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이 독자적인 전략물자 수출통제 제도를 시행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 제조업계가 수출 차질 위기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민관 합동 대응으로 통관 대란을 막는 한편, 현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식 수출통제 모델’ 전수에 나섰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은 지난해 전략물자 수출통제 제도 도입을 발표하고 올해 6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문제는 통제 기준 분류 방식이었다. 한국·미국·일본·독일 등은 통상 5자리 기술코드(ECCN)를 활용해 노광장비 같은 특정 핵심 품목만 정밀하게 골라내는데, 베트남은 지난해 10월 시행령을 통해 ECCN 대신 일반 관세 분류체계(HS코드)를 활용한 통제 방식을 택했다. 이 때문에 통제 대상이 아닌 일반 부품까지 기업이 일일이 비통제 품목임을 입증해야 하는 소명 부담이 커졌다. 한 진출 기업 관계자는 “현지 세관과 관할 부처가 충분한 수출통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제도를 도입하느라 현지 기업들이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에 산업통상부가 베트남 측과 협의에 착수했다. 베트남 당국이 일반 가전·IT 제품에 흔히 쓰이는 저사양 컴퓨터 프로세서까지 전략물자로 묶으려 하자, 한국 정부는 무기 전용 우려가 있는 첨단 고사양 칩만 통제하는 국제 표준 기준을 역제안해 관철시켰다. 범용 반도체가 규제망에 걸려 주요 생산라인 완제품 수출이 중단될 뻔한 위기를 선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이어 4월에는 베트남이 한국식 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상시 소통할 수 있도록 양국 간 ‘수출통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제도 시행 이후에도 난관은 이어졌다. 기업들은 특히 내부자율준수(ICP) 요건을 문제로 제기했다. 통상 ICP 인증 기업은 1년간 개별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있는 포괄허가를 받는데, 베트남은 제도를 처음 도입하면서도 ‘ICP 2년 운영 실적’을 요구해 사실상 포괄허가 취득이 불가능했다. 수출허가 심사에서 일반 발주서(PO) 대신 정식 계약서 제출을 요구한 것도 통관 지연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제1차 한·베트남 수출통제 대화에서 이런 애로를 전달하고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4월 MOU로 개설한 소통 채널이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이 베트남 제도 안착에 공을 들이는 것은 현지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베트남에는 1만100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지난해 이들의 수출액은 1165억 달러로 현지 기업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삼성전자·LG전자·포스코·효성·SK 등 대형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전자부품 등 중간재 공급망이 촘촘히 연결돼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계기로 ‘한국식 수출통제’ 시스템의 해외 전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의 통상·관세 협상에서 공급망 안보 요건을 맞추려 관련 제도를 새로 구축하려는 아세안 국가가 늘면서 전수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한국 제도의 강점은 전략물자 해당 여부를 가리는 ‘판정’과 실제 수출을 승인하는 ‘허가’ 기능을 분리해, 무역안보관리원이 기술 판정을, 산업통상부가 허가·정책을 맡는 구조다. 특히 공공기관이 법적 효력 있는 전문판정을 무료로 제공하고, 기업이 온라인 시스템으로 스스로 판정하는 ‘자가판정’과 등급별 자율준수(CP) 제도까지 갖춘 점이 경쟁국과 차별화된다.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들도 지난 5월 방한해 관련 제도를 교육받고 자국 제도의 참고 모델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무역안보관리원은 내년부터 베트남 현지에 상주 인력을 파견해 제도 정착과 한국 기업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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