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를 방문한 많은 여행객은 오후 시간에 카페를 찾아 카푸치노를 주문했다가 현지 바리스타들로부터 거절당하거나 난처한 표정을 마주하고 당황하곤 한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정오가 지난 뒤 우유가 많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는 것을 문화적·의학적 이유로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23일 이탈리아 국립에스프레소협회(INEI) 및 현지 식문화 연구소 공시 보도에 따르면, 밀라노나 피렌체의 카페에서 오후 3시경 현지인들이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빠르게 마시는 모습은 흔하지만 카푸치노를 찾는 이는 거의 없다. 에스프레소, 따뜻한 우유, 두꺼운 우유 거품으로 구성된 카푸치노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전통 커피지만, 오후에 이를 마시는 것은 현지에서 ‘미각적 오류’로 여겨진다.
이러한 규칙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우유를 바라보는 이탈리아인들의 독특한 시각에 있다. 로마에 거주하는 식문화 연구가 엘리자베스 민칠리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우유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칼로리가 높은 하나의 ‘독립된 음식’으로 인식된다고 설명했다.
협회 표준 기준에 따르면 카푸치노 한 잔에는 에스프레소 25ml와 우유 100ml가 들어간다. 이 정도의 우유량은 상당한 지방, 단백질, 유당을 포함하고 있어 사실상 가벼운 식사에 준한다. 이 때문에 현지인들은 아침 시간에만 크루아상의 일종인 코르네토(Cornetto) 등의 빵을 곁들여 카푸치노를 식사 대용으로 마신다. 오전 11시 이후 본격적인 점심 식사 시간을 앞두고 이처럼 무거운 우유를 섭취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배를 채워 이어질 메인 요리의 맛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된다.
아울러 이탈리아인들은 시간대별로 맛을 엄격히 분리하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파스타, 고기, 생선, 치즈 등 짠맛과 단백질 중심의 요리를 즐기는 시간이다. 식사를 마친 후 이탈리아인들의 목적은 입안을 깔끔하게 헹구고 메인 요리의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에스프레소의 강한 쓴맛과 천연 산미는 입안을 정리하고 음식 맛을 돋우는 역할을 하지만, 식후에 카푸치노를 마시면 우유 거품이 혀 표면을 덮어 방금 먹은 요리의 잔향을 완전히 지워버리게 된다.
현지 문화에 발맞추기 위해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시간대별 커피 선택 기준을 보면, 오전 11시 전에는 카푸치노나 라테를 페이스트리와 함께 즐겨도 좋다. 그러나 오전 11시가 지난 후에는 에스프레소나, 에스프레소 샷 위에 약간의 우유 거품만 살짝 올린 마키아토를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만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의 대도시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는 오후나 저녁 시간에 카푸치노를 주문해도 대부분 문제없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1958년부터 바를 운영해 온 이탈리아 최고령 바리스타 안나 포시(101세) 할머니는 오후나 심야에도 관광객이 원하면 언제든 카푸치노를 만들어 준다. 그녀는 손님이 원하는 커피를 마실 권리를 존중한다면서도, 다만 오렌지 주스와 커피를 함께 마시거나 점심 직후에 바로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은 위장에 부담을 주어 소화를 방해하므로 권장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