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의 부의 지도를 움직이는 자산가와 대기업 창업주들의 뒤를 이어 경영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재벌 2세’들의 화려한 학벌과 파격적인 후계 구도가 베트남 자본시장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대외적으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던 이들 승계 후보군은 주로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 글로벌 최상위권 명문대에서 선진 금융과 경영을 전공한 뒤, 귀국과 동시에 그룹의 핵심 기술 및 신사업 계열사를 지휘하며 경영권 승계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9일 베트남 재계 및 현지 금융 매체 등에 따르면 베트남 최대 민간 기업인 빈그룹(Vingroup)의 팜 냣 브엉 회장 장남인 팜 냣 군 안(1993년생)은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인 ‘QS 세계대학평가 2026’에서 세계 585위권을 기록한 싱가포르 경영대학교(SMU)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난 2019년 빈패스트(VinFast)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기획·조정·품질검증본부장과 글로벌 애프터서비스 부총괄 등을 역임하며 바닥부터 경영 수업을 쌓아온 그는 올해 5월 글로벌 법인인 ‘빈패스트 오토’의 이사회 의장(Chủ tịch HĐQT)으로 전격 보임됐다. 현재 국내 제조 법인의 부의장 겸 수석 부총장직도 겸임 중인 그는 그룹의 차세대 미래 먹거리인 빈메탈, 빈로보틱스, 빈에네르고, 빈스피드 등 기술 생태계의 창립 주주와 경영진에 이름을 올리며 명실상부한 후계자 지위를 굳혔다. 브엉 회장의 차남인 팜 냣 민 호앙(2000년생) 역시 우주항공 유관 신사업인 빈space에 형과 공동 출자하며 자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베트남 최초의 여성 억만장자인 비엣젯항공(Vietjet Air) 및 소비코그룹(Sovico Group)의 응우옌 띠 푸엉 타오 회장 가문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타오 회장의 장남인 응우옌 푸옥 훙 안(토미 응우옌, 2002년생)은 세계 4위 명문대인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경제경영학을 전공한 수재다. 대학 재학 중이던 지난 2019년 테크 기반 물류 스타트업인 ‘스위프트 247’을 공동 창업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는 현재 소비코그룹의 기술 부문 지주사인 갤럭시 홀딩스 산하 ‘갤럭시 테크놀로지 서비스’의 지분 100퍼센트를 소유한 실질적인 지배주주다. 그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자산 시장 선점을 위해 지난해 9월 가상자산 거래소인 ‘HDEX’ 설립을 주도하는 등 그룹의 미래 디지털 금융 영토 확장에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베트남 금융계의 거물인 T&T그룹과 SHB은행을 이끄는 도 꽝 히엔(바우 히엔) 회장의 두 아들 역시 영국 유학파 출신으로 금융과 스포츠 자산을 나누어 책임지고 있다. 장남인 도 광 빈(1989년생)은 영국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세계 332위권)에서 금융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현재 SHB은행 부의장 겸 부행장, T&T그룹 부의장, SHS증권 의장 등 그룹의 핵심 금융 계열사를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 차남인 도 빈 광(1995년생) 역시 영국 유학 후 베트남 명문 축구단인 하노이 FC의 역대 최연소 의장직을 맡아 스포츠 비즈니스 부문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다졌으며, 미스코리아 격인 ‘미스 베트남 2016’ 우승자 도 미 린과의 결혼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했다.
올해 금융권에서 가장 파격적인 초고속 승진으로 화제를 모은 곳은 사콤뱅크(Sacombank)의 실권자인 롄비엣포스트은행(LPBank) 창업주 출신 응우옌 득 투이(바우 투이) 부의장 가문이다. 투이 부의장의 장녀인 응우옌 옥 미 안(2001년생)은 미국 시애틀의 명문 사립고인 포레스트 리지 카톨릭 학교 재학 시절 전교 수석을 차지하며 지난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우수학생 표창장을 받아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빌 게이츠의 딸이 다닌 학교로도 유명한 이곳을 거친 미 안은 귀국 후 타이스페이스 최고경영자(CEO)와 닌빈 FC 의장을 거쳐, 만 25세의 나이로 이달 4일 사콤뱅크 은행장 보좌역(Trợ lý Tổng Giám đốc)에 전격 임명됐다. 같은 날 그의 남동생인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교 보스턴(세계 951위권) 경제학 출신의 응우옌 춘 타이(2003년생) 역시 은행 이사회 보좌역 겸 디지털 자산 거래소인 ‘사콤 가상자산거래소(SCEX)’의 부의장으로 임명되며 가문 중심의 금융 통제력을 대폭 강화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을 노리는 노바랜드(Novaland)의 부이 탄 년 회장 가문은 장남인 부이 카오 냣 군(1982년생)이 경영 일선에서 확고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웨스턴 워싱턴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일찍이 부총장직을 맡아 현장을 지휘해 왔으며, 그룹의 고강도 채무 조정 및 구조조정 파고 속에서도 이사회 의장직을 수성하며 경영 정상화와 가문 지분 방어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베트남 투자은행 업계의 한 전문가는 호아팟(Hoa Phat), 마산(Masan), 테콤뱅크(Techcombank), 타코(Thaco) 등 아직 자녀들의 학력이나 직책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는 가문들도 많지만, 공공에 드러난 후계자들의 행보를 볼 때 베트남 대기업들의 승계 공식은 과거 단순 제조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명문대 학벌을 무기로 AI, 가상자산, 모빌리티 등 첨단 테크 산업을 선점하는 형태로 고도화되고 있다고 전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