바로 가게로 갑니다. 값은 계좌이체든, MOMO든, 현금이든 지금 하시던 대로 가게에 직접 치르시면 됩니다. 저희는 가게에 온라인 매장을 만들어 드리고, 그 매장을 교민 여러분께 알리는 일만 합니다. 돈이 저희를 거치지 않으니 떼어 갈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판매 수수료가 없습니다.
예전에 저희 발목을 잡았던 배달과 재고, 세금이라는 짐을 처음부터 내려놓고 시작하는 셈이지요.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지 않았지만 둘러보실 수는 있습니다 https://vnkorlife.com/sorashop한번 들어가 보실까요.
소라쇼핑은 네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 한국관에는 인삼과 홍삼, 건강식품, 반찬, 화장품 같은 우리 물건이 모여 있고.
- 베트남관에는 커피와 캐슈넛, 공예품처럼 한국에 계신 가족에게 보내기 좋은 이곳 특산품이 있습니다.
- 중고방은 귀국이나 이사를 앞두고 내놓는 살림을 이웃끼리 직접 주고받는 곳입니다.
- 그리고 맛집·업소 방에는 식당, 카페, 미용실, 병원, 학원처럼 손님이 직접 찾아가는 곳들이 저마다 작은 홈페이지를 갖고 들어와 있습니다.

메뉴판과 지도와 연락처가 한 장에 담겨 있고,
가서 “소라쇼핑 보고 왔어요” 한마디 하면 서비스를 챙겨 주는 쿠폰도 있습니다.
교민 여러분 입장에서는 이제 단톡방을 뒤질 필요가 없습니다. 사진과 가격, 영업시간과 연락처를 한눈에 보고, 마음에 들면 주문서를 보내거나 그 자리에서 전화나 Zalo, 카톡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주문을 넣으면 가게가 받았는지, 준비는 됐는지, 언제 출발했는지 알림이 따라옵니다. 화면은 한국어, 베트남어, 영어로 바뀌니 베트남 가족이나 직원분도 같이 쓰실 수 있습니다.
가게를 하시는 분은 어떤 이득이 생기나요?
베트남 교민사회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미디어, 씬짜오베트남의 네트웍을 통해 상품을 중간마진을 고려하지 않은 가격으로 고객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돈 한 푼 들지 않는 가게 온라인 매장이 생깁니다. 그 매장 주소 하나를 단톡방이나 SNS에 걸어 두시면 그게 곧 우리 가게 홈페이지가 됩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휴대폰 알림과 이메일로 바로 알려 드리고, 입점하시면 씬짜오 매거진과 데일리뉴스, 카카오 채널을 통해 저희가 교민들께 소개해 드립니다. 바빠서 직접 올릴 짬이 없으시다면 사진 몇 장과 가격만 보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저희가 대신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10년 전 소라쇼핑은 종이에 실려 교민 가정을 찾아갔습니다. 이제는 교민이 교민을 직접 찾아가는 장터로 다시 태어납니다. 모양은 바뀌었어도 바라는 것은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낯선 타향에서 우리끼리 서로 믿고 사고 팔 수 있는 자리 하나,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소라쇼핑은 10월 중순경 문을 엽니다. 지금 입점 가게들을 모시는 중입니다. 알고 지내는 좋은 가게가 있으면 슬쩍 한마디 거들어 주십시오. 그 가게에도, 우리 교민사회에도 작지만 든든한 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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