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국안사 ‘금강경주해’, 수 세기 불교 문화 계승한 보물로 가치 재조명

후에 국안사 ‘금강경주해’, 수 세기 불교 문화 계승한 보물로 가치 재조명

출처: Thanh Nien
날짜: 2026. 4. 26.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Huế)의 국안사(Chùa Quốc Ân)에 소장된 ‘금강경주해(Kim Cang Kinh Chú Giải)’가 단순한 응우옌 시대의 인쇄물을 넘어 수 세기에 걸친 불교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으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7일 후에 불교계 및 고문헌 연구소에 따르면, 국안사에 보존된 이 판본은 53명의 고승과 성현들이 금강경의 깊은 뜻을 풀이한 ‘금강경오십삼가주해(Kim Cang Ngũ Thập Tam Gia Chú Giải)’의 인쇄본이다. 이 판본은 응우옌 왕조 바오다이(Bảo Đại) 6년인 1931년 10월에 각수를 시작해 이듬해 4월에 완성되었으며, 총 150매의 목판(양면 104매, 단면 46매)에 8만 800자의 한자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발견은 이 판본이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라 철저한 고증을 거친 ‘교정본’이라는 점이다. 당시 한림원 시강이었던 당뉴바(Đặng Như Bá, 영안거사)가 발원하여 추진된 이 사업은 그의 가족은 물론 황숙 존텃쯔(Tôn Thất Trứ), 혜안거사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교정과 편집에 참여했다. 또한 린무사의 혜각(Huệ Giác) 스님을 비롯한 당대 고승들이 증산(證刊)과 호념(護念)을 맡아 문헌의 권위를 높였다.

특히 문헌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단서가 확인되었다. 책의 끝부분에 1673년(강희 계축)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1423년(영락 계묘) 명성조(영락제)가 쓴 서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1931년 후에에서 제작된 판본이 1673년 중판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았으며, 그 뿌리가 15세기 명나라 인쇄본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의미한다. 수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텍스트의 계승이 후에의 장인들에 의해 완벽하게 재현된 것이다.

당시 이 사업에는 베트남 불교 중흥 운동의 핵심 인물인 심명 레딩탐(Lê Đình Thám)을 비롯해 응우옌 왕조의 고위 관료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는 20세기 초반 베트남 지식인층과 관료층이 불교 사상을 얼마나 강력하게 옹호하고 보존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국안사 주지 스님과 연구진은 “이 금강경주해는 단순한 종교 유물을 넘어 후에 예술가들의 뛰어난 인쇄 각자(刻字) 기술과 베트남 불교 철학의 깊이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며, “수백 년 전의 지혜를 오늘날까지 오차 없이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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