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Trend – 마라탕 냄새가 사이공을 덮다

베트남에 부는 ‘중국 미식 열풍’의 정체… 3년째 이어지는 소비 지형의 대이동

저녁 무렵 호찌민 외각의 대학가 응웬 지아 치 거리. 한문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마라탕 셀프바 앞에 젊은이들이 국자를 들고 줄을 선다. 그 옆 가게에서는 토기(土器) 안에서 밀크티가 김을 뿜으며 끓는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낯설던 풍경이, 이제는 사이공 어느 거리에서나 흔하다.

지난 3년 사이 중국에서 건너온 ‘핫 트렌드’ 음식과 음료가 잇따라 베트남을 뒤흔들었다. 손짜인지아떠이(trà chanh giã tay·손으로 찧은 레몬차), 랍쓰엉느엉다(lạp xưởng nướng đá·돌판 소시지구이), 윈난 눈송이 밀크티, 마라탕(Malatang)…. 몇 주 반짝하고 사라진 것도 있지만, 어느새 베트남 외식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것도 적지 않다. 화제의 신상 가게가 문을 열면 수십 분씩 줄을 서고, 반경 수십 ㎞ 밖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까지 생겨났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중국요리인가. 이 열풍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관광·인구·기술·가격, 그리고 두 나라가 공유하는 입맛까지 여러 갈래의 힘이 한데 얽혀 있다.

랍쓰엉느엉다 모습

손짜인지아떠이 만드는 모습

윈난 눈송이 밀크티

5,280만 명이 오갔다… 국경을 넘나든 ‘입맛의 교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람의 이동이다. 2025년 베트남을 찾은 중국 본토 관광객은 528만 명으로, 전년 대비 41% 늘며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 됐다. 2026년 들어서도 기세는 이어져, 1~5월에만 약 229만 명의 중국인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반대 방향의 흐름도 못지않게 거세다. 2025년 베트남인의 해외 출국은 670만 명으로 전년보다 26.4% 급증했는데, 그중 상당수가 향한 곳이 중국이었다. 하노이의 한 여행사에서는 2025년 중국 상품이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며 주력 상품으로 올라섰고, 1분기에는 그 비중이 40%까지 치솟았다. 윈난 (雲南)·광시(廣西)로 떠난 베트남 여행객들이 현지에서 맛본 쓰촨 훠궈, 마라탕, 돌판 소시지구이를 숏폼 영상에 담아 돌아오면서, 그 맛이 고스란히 국경을 넘어 ‘상륙’했다.
베트남과 중국을 잇는 직항 노선이 대거 복원·신설된 것도 이 왕래를 뒷받침했다. 베트남항공과 비엣젯(Vietjet)이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청두를 하노이·호찌민·다낭·냐짱과 직접 연결하면서, 이동 시간은 짧아지고 항공권 값은 싸졌다. 사람이 오가면 음식이 따라온다. 국경을 넘나든 것은 관광객만이 아니라 입맛 그 자체였다.

하루 2.5시간, 숏폼이 만든 ‘보는 음식’의 시대

두 번째 힘은 화면 속에 있다. 베트남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소셜미디어 대국이다. ‘We Are Social’의 디지털 2026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인은 하루 평균 약 2.5시간을 소셜미디어에 쓰며, 그중 상당 부분이 숏폼 영상에 쏠린다. 불과 수십 초짜리 영상 하나로 무명 가게가 하룻밤 사이 ‘현상’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중국발 트렌드 음식의 강점이 빛난다. 손으로 차를 찧고, 토기에 차를 굽고, 돌판 위에서 소시지가 지글대는 장면에는 소리와 움직임, 연기와 불, 그리고 강렬한 색이 있다. F&B 전문가 응우옌타이빈(Nguyễn Thái Bình·Mapdy.vn 공동창업자)은 이런 음식들을 두고 “손으로 찧은 레몬차, 토기 구이차처럼 퍼포먼스 요소가 있는 음식은 SNS에서 반응을 만들기 쉽고, 그것이 미식 트렌드를 빠르게 확산시킨다”고 진단했다. 손님은 단지 음료를 사는 것이 아니라, 찍어서 올릴 만한 ‘한 장면’을 함께 산다는 것이다. 조리 과정 자체가 완결된 콘텐츠 포맷인 셈이다.
물론 그림자도 있다. 화려한 영상과 ‘인생 맛집’ 같은 과장된 수사에 이끌려 갔다가 실제 음식에 실망하는 사례가 늘면서, 최근에는 영상보다 글 기반의 스레드(Threads) 커뮤니티 후기를 더 믿는다는 젊은 소비자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화면이 미식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7천 동 밀크티, 6만9천 동 훠궈… 가격이라는 무기

