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험·전시·식사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주목, 가격 논란은 숙제
동남아시아 여행이 유럽 여행과 구별되는 지점 중 하나는 박물관 경험의 빈곤함이다. 호찌민시(Ho Chi Minh City)만 해도 전쟁잔재박물관(War Remnants Museum)이나 호찌민시 박물관(Ho Chi Minh City Museum)을 제외하면, 문화와 역사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 공백을 채울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2026년 1월, 1군 응우옌타이혹(Nguyen Thai Hoc) 거리 모퉁이 – 메트로 벤탄(Ben Thanh)역에서 도보 200미터 거리 – 에 베트남 최초의 음식 전문 박물관 ‘퍼 뮤지엄(Pho Museum)’이 문을 열었다. 개장 직후부터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이곳을, 기자가 지난 3월 직접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향기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예상치 못한 것이 나를 맞이했다. 계피와 팔각(star anise)의 향기였다. 쌀국수 육수를 끓일 때 빠지지 않는 향신료 두 가지가 공간 전체에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눈으로 전시를 보기도 전에 이미 코가 먼저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를 알려주는 셈이었다. 꽤 영리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은 최상층의 영상 상영실에서 시작된다. 벽면에는 흑백 사진에서 컬러 사진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시각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퍼 무비(Pho Movie)’라 불리는 약 10분 분량의 단편 영상이 상영된다. 애니메이션과 음악, 역사적 사진을 결합해 쌀국수의 기원과 변천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다소 교육적이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베트남 사람이 있는 곳에는 쌀국수가 있다”는 문장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 괜히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다. 호찌민에 오래 살다 보면 이 도시의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데, 그 감각을 영상이 정확히 건드렸다.

영상 관람 후 인터랙티브(interactive) 게임 구역으로 이동한다. LCD 화면 앞에서 재료를 조합해 가상의 쌀국수 한 그릇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인 소고기·닭고기 쌀국수 외에 포꾸온(phở cuốn·쌀국수 롤), 포사오(phở xào·볶음 쌀국수) 등 다양한 변형을 선택할 수 있었다. 완성 후 쌀국수 관련 퀴즈가 나오는데, 솔직히 틀린 문제가 있었다.
수년간 쌀국수를 먹어왔지만 정작 재료의 이름과 역할을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박물관에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싶었다. 다만 중간에 내가 선택하기도 전에 재료가 자동으로 골라지는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쉬웠다.

전시 공간에서는 쌀국수의 역사를 담은 200여 점의 유물과 오브제(objet)를 만날 수 있었다. 낡은 포장수레, 골동품 그릇, 북부 쌀국수(하노이·남딘식)와 남부 쌀국수(사이공식)의 차이를 설명하는 패널들이 이어졌다.

베트남 27개 직업군을 상징하는 쌀국수 그릇 27개를 쌀 위에 배치한 설치 미술 작품은 전시의 백미였다. 쌀국수 한 그릇이 곧 한 사람의 일상이라는 개념을 형상화한 것인데, 한참 들여다보게 됐다. 다만 전시 동선이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졌고, 안내 직원이 영어 설명을 너무 빠르게 진행해 따라가기 버거운 순간도 있었다.

쌀국수 한 그릇의 맛: 기대에 부응했는가
관람의 마지막 순서는 몰입형(immersive) 식사 공간에서의 쌀국수 시식이다. 베트남 북부·중부·남부의 자연 경관을 재현한 영상이 벽면을 감싸는 구조 속에서 퍼 뮤지엄 시그니처 한 그릇이 나왔다. 박물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그니처 쌀국수는 북부식의 담백함과 남부식의 깊고 풍부한 육수를 혼합한 것으로, 쌀국수 장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재료 선별부터 육수 우리기, 담음새까지 엄격한 품질 기준을 적용해 완성했다고 한다. 사이공의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생허브, 호이신 소스(hoisin sauce), 칠리 소스, 사테(saté)를 곁들이는 남부식 구성을 기본으로 삼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맛은 분명히 좋았다. 육수의 향이 깊고 면은 부드러웠으며, 소고기는 질기지 않고 결대로 잘 풀렸다. 호찌민에서 꽤 많은 쌀국수 집을 다녀봤지만 상위권에 들 만한 맛이었다. 그러나 북부식도 남부식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 머문다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퍼 뮤지엄에 직접 물었다
200여 점의 유물은 어떻게 모았는지 물었다. “쌀국수의 발상지로 알려진 반꾸(Vân Cú)·쟈오꾸(Giao Cú) 등 북부의 유서 깊은 장인 마을을 포함해 베트남 전역을 약 1년에 걸쳐 직접 답사하며 수집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27개 쌀국수 그릇 설치 작품 역시 근현대 베트남의 일상과 직업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방문객 각자의 개인적 기억을 환기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쌀국수를 단순한 음식이 아닌 문화 서사로 풀어내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왔는지도 물었다. 창립팀은 이렇게 답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감기에 걸린 나를 위해 끓여오신 쌀국수 한 그릇이 있었다. 형편이 어렵던 시절, 온 가족이 그 한 그릇을 나눠 먹고 남은 국물에 찬밥을 말아 먹던 기억이 이 박물관의 출발점이 됐다.” 단순한 사업 아이디어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에서 비롯된 프로젝트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입장료 75만 동에 대한 논란도 직접 물었다. 박물관 측은 “모든 피드백을 경청하고 있으며, 75만 동 패키지에 인센스 콘(incense cone) 만들기, 차 시음, 향신료 볶기 워크숍 등 인터랙티브 미니쇼와 더욱 다양한 식사 구성, 문화 공연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시 스크린 화질과 동선 개선에 대해서는 “매년 기술과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하겠다”고 했다. 현재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개선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75만 동의 가치가 있는가
이 방문에서 가장 솔직하게 답해야 할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입장료 75만 동(약 28달러)은 호찌민 물가 기준으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일반 쌀국수 한 그릇 가격의 여섯 배가 넘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체험의 밀도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영상과 전시를 빠르게 훑고 식사만 하는 방식으로 방문한다면 가격이 아깝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 향신료 갈기, 쌀국수 재료 조합 게임, 해설 청취, 시식까지 모든 과정을 천천히 체험한다면 단순한 식사 이상의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고, 그 덕분에 꽤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다만 한 가지 반드시 주의할 점이 있다. 개관 초기인 만큼 전시 공간이 별도 고지 없이 닫혀 있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것이다. 방문 전 운영 상태를 사전에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이런 분께 권한다
퍼 뮤지엄은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베트남 음식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는 호찌민에서 식사 이상의 경험을 원하는 방문객이라면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오랜 사골 육수 문화를 가진 한국인에게 쌀국수의 뿌리를 짚어가는 이 공간은 남다른 공감대를 줄 것이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보다는 음식과 문화에 관심 있는 성인에게 더 잘 맞는 공간이라는 것이 솔직한 인상이다.
수년간 호찌민에 살면서 쌀국수를 밥처럼 먹어왔지만, 그 한 그릇의 역사와 향신료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처음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도 이 방문은 내게 충분한 값어치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