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 암의 습격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모친의 기일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집사람과 같이 일년여만에 고국을 찾았습니다. 베트남을 떠나기 위해 공항을 거치고 좁은 좌석에서 5시간을 보내고 다시 한국의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긴 여정이 젊은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무겁게 다가옵니다. 하루 온 종일을 다 보내고 나서야 베트남 집에서 한국 집으로 옮겨왔습니다.

장마철의 한국, 비가 자주 옵니다. 비가 멈추면 폭염 경보가 바로 뜹니다. 마침 주말이라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오랫동안 비어 두어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는 집 청소로 주말 전부를 헌납합니다. 일년 여 묵은 때를 벗겨냅니다. 내속이 다 시원합니다. 그런데 여기 저기 고장 나고 무너진 부분이 많이 있네요. 긴 세월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그늘입니다.

이렇게 뭔가 환경을 정비하며 며칠을 보내다, 의료 강국인 한국에 왔으니 건강 진단을 하는 것 역시 빠질 수 없는 행사입니다. 집사람이 건강진단 결과를 받아 들고 왔는데 별로 반갑지 않은 소식이 묻어옵니다. 갑상선에 결절이 있는데, 예사롭지 않으니 암 판정을 위한 조직 검사를 요구합니다.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전문병원에 들러 조직 검사를 마치고 난 후 은근히 마음을 조이며 기다리는데, 일주일 뒤 전화 메시지로 아무렇지 않게 ‘갑상선 암’ 으로 판정되었다는 소식이 뜹니다. 하긴 건조한 전화 메시지에 어떤 감정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젠장!

다시 만난 의사는 별다른 말없이 이제 종합병원에 가서 암 수술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진단서와 소견서를 건네 줍니다. 병원에서 암 진단서를 받아 들고 돌아오는 차 안에는 숨조차 쉬기 힘든 무거운 공기가 가득합니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어디를 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저 앞으로 벌어질 끔찍한 일정이 파노라마처럼 열렸다 사라집니다.

주말에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일정은 소리 없이 소멸되고, 그 대신 종합병원을 찾아 예약을 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오후 5시를 넘긴 탓에 병원도 정하지 못하고 하룻밤을 보냅니다. 하염없이 약해진 마음은 병원의 이름에 희망이 걸립니다. 가능하면 믿을 수 있는 크고 좋은 병원을 무조건 찾아내라는 무언의 명령을 지고 침대에 눕는 것은 휴식이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 9시, 이 작업이 느낌대로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1-2차 병원에서 진단받은 소견서를 파일로 저장하고 인터넷 예약을 시도하는데, 이 같은 경우는 인터넷으로 불가하다며 전화를 하라 합니다. 몇 번이나 엉뚱한 곳을 두드리다 간신히 제자리를 찾아 다행히 친절한 안내원을 만난 덕에 집에서 멀지 않은 분당 서울대 병원 예약이 나왔습니다. 일단 나무랄 데 없는 병원을 잡았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주변 사람들은 갑상선 암은 착한 암으로 불리고 예후가 좋은 암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암이라는 병명이 주는 무게는 멘탈을 흔들어대기 충분합니다. 결국 주님께 감사하는 기도와 찬양으로 이 지옥을 벗어날 것을 믿습니다.

지난 주 들어와 애써 청소한 덕에 비교적 살만해 진 집이 그나마 위로가 됩니다. 세월이 남긴 곰팡이는 청소로 지울 수 있지만, 인간의 몸에 남은 그늘은 하늘의 힘이 필요한 듯합니다. 부부 일심동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혼자 건강한 것은 별 도움이 안됩니다. 둘 다 아픈 것 보다야 낫겠지만 한쪽이라도 아프면 남은 한쪽의 건강마저 별 효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집사람은 교회 성도들과 점심을 한다고 외출합니다. 집에서 우울한 공기에 숨막혀 하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희망을 얘기하며 위로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당분간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 해야 할 일이 많아집니다. 집안 정리를 시작으로 인터넷 설치와 식료품 구입 등 단기 체류에 맞게 대충 준비한 것을 장기적, 혹은 영구적 체류를 위한 상황으로 바꿔서 준비해야 합니다.

회사에 글을 써서 보내는 것이야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 당분간 별 지장은 없지만, 내가 전적으로 맡고 있는 디지털 개발 작업에는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가 되긴 합니다.

이미 2주일을 머무르며 느낀 소감이 있습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는 인간관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일에서도 적용되더라구요. 매일 눈으로 마주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이 멀어지는 것을 감지합니다. 글을 보내는 것 역시 현장을 떠난 사람의 느낌이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입니다. [소심필담]이라는 칼럼 제목을 [고국에서 부친 필담]으로 바꿔야 할 듯합니다. 노후는 이렇게 예고 없이 방향을 바꾸는 모양입니다.

미국에서 장의사로 일했던 한 여성이 쓴 책이 있습니다.『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제목은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결국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잘 살아도 결국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오늘을 허무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오늘 하루가 더 소중합니다. 함께 웃는 시간, 함께 식사하는 시간, 함께 예배하는 시간이 더 귀합니다.

간사하고 연약한 인간은 감당하기 어려운 병마를 만나자 아침마다 기도를 올립니다. 결국 언젠가는 모두 시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겠지만, 그날까지는 살아 있는 사람답게 희망을 품고 살게 해 달라고, 그리고 제 곁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응원을 멈추지 말아 달라고.
여러분도 부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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