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발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수사관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이 필리핀 상원 건물 안에서 충돌하며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마약과의 전쟁’ 실무 책임자였던 로날드 델라 로사 의원의 체포를 둘러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15일 로이터 통신과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저녁 필리핀 수사관들과 경찰이 델라 로사 의원을 체포하기 위해 상원 건물로 진입했다. 델라 로사 의원은 두테르테 재임 시절 경찰청장을 지내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11일 ICC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현장 증언에 따르면 수사팀이 진입한 직후 건물 안에서 최소 15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총격에 상원 의원들과 보좌진, 취재진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숨겼고 건물 전체에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당시 델라 로사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보호 속에 집무실 안에서 버티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앨런 피터 카예타노 필리핀 상원 의장은 자신의 SNS에 “총성을 들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며 “모두가 방안에 갇혔고 직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라며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다행히 이번 총격으로 인한 정확한 인명 피해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존빅 레물라 필리핀 내무부 장관은 사건 직후 “델라 로사 의원은 안전하며 즉각적인 체포 집행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당국은 상원 내 폐쇄회로(CC)TV를 정밀 분석해 총격의 시작점과 가담자를 특정할 방침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델라 로사 의원은 지난해 11월 이후 두문불출하다가 지난 11일 두테르테파의 상원 장악을 위한 투표를 위해 깜짝 등장한 뒤 건물 내에 은신해 왔다. 그는 SNS를 통해 “더 이상 필리핀 시민이 네덜란드 헤이그(ICC 소재지)로 끌려가게 두지 말아달라”며 지지자들에게 구금 저지를 호소했다.
앞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 역시 마약 용의자 즉결 처형을 지시한 혐의로 지난 3월 마닐라에서 체포되어 현재 네덜란드에서 구금 중이다. 인권 단체들은 두테르테와 델라 로사가 주도한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실제로 수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