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라운딩을 마치고 그늘집에 앉았는데, 함께 한 후배가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그러더군요. 형님, 저는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곳에선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젠 저도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통장도 겁이 납니다, 하며 슬며시 털어놓는데 답이 없는 독백이 됩니다.
스무 해 넘게 이 땅에서 버텨온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말이 며칠을 두고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에게도 자유로운 주제가 아니니까요.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노후라는 시기가 옵니다. 더 이상 벌지 않으면서 살아내야 하는 세월이지요. 그러니 가장 큰 걱정거리가 돈인 것은 당연합니다. 은퇴 후 잔고가 생각보다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남들과 견주며 슬며시 어깨가 처지는 것도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노후의 부라는 것이 정말 통장에 찍힌 숫자만으로 결정되는 것일까요?
부자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쓸 돈은 다 씁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비즈니스석에 앉는 사람과 이코노미석을 애용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조금 편한 대신 돈을 더 내는 방법이 있는데, 부자는 그 방법을 택하는 데 별 고민이 없고 주머니가 얇은 사람은 조금 더 오래 숙고한다는 차이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망설임 없이 늘 편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억만장자 중에도 검소하기로 소문난 이들이 많습니다. 공항 면세점 체인을 세운 척 피니, 이케아를 만든 캄프라드, 인도 IT의 거물 아짐 프렘지 같은 사람들은 출장길에 이코노미석을 타고 값싼 호텔에 묵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특히 척 피니는 재산 대부분을 오랜 세월 이름 한 줄 남기지 않고 내놓아, 사람들이 자선계의 제임스 본드라고 불렀다지요.
그럼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에 쓴 것인가, 좋은 일에 썼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일조차 굳이 알리지 않았다는데, 그렇다면, 우리 같은 사람도 기부한 대목만 슬쩍 생략하면 겉으로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요? 알리지 않은 기부라면, 안 한 것과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 그러면 그들의 검소한 생활과 내 생활은 차이가 없어집니다. 이런 뻔뻔한 셈법으로 위안을 삼으면 그 부호들의 테이블에 은근 슬쩍 젓가락을 놓아 봅니다.
아주 오래된 낡은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옮긴 ‘백만 파운드 지폐’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늘 이런 사회 풍자 글로 독자에게 그대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영화에서도 그것을 보여줍니다.
가난한 주인공 그레고리 펙이 어쩌다 백만 파운드짜리 수표 한 장을 손에 넣는데, 그것을 지갑에 품고 있다는 소문만으로 온 세상이 그를 최고의 부호로 떠받듭니다. 그는 1펜스도 쓰지 않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외상으로 무엇이든 내어주면서도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그런 부자가 자기 물건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값을 치렀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저 재미있는 코미디로 넘겼는데, 머리가 희끗해져 다시 곱씹어보니 뼈아픈 구석이 있습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부(富)란 내 주머니에 지금 얼마가 들었느냐가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옛말에도 있지 않습니까.
끼니를 이으려 쌀 한 섬만 빌려달라 하면 아무도 내주지 않지만, 창고에 아흔아홉 섬이 있는데 백 섬을 채우고 싶으니 한 섬만 꿔달라 하면 누구든 선뜻 내준다고요. 가난하다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부자인 척할 필요도 없지만 가난을 홍보하고 다닐 일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정작 백만 파운드 수표를 쓰지도 못하지만, 갖고 있다는 자신과 타인의 믿음만으로 이미 부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명확해집니다. 스스로 넉넉하다 여길 배짱만 있으면 됩니다.
모아둔 돈이 대단치 않고 남들처럼 화려한 은퇴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주눅 들 이유가 없습니다. 화려한 생활을 추구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돈이라는 것이 워낙 현실에서 떼어낼 수 없는 주제라 이런 이야기가 그저 영혼 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이 낯선 타향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맷집이라면, 노후의 불확실로 인한 불안쯤은 며칠 고민으로 얼마든지 방법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제 우리가 평탄한 길만 걸으며 살아왔나요?
주머니가 조금 가벼워진다고 해서, 여태 굳세게 살아온 삶의 무게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돈이 줄어드는 것과 삶이 가난해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죠. 백만 파운드의 수표는 은행 금고에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남의 얄팍한 시선에서 벗어나 내 삶은 내가 산다는 배짱과 여유, 이것이 바로 우리 같은 역전의 용사들이 마지막까지 빳빳하게 품고 있어야 할 수표 한 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늘집의 그 후배에게는 아직 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라운딩 때는 슬쩍 꺼내 볼까 싶기도 하고, 그저 맥주나 한 잔 더 사주고 말까 싶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