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왕실 내에서 가장 뛰어난 학문적 성취와 탁월한 외교·사법적 업적을 쌓아 국민적 존경을 한-몸에 받아온 바지라키티야바(Bajrakitiyabha) 공주가 향년 47세를 일기로 끝내 타계했다. 지난 2022년 말 갑작스러운 심장 질환으로 쓰러져 혼메(昏迷·혼수) 상태에 빠진 지 약 3년 반 만이다. 왕실의 가장 전도유망했던 핵심 인사가 별세함에 따라 태국 사회는 깊은 슬픔에 잠겼으며, 향후 왕위 계승 구도를 둘러싼 정국 변화에도 자본시장과 국제 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3일 태국 왕실 사무국 및 방콕 현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바지라키티야바 공주는 지난 11일 오후 7시 48분 방콕 국립 쭐라롱껀 국왕 기념병원에서 의료진과 왕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왕실 측은 의료진이 동원 가능한 모든 최고 수준의 집중 치료와 밀착 소생 수술을 시행하며 회복을 도모해왔으나, 최근 몇 달간 복부 감염 합병증이 전신 장기로 전이되면서 다발성 장기 부전을 일으켜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끝내 안정시키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주의 비보가 전해지자 태국 정부는 긴급 내각회의를 소집하고 대대적인 추모 활동에 나섰다. 아누틴 찬비라꾼(Anutin Charnvirakul) 태국 총리는 전격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바지라키티야바 공주는 태국의 크나큰 자랑이자 무한한 자애로움을 실천한 보배였다”고 치하하며 공주의 가치관을 이어받아 사회적 소외 계층을 돕는 데 온 국민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태국 정부는 공주를 추모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15일간의 공식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으며, 이 기간 동안 전국의 모든 정부 관공서, 국영 기업 및 교육 기관은 일제히 조기를 게양하게 된다. 공주의 유해는 방콕 왕궁 내 피만 라따야(Piman Rattaya) 궁전에 안치되어 엄숙한 국장 의례를 치른다.
마하 와찌랄롱껀(Maha Vajiralongkorn·73세) 국왕의 일곱 자녀 중 장녀이자 첫 번째 왕비인 소암사왈리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바지라키티야바 공주는 단순한 의례적 왕족의 삶을 거부하고 실천적인 지식인의 길을 걸어왔다. 방콕 랏치니 학교와 영국 히스필드를 거쳐 탐마삿 대학교 법학과를 차등 우등으로 졸업한 뒤,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인 코넬 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사법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귀국 후에는 태국 검찰청에서 보좌 검사, 지방 검찰청 수석 검사, 전문 검사를 역임하며 현지 언론과 법조계로부터 ‘법률 공주’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얻었다.
특히 공주는 사법 체계 내에서 소외된 여성과 아동의 인권 보호에 평생을 헌신했다. 지난 2006년 교도소 내 임산부와 수감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영유아를 지원하는 ‘깜랑짜이(Kamlangjai·마음의 힘)’ 프로젝트를 출범시켜 이들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주도했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성과는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지난 2010년 유엔(UN)이 여성 수감자 처우와 여성 범죄자 비구금 조치에 관한 국제 표준인 이른바 ‘방콕 규칙(Bangkok Rules)’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후 공주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주재 태국 대사를 역임하고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동남아시아 법치주의 친선대사 및 유엔여성개발기구(UNIFEM) 대사로 활동하며 다자 외교 무대에서 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체력 단련과 장거리 마라톤을 즐기던 공주는 지난 2022년 12월 나콘랏차시마주에서 군사 전시회를 준비하며 반려견을 훈련시키던 중 마이코플라스마(Mycoplasma) 박동 감염에 따른 심각한 심장 부정맥 증세로 갑자기 쓰러진 뒤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현재 73세인 와찌랄롱껀 국왕은 아직 공식 왕세자를 지명하지 않은 상태다. 태국 왕실 전통은 남성 우선 왕위 계승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나 1974년 개헌을 통해 여성의 왕위 계승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동안 왕실 안팎에서는 공주가 지닌 독보적인 업무 역량과 국민적 신망을 바탕으로 직접 여왕에 등극하거나, 혹은 유력 차기 계승권자인 디빵꼰 왕자를 보좌할 섭정왕으로서 왕실의 안정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공주의 안타까운 별세로 태국 왕실은 가장 강력한 정신적 지주를 잃게 되었으며, 엄격한 왕실모독법 체제 하에서 향후 왕위 승계 구도의 불확실성을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역사적 과제를 안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