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트럼프 정부가 과거 법원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렸던 관세 장벽을 한층 더 치밀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다시 구축하기 시작했다. 심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돌발 발표 대신 무역대표부(USTR)의 정식 조사 절차를 밟는 등 장기적이고 제도적인 압박으로 태세를 전환하는 모양새다.
5일 미국 정부 및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는 최근 강제 노동을 활용한 제품의 유통을 방지하는 파트너국들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수개월간 진행해 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불공정 무역 행위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1974년 무역법 301조에 의거해 시행됐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캐나다, 멕시코, 인도네시아, 대만, 영국 등 14개 국가 및 지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10퍼센트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아울러 베트남을 포함한 나머지 45개 조사 대상국에 대해서는 이보다 높은 12.5퍼센트의 추가 관세율을 책정했다. 다만 이번 제안이 즉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며, 미국 무역대표부는 오는 7월 6일까지 공청회 등을 통해 대중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최종 시행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처럼 무역법 301조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은 올해 2월 미국 대법원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에 기반한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1974년 무역법 122조를 발동해 150일 한시적으로 10퍼센트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이는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 반면 무역법 301조에 따른 관세는 부과 세율이나 적용 기간에 제한이 없어 통상 압박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4일 오후 진행된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팜 투 항 대변인은 미국 무역대표부의 조사 결론이 강제 노동을 예방하고 감소시키기 위한 베트남의 실질적인 노력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변인은 베트남이 국제노동기구(ILO) 규정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준수하며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어 앞으로도 미국 측과 건설적인 자세로 협의를 지속해 자국 노동자와 기업의 합법적인 이익을 보호하겠다고 덧붙였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의 임시 관세 조치가 만료되는 7월 이전에 무역법 301조에 기반한 새로운 관세 체계가 촘촘하게 들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이미 지난 1일 브라질산 일부 품목에 25퍼센트의 관세를 제안한 데 이어, 유럽연합(EU)산 자동차에 대해서도 협정 미준수를 이유로 관세율을 25퍼센트로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미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로 환급해야 하는 1천660억 달러 규모의 기존 관세 반환 소송에 대해서도 항소를 제기하는 등 전방위적 무역 전쟁의 고삐를 죄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