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의 최고 권위 수학 기관인 고급수학연구소(VIASM)가 학생들이 학교 과제와 문제 풀이를 인공지능(AI) 챗봇에 전적으로 떠넘기면서 심각한 ‘지적 퇴보’와 인지 능력 저하 위기에 직면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27일 베트남 교육훈련부와 현지 학계 보도에 따르면, 지난 22일 고급수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학교 교육 내 AI 활용과 도전’을 주제로 한 학술 라운드 테이블 세미나에서 수학계 석학들과 교육부 고위 관료들은 학생들이 학습의 핵심 과정인 고뇌와 사색을 AI에 외주화(Outsourcing)하는 현상에 대해 일제히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호뚜바오 교수는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AI가 수학적 개념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이다”라며 자신이 진행한 정밀 테스트 결과를 공개했다. 바오 교수는 생성형 AI 툴에 베트남 최초의 필즈상(2010년) 수상자이자 현재 VIASM의 학술 이사인 응오바오쩌우 교수가 랭글랜즈 프로그램의 ‘기본 보제(Fundamental Lemma)’를 어떻게 증명했는지 설명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난제는 전 세계 수학자들이 수십 년간 풀지 못했던 대수 기하학의 핵심 미결 과제였다.
테스트 결과 AI가 내놓은 해설은 겉보기에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오 교수는 “독자들에게 고도의 이해력을 갖춘 것처럼 착각을 전할 뿐, 이는 실상 거대한 데이터셋을 검색하고 확률 매트릭스에 기반해 문장 패턴을 체인처럼 엮어낸 정보 합성 능력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생성형 AI는 본질적으로 언어 모델(LLM) 체계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수학 공식의 구성 성분과 상호 관계는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어도, 수학적 지식이 가지는 본질적인 자연 법칙이나 인간의 상식, 실제 삶의 맥락과 연결하는 메커니즘은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바오 교수는 이러한 도구에 학생들이 과도하게 기댄다면 스스로 논리를 구축하는 두뇌 자산이 완전히 무력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 관료 역시 교육 현장의 붕괴 징후를 증언했다. 따응옥찌 교육훈련부 중등교육국 부국장은 학생들이 수학 과제를 받자마자 아무런 고민 없이 AI 창에 타이핑해 즉각적인 모범 답안을 도출하는 숏컷 학습법에 깊은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찌 부국장은 이러한 행태가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수학자 조지 폴리아(George Pólya)가 1945년 저서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How to Solve It)’에서 정립한 현대 수학 교육의 대원칙을 전면 전도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학 교사는 학생이 스스로 지식을 출산할 수 있도록 너무 적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 돕는 ‘산파’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현재의 AI는 학생이 개입할 여지도 없이 모든 노동을 대신 해주며 과도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학 교육의 핵심 지표는 고차원적 사유 능력과 메타인지(초인지)를 발달시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지식을 발견하고 창의성을 보존할 수 있는 생각의 공간을 반드시 남겨두어야 한다는 조례를 상기시켰다.
베트남 수학계의 상징인 응오바오쩌우 교수 역시 현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을 촉구했다. 쩌우 교수는 “현재 교육계에서 나타나는 AI의 가장 큰 어두운 단면은 대다수 학생이 과제를 회피하고 도망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로 인해 숙제가 가지는 교육적 기능과 의미가 통째로 증발했다”고 질타했다. 다만 교사가 학생들의 동선을 올바르게 가이드해 준다면 AI가 훌륭한 탐구형 보조 도구로 전환될 수 있는 양면성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쩌우 교수는 “AI가 학습의 노동을 회피하는 꼼수가 아니라 지식 획득의 순수한 매개체로 안착할 수 있도록, 시험과 평가 방식 등 교육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라며 “스스로 고통스럽게 일하고 수고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지적 진보도 일어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같은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 현직 교수들은 자신만의 방어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호뚜바오 교수는 AI를 켜기 전 반드시 자신만의 독자적인 해법을 먼저 도출하는 행동 수칙을 세웠다고 밝혔다. 아울러 하노이 외상대학교(FTU) 강의 당시 AI를 활용한 부정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지필 평가 대신 학생과 교수가 마주 앉아 논리를 검증하는 ‘1 대 1 구술시험(Oral exam)’ 체계로 전면 전환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제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형화된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질문력을 훈련하는 방향으로 조율되어야 안전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고급수학연구소는 이번 세미나를 기점으로 베트남 교육계가 마주한 AI의 장벽과 기회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소 산하에 ‘교수학습혁신센터(Center for Teaching and Learning Innovation)’를 전격 발족했다. 신설 센터는 향후 선진 수학 교육 공정 연구, 교사 연수 프로그램 개발, 실험 학급 운용, 전국 단위 수학 클럽 시스템 매트릭스 구축 등을 전담하게 된다. 센터는 올해 안으로 수학 교수법 내 AI 애플리케이션 적용에 관한 2개의 대형 연구 프로젝트와 교사 대상 메타인지 강화 연수 프로그램을 우선 실행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