세 번째 힘은 가격표다. 7,000~1만 동짜리 밀크티, 6만9천 동짜리 훠궈. 이 파격적인 숫자는 단순한 판매 전략을 넘어 그 자체로 강력한 광고가 된다. 부담 없는 값은 시험 삼아 한번 먹어볼 문턱을 확 낮추고, 친구를 불러 함께 경험하고 공유하도록 부추긴다. 놀라운 가격 그 자체가 콘텐츠의 제목이 되는 것이다.
이 저가 모델의 상징이 바로 믹수에(Mixue)다. 전 세계 약 6만 개 매장을 거느린 이 중국 브랜드는 2025년 매출 335억6천만 위안(약 48억7천만 달러)으로 전년 대비 35% 성장했고, 순이익도 33% 늘어난 59억3천만 위안을 기록했다. 흥미로운 것은 수익 구조다. 매출의 97% 이상이 가맹비가 아니라 가맹점에 공급하는 원재료·장비·물류에서 나온다. 저가로 손님을 모으는 앞단의 ‘쇼’ 뒤에, 공급망으로 돈을 버는 정교한 뒷단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낮은 가격이 곧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믹수에는 2025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매장 400여 개를 순감시키며 ‘옥석 가리기’에 들어갔다. 무작정 늘리기보다 목 좋은 대형 매장 위주로 재편하자, 하반기 신규 매장의 평균 매출은 이전의 약 1.7배로 뛰었다. 가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미끼일 뿐, 결국 버티는 힘은 원가 구조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매운맛과 국물, 뿌리가 닿아 있는 두 입맛

네 번째 힘은 좀 더 근본적이다. 두 나라의 입맛이 애초에 닮았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베트남 북부 요리는 국경을 맞댄 중국 남부, 특히 광둥(廣東)·윈난 요리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국물 문화와 국수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베트남에서, 뜨거운 육수에 갖은 재료를 데쳐 먹는 훠궈와 마라탕은 낯선 음식이 아니라 ‘한 다리 건너 아는 맛’에 가깝다.
이 근접성이 트렌드의 수명을 가른다. 마라탕이 대표적이다. 마라탕은 한국·호주·싱가포르·태국·북미 등 까다로운 시장에서도 자리를 잡았고, 베트남에서도 ‘빠르고 간편하며 개인 취향대로 고르는’ 패스트캐주얼 훠궈 문화로 정착하는 중이다. 반짝 유행을 넘어 식습관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윈난 눈송이 밀크티는 2026년 7월 유입돼 절정기엔 호찌민 까익망탕땀 거리, 하노이 응우옌짜이 거리에서 15~20분씩 줄을 세웠지만, 지금은 열기가 빠르게 식어 일부 야시장과 박람회에서나 겨우 눈에 띈다. 뿌리 깊은 국물 요리는 살아남고, 신기함에만 기댄 ‘한 장면’은 빠르게 저문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하이디라오(Haidilao)가 자리를 지킨다. 2019년 비텍스코·빈컴 센터에 첫 매장을 연 이 쓰촨 훠궈 브랜드는 2025년 기준 호찌민 10곳, 하노이 6곳, 냐짱 1곳 등 17개 지점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확장 대신 서비스와 인력에 투자하는 전략으로 고급 훠궈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열풍 뒤의 냉정한 현실… “손님이 식은 뒤 남는 것”

중국 미식 열풍은 눈부시지만, 그 배경의 시장은 냉혹하다. iPOS.vn과 네슬레의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에만 베트남 F&B 매장 5만여 곳이 문을 닫았다. 전년 동기 3만 곳에서 급증한 수치다. 2025년 6월 말 기준 운영 매장은 약 29만9,900개로 2024년 말 대비 7.1% 줄었고, 상반기 업계 매출은 40조6천억 동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 업계는 이를 ‘제2차 옥석 가리기’ 국면으로 부른다.
이런 시장에서 트렌드에 올라타는 일은 기회이자 도박이다. 응우옌타이빈은 유행 음식의 수명을 이렇게 정리한다. 초기 1~3개월 강한 확산, 이후 3~6개월간 매장 급증, 6개월째부터 복제와 가격 경쟁, 그리고 9~18개월 사이 대부분 열기가 식는다. 그는 “모델이 오직 ‘쇼’만 판다면 수명은 매우 짧다”며 “길게 가려면 핵심인 제품의 맛과 안정성, 합리적 가격, 그리고 일상적으로 찾게 되는 제품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70-20-10 법칙’이다. 메뉴의 70%는 안정적 매출을 만드는 핵심 상품, 20%는 계절·소비 행태에 맞춘 개선 상품, 나머지 10%만 트렌드를 좇는 상품으로 채우라는 것이다. 트렌드는 사업의 생사를 건 도박이 아니라 연구개발(R&D)의 실험실이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베트남 토종 기업의 활로도 여기에 있다. 응우옌타이빈은 “베트남 기업의 가장 큰 강점은 외국 모델의 복제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입맛에 대한 이해, 토착 식재료, 음식 문화, 그리고 국내 소비자에게 맞는 브랜드 스토리를 짓는 능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내 100개 이상 매장을 운영하는 밀크티 브랜드 이허탕(YiHeTang)의 응우옌비엔안 대표 역시 “손님은 이제 맛있는 밀크티 한 잔만 사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브랜드를 원한다”며 “지속 가능한 브랜드의 힘은 지금 유행하는 음료가 아니라, 그 뒤에서 전체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식에 있다”고 했다.
거리를 채운 김과 불, 줄 선 사람들과 쏟아지는 영상. 중국 미식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 새 얼굴로 베트남을 찾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와 프랜차이즈가 ‘열풍’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점점 더 짧게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바이럴은 한 브랜드가 얼마나 빨리 알려지느냐를 결정할 뿐,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는 여전히 제품의 질과 운영 역량, 그리고 열기가 식은 뒤에도 손님을 붙드는 고유의 색깔에 달려 있다. 마라탕 냄새가 사이공을 덮은 지금,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손님이 신기함에 물린 뒤에도, 이 가게가 존재할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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