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 거절의 값

최근 대중음악계에 흥미로운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를 향해 그토록 열망을 드러냈던 BTS가 이번 시상식 참여를 정중히 거절했다는 소식입니다.

과거 슈가는 인터뷰에서 그래미를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인정”이라 말했고, RM 역시 더 열심히 음악을 만들게 하는 강력한 동기부여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몇 해가 지난 지금, 최고의 영예를 눈앞에 두고 단호한 거절의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거절의 이유는 분명합니다. 정당한 경쟁 대신 ‘아시아 음악’이라는 특정 카테고리에 가두려는 기득권의 보수적인 태도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는 비단 BTS만의 문제가 아니라, 불투명한 시상 방식에 그래미 보이콧을 선언해 온 많은 음악인들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려는 한국 MZ 세대의 당당함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한국의 MZ 세대는 자기주장이 확실합니다. 부당한 요구에는 퇴사를 감행할 만큼 단호하며, 기성세대가 며칠을 고민할 거절도 이들은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옮깁니다. 이들은 거절이 다소 예의 없어 보일지라도, 나름대로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여깁니다. 참 부러운 자신감입니다.

하지만 기성세대에게 거절은 언제나 무거운 과제였습니다. 인간관계나 직장에서 거절은 곧 권력을 상징했기에,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든든한 배경을 가진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국가 간의 양상을 살펴보면 거절이 어떻게 거래되는지 확실히 보입니다. 힘없는 국가가 힘있는 국가를 상대로 거절하는 것을 본 적 있으신가요? 거절은 힘없는 을(乙)의 몫이 아닙니다. 거절의 값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자칫 생각 없이 거절부터 하다가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거절의 값을 감당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수락한 제안으로 나라가 기울어진 케이스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1985년 일본은 미국과 플라자 합의를 맺어 엔화 가치를 대폭 끌어올리는 데 동의했고, 이듬해에는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반도체 수출까지 제한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물론 그 긴 침체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이 합의들이 중요한 출발점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진짜 대단했습니다. 자동차, 반도체, 가전제품이 세계를 싹쓸이하며, 서구식 자본주의를 제치고 특유의 조직력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 믿던 시기였습니다. 서구의 경영학자들이 일본을 배우러 줄을 서던 정도였으니, 국민들이 느꼈을 우월감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이 화를 불렀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상승을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본 것이지요. 결국 미국은 일본에게 노골적으로 물리적인 억제책을 제시했고, 일본은 이를 거절하지 못한 채 쇠퇴의 길로 들어섭니다. 기본적으로 2차 대전 패전 후 철저히 미국에 종속된 상황의 일본에게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할 힘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일본에서 나온 책이 있습니다. 이시하라 신타로와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가 함께 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1989)인데, 주 내용은 이제 일본도 살 만하니 종속적인 미국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독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정작 거절해야 할 합의는 거절하지 못하고, 주변 국가의 역사에 대한 배려 요청에는 완강한 거절 의사를 보이며 역사 왜곡, 식민 지배 정당화 등으로 이웃 나라와의 외교적 마찰을 가중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제안을 거절함으로 지불할 값을 감당할 수는 없지만, 주변 국가의 항의를 거절하는데 필요한 값은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거절은 바로 힘입니다.

이렇게 거절은, 국가는 물론이고 우리 개인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현명한 거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삶의 승자가 될 것이고, 거절이 필요한 사안에서 침묵해야만 하는 사람은 남의 삶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1. 가능한 한 빨리 알린다: 결정이 섰다면 즉시 전달해야 합니다. 미루는 행위는 상대에게 헛된 희망을 주어 더 큰 실망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희망 고문입니다.

2. 구태여 긴 이유를 대지 않는다: 이유가 많아질수록 거절은 협상의 대상이 됩니다. 내세운 이유에 반박이 통하면 거절을 못하게 됩니다. 상대가 반박할 수 없는 간결하고 명확한 이유 하나면 충분합니다.

3. 나만의 원칙을 세운다: 상황마다 고민하지 말고 ‘보증 금지’, ‘주말은 가족과 함께’ 같은 고정된 원칙을 세워 두세요. 원칙에 기반한 거절은 미안함을 줄여줍니다. 요즘 MZ 세대가 잘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퇴근 후 시간은 회사에 종속되지 않는다며 회식을 거절합니다.

4. 미안함은 한 번만 표시한다: 반복되는 사과는 거절을 흥정으로 변질시킵니다. 정중하고 짧은 거절이 상대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는 가장 예의 바른 태도입니다.

5. 거절의 대가를 각오한다: 모든 거절에는 관계나 기회의 상실이라는 비용이 발생합니다. “어떻게 거절할까”를 고민하기보다 “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었는가”를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거절을 통해 잃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수락해야 합니다. 일본이 그랬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예민한 사항입니다. 그래서 거절도 자격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거절의 값을 치러도 될 정도의 힘은 키워야 합니다.

거절은 단순히 ‘아니오’라고 말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의 경계선을 긋는 필연적 도구입니다. 그래미라는 거대 조직에 당당히 거절을 선언한 BTS가 치러낼 ‘거절의 값’이 과연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합니다. 그들의 용기가 그들의 음악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비록 불편하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을 좀 더 가볍고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거절의 미학. 특히 베트남 같은 낯설은 이국 땅에서 더욱 확실히 익혀야 할 삶의 요령이기도 합니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 교민 모두 한번 돌아보시길 기대합니다.

나는 거절의 값을 지불할 힘이 있는가?

About chaovietnam

chaovietnam

Check Also

Han Column – 인공지능과의 동거

인공지능과의 동거가 일상화되는 머지않은 미래에서 과연 우리 인간은 인공지능과 조화로운 동거가 가능한지 한번 돌아보고자 합니다. …

답글 남기기

Verified by MonsterIns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