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사상 최대 규모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미국이 당초 기대했던 ‘월드컵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심각한 관광 침체 국면에 직면했다. 살인적인 고물가와 번잡한 입국 행정 절차로 인해 전 세계 축구 팬들과 관광객들이 미국 대신 인접국인 멕시코나 캐나다로 발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항공 데이터 분석업체 시리움(Cirium)과 베트남 관광업계가 공시한 글로벌 예약 지표에 따르면, 올여름 개최되는 월드컵 경기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는 7월 미국의 항공 및 숙박 예약률은 전년 동기 대비 14% 급감했다. 전 세계 대형 스타플레이어들의 경기가 예고된 캔자스시티의 경우 현지 숙박업소의 85%가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도는 저조한 객실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외신들은 이번 월드컵이 수년 전부터 호언장담했던 ‘경제적 붐’ 대신 미국 관광업계에 ‘잔혹한 쇼크’가 될 수 있다고 정밀 진단했다.
미국 관광 시장의 매력도가 급락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공동 개최국들에 비해 턱없이 비싼 현지 체류 비용과 경직된 인프라가 꼽힌다. 미국의 호텔 숙박비와 경기 티켓 가격은 멕시코나 캐나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책정됐다. 여기에 경기가 열리는 주요 도시 간 이동 시 발생하는 막대한 교통비 부담 역시 글로벌 축구 팬들이 미국행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멕시코나 캐나다에서 경기를 관람하도록 유도하는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실 미국의 ‘굴뚝 없는 공장’이라 불리는 관광산업의 쇠퇴 징후는 월드컵 개최 전부터 완연하게 나타났다. 세계여행관광협회(WTTC)의 매트릭스 연구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2025년 미국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 수치는 전년 대비 5.5% 감소했다. 이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및 팬데믹기를 제외하면 지난 20년간 가장 가파른 낙폭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해외여행 인구가 8억 명 이상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미국 대신 아시아나 타 지역을 선택했다. 국가별로는 독일, 인도, 프랑스, 칠레, 호주, 중국 관광객의 미국 이탈세가 가장 두드러졌다. 반면 경쟁국인 멕시코는 2025년 외국인 관광객이 전년 대비 100만 명 이상 증폭하는 반사이익을 누렸다.
관광객 급감은 고스란히 천문학적인 자산 손실로 이어졌다. WTTC는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인한 미국의 직접적인 소비 지출 결손 규모가 84억 달러(한화 약 11조 5천억 원)에 달한다고 공시했으며, 미국 관광경제연구소는 기대 성장률까지 감안한 실제 재정 손실액이 최대 250억 달러(한화 약 34조 2천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공룡 기업인 디즈니 역시 최근 분기 실적 보고서를 통해 국내 테마파크 방문객이 1% 감소하고 호텔 투숙률이 기존 92%에서 89%로 하향 조정된 핵심 배경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지속적인 감소세를 지목했다. 시애틀이나 산타모니카 등 현지 중소 여행사들은 온라인 광고 예산을 폭발적으로 늘렸음에도 예약률이 반토막 나 직원을 전원 해고하고 대출금으로 연명하는 등 경영난이 임계치에 달했다.
경제적 지표 외에도 지난해 말부터 한층 까다로워진 미국의 입국 조례와 비자 장벽도 글로벌 자산가들을 돌아서게 만든 악재로 작용했다. 비자 발급 지연 적체 현상과 더불어 비자 인증 수수료 추가 징수 논란, ‘과거 5년간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 이력 제출 요구’ 등 과도한 보안 검사 프로세스가 가동되면서 여행 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 미국 국립관광진흥청(Brand USA)이 “SNS 조사나 추가 수수료 징수는 아직 확정된 조례가 아니다”라며 뒤늦게 신뢰 회복 캠페인 전선에 나섰으나 이미 바뀐 관광 플로우를 돌리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 35년간 매년 봄마다 미국 여행에 1만 달러 이상을 지출해 온 캐나다인 존 스튜어트 씨는 미국의 경직된 정책에 반발해 올해 미국행을 전면 취소했으며, 또 다른 자산가 부부는 뉴욕 대신 수만 달러의 자금을 들여 일본과 빈, 이탈리아로 행선지를 변경했다.
미국 국립여행관광사무소(NTTO)는 미국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 수치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타임라인은 당초 계획보다 크게 지연된 오는 2029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담 색스(Adam Sacks) 관광경제학 연구소 회장은 인터뷰에서 “당초 FIFA는 이번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가 미공개 슈퍼볼(Super Bowl) 100개를 동시에 개최하는 수준일 것으로 호언장담했으나, 실제 지표는 슈퍼볼 10개 수준에 그쳐 2025년의 손실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색스 회장은 “미국 관광산업이 장기 침체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동맹국들을 향한 외교적 강경 언사를 자제하고, 브랜드 미국(Brand USA)에 대한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와 함께 스스로 발목을 잡는 불합리한 비자 행정 장벽을 과감히 제거해야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