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 거절의 값

최근 대중음악계에 흥미로운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를 향해 그토록 열망을 드러냈던 BTS가 이번 시상식 참여를 정중히 거절했다는 소식입니다.

과거 슈가는 인터뷰에서 그래미를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인정”이라 말했고, RM 역시 더 열심히 음악을 만들게 하는 강력한 동기부여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몇 해가 지난 지금, 최고의 영예를 눈앞에 두고 단호한 거절의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거절의 이유는 분명합니다. 정당한 경쟁 대신 ‘아시아 음악’이라는 특정 카테고리에 가두려는 기득권의 보수적인 태도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는 비단 BTS만의 문제가 아니라, 불투명한 시상 방식에 그래미 보이콧을 선언해 온 많은 음악인들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려는 한국 MZ 세대의 당당함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한국의 MZ 세대는 자기주장이 확실합니다. 부당한 요구에는 퇴사를 감행할 만큼 단호하며, 기성세대가 며칠을 고민할 거절도 이들은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옮깁니다. 이들은 거절이 다소 예의 없어 보일지라도, 나름대로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여깁니다. 참 부러운 자신감입니다.

하지만 기성세대에게 거절은 언제나 무거운 과제였습니다. 인간관계나 직장에서 거절은 곧 권력을 상징했기에,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든든한 배경을 가진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국가 간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거절’이 어떻게 거래되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힘이 약한 나라가 힘이 강한 나라를 상대로 선뜻 “아니오”라고 말하는 경우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거절은 약자의 몫이 아닙니다. 거절에는 그 값을 감당할 힘이 필요합니다. 준비 없이 거절부터 했다가 훗날 훨씬 큰 대가를 치르는 일도 적지 않고, 반대로 그 값을 감당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제안이 나라의 방향을 바꿔놓은 사례도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 한때 세계 경제의 정점에 섰던 어느 제조업 강국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이 나라는 1980년대에 자동차와 전자, 반도체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며 곧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다른 나라의 학자들이 그 나라의 경영 방식을 배우러 줄을 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정점에 오른 경제는 그만큼 외부의 견제와 조정 압력을 함께 받게 마련입니다. 결국 이 나라는 자국 통화의 가치를 큰 폭으로 끌어올리고 주력 산업의 수출을 조정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 요인이 겹쳤지만, 이 선택은 이후 이 나라가 긴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흔히 언급됩니다.

주목할 점은, 바로 그 무렵 이 나라 안에서도 “이제는 우리도 우리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는 자신감 어린 주장이 널리 퍼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작 나라의 진로가 걸린 결정적 요구 앞에서는, 그 “아니오”를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감당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거절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그 값을 감당할 힘이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거절은, 곧 힘입니다.

이렇게 거절은, 국가는 물론이고 우리 개인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현명한 거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삶의 승자가 될 것이고, 거절이 필요한 사안에서 침묵해야만 하는 사람은 남의 삶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1. 가능한 한 빨리 알린다: 결정이 섰다면 즉시 전달해야 합니다. 미루는 행위는 상대에게 헛된 희망을 주어 더 큰 실망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희망 고문입니다.

2. 구태여 긴 이유를 대지 않는다: 이유가 많아질수록 거절은 협상의 대상이 됩니다. 내세운 이유에 반박이 통하면 거절을 못하게 됩니다. 상대가 반박할 수 없는 간결하고 명확한 이유 하나면 충분합니다.

3. 나만의 원칙을 세운다: 상황마다 고민하지 말고 ‘보증 금지’, ‘주말은 가족과 함께’ 같은 고정된 원칙을 세워 두세요. 원칙에 기반한 거절은 미안함을 줄여줍니다. 요즘 MZ 세대가 잘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퇴근 후 시간은 회사에 종속되지 않는다며 회식을 거절합니다.

4. 미안함은 한 번만 표시한다: 반복되는 사과는 거절을 흥정으로 변질시킵니다. 정중하고 짧은 거절이 상대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는 가장 예의 바른 태도입니다.

5. 거절의 대가를 각오한다: 모든 거절에는 관계나 기회의 상실이라는 비용이 발생합니다. “어떻게 거절할까”를 고민하기보다 “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었는가”를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거절을 통해 잃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수락해야 합니다. 일본이 그랬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예민한 사항입니다. 그래서 거절도 자격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거절의 값을 치러도 될 정도의 힘은 키워야 합니다.

거절은 단순히 ‘아니오’라고 말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의 경계선을 긋는 필연적 도구입니다. 그래미라는 거대 조직에 당당히 거절을 선언한 BTS가 치러낼 ‘거절의 값’이 과연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합니다. 그들의 용기가 그들의 음악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비록 불편하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을 좀 더 가볍고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거절의 미학. 특히 베트남 같은 낯설은 이국 땅에서 더욱 확실히 익혀야 할 삶의 요령이기도 합니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 교민 모두 한번 돌아보시길 기대합니다. 나는 거절의 값을 지불할 힘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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