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인플루언서 추천 시스템 자체 개발
“요즘 베트남에서 한국 제품 사는 건 너무 쉬워요.
틱톡에서 방에 앉아 주문하면 집 앞까지 배송해 줍니다.
이런 상황에서 ‘K’ 라는 게 이제는 좀 무색해졌어요.”
호찌민시 1군 NIPA(정보통신산업진흥원) 호찌민 IT지원센터에 입주한 로로엘(ROROEL)의 조대희(Cho Daehee) 대표는 인터뷰 내내 자기 사업을 부풀리지 않았다. K-뷰티 붐을 타고 베트남에 들어온 마케팅 회사 대표의 입에서 나온 첫 진단이 “K는 이제 무기가 아니다”였다.
아마존 셀러의 좌절, 그리고 플랫폼
로로엘의 출발점은 마케팅이 아니라 유통이었다. 조 대표는 2017년부터 아마존(Amazon) 셀러로 한국 유명 제품을 미국 시장에 파는 일을 했다. 그런데 반복되는 패턴이 있었다. “저희가 제품을 미국 시장에서 띄워 놓으면 본사가 그걸 그냥 가져가는 거예요. 저희는 셀러니까 파워가 없잖아요. 사서 파는 사람이니까. 본사 입장에선 ‘어, 이거 잘되네’ 하고 직접 해버리는 거죠.” 수수료도 계속 뛰었다. 남의 플랫폼에서 남의 제품을 파는 구조의 한계였다.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가 플랫폼을 만들어서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서 사업을 해보자.”
동시에 중국 O2O 오프라인 매장 사업 기회가 열렸다. 그러나 사드(THAAD) 사태가 터졌다. 중국이 막히자 많은 이들이 베트남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만들려던 플랫폼과 베트남 시장의 기회가 맞아떨어진다고 봤다. 목표는 ‘베트남의 아마존(Amazon) ‘이었다.
베트남과 인연을 맺은 지는 10년이 넘는다. 다만 초기에는 유통 중심으로 오갔을 뿐이고, 본격적으로 법인을 세우고 뛰어든 것은 2019년이다. 그마저 코로나로 기존에 쌓은 것이 리셋됐다. 2022년부터 호찌민에 상주하며 다시 시작해 현재 4년 차다. NIPA 센터에는 2023년 입주했다. 그 전에는 일반 오피스를 얻어 운영했으나,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며 센터를 쓸 기회를 얻었다.
뷰티에서 마케팅으로…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자체 IT 플랫폼은 화장품에 특화돼 있었다. 남의 브랜드로 테스트하기엔 가격 구조나 현지 진입 리스크를 통제할 수 없어, 자체 브랜드까지 만들어 플랫폼을 돌렸다. 이 과정에서 정부지원사업 선정과 민간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기술 기반 비즈니스 역량을 확보했다.
전환점은 주변에서 왔다. “여기 계신 사업가분들이 마케팅 필요성을 느끼고 저희한테 요청을 많이 하세요. 그러다 보니 그쪽으로 확장하게 됐습니다.” 진출 2년 차부터 사업 영역을 디지털 마케팅과 시장 진출 컨설팅으로 넓힌 배경이다. 온라인 마케팅을 하다 보니 오프라인 행사까지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2024년 하노이에서 열린 중소기업 지원 행사에서는 장관과 한진그룹 사장 및 소진공 이사장까지 참석한 이벤트 운영을 맡았다.
한국 내수 부진이 이 흐름을 키웠다. “재작년 말부터 F&B를 비롯한 다양한 업종에서 진출이 계속됩니다. 진출하는 입장에선 마케팅과 현지화를 해줄 업체가 필요한데, 로컬에 맡기자니 컨트롤이 쉽지 않은 거죠.”
로로엘 활동 사진
로컬 에이전시보다 비싸다, 그래도 쓰는 이유
조 대표는 로컬 대비 강점을 두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제품 이해도다. “베트남 분들이 한국 제품 이해도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만큼은 아니에요. 파는 입장에선 이해도가 남달라야 하는데, 로컬 업체는 한국 제품이나 한국 음식조차 이해하는 정도가 높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마케팅할 때 이 부분을 강조해야 한국 제품으로 어필이 되는데, 엉뚱한 부분으로 어필이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둘째는 커뮤니케이션과 관리다. 현지어나 영어로 진행되는 캠페인은 관리 자체가 쉽지 않고, 리포트 하나 받는 것도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당연히 로컬 일반 에이전시보다 가격이 높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걸 다 감안해서 저희와 협업해 주십니다.”

“성과요? 솔직히 애매합니다”
실적을 묻자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성과라는 걸 하나의 숫자로 이야기하는 건 어렵습니다. 마케팅은 제품 경쟁력이나 가격, 유통, 영업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저희가 모든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저희는 브랜드가 현지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로로엘은 한국 기업의 베트남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현지 전문 마케팅 기업이다. 단순히 광고를 집행하는 수준을 넘어 시장조사부터 브랜드 전략 수립, 콘텐츠 제작, 인플루언서 협업, 오프라인 프로모션, 런칭 캠페인까지 현지 진출 전 과정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실제 프로젝트도 이러한 전문성에 맞춰 축적돼 왔다. 한국 프랜차이즈 카페 더벤티(The Venti)의 베트남 시장 진출 및 런칭 마케팅을 비롯해 신의주찹쌀순대와 글로벌 구슬아이스크림 브랜드 미니멜츠(Mini Melts)의 베트남 런칭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또한 글로벌 럭셔리 코스메틱 브랜드 라메르(La Mer)와 , 베트남 대표 주얼리 기업 PNJ <VIP 프로모션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기업뿐 아니라 교육기관과의 협업 경험도 있다. 서강대학교의 베트남 현지 시장조사와 데모데이(Demo Day)를 기획·운영했으며, 서정대학교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한 온라인 마케팅 프로젝트도 수행했다. 조 대표는 로로엘의 고객을 ‘대기업’이 아닌 ‘성장을 준비하는 기업’으로 정의했다. “대기업은 현지 법인을 설립하거나 자체 마케팅 조직을 구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은 제한된 예산과 인력으로 새로운 시장에 도전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희는 그런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보다 현실적인 비용으로 베트남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업 방식도 다르다. 별도의 대규모 아웃바운드 영업보다 블로그와 유튜브 등 자체 콘텐츠를 통해 고객이 먼저 문의하는 인바운드 비중이 높다. 베트남 시장에 대한 실무 경험과 현지 사례를 꾸준히 공유하면서 신뢰를 쌓아왔고, 실제 상담과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 대표는 “단순히 마케팅을 대행하는 회사가 아니라 한국 기업이 베트남 시장을 가장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현지 파트너가 되는 것이 로로엘의 목표”라고 말했다.

“마케팅 회사가 아니라, 마케팅 데이터를 기술로 만드는 회사입니다.”
NIPA 센터 입주 기업 대부분이 AI·IT 기업인데 마케팅 기업이 입주한 이유를 묻자 조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를 단순한 마케팅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만드는 것은 광고가 아니라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 기술입니다.” 그는 기존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설명했다. “대부분의 인플루언서 선정은 담당자의 경험이나 감에 의존합니다. 팔로워 수나 조회수 중심으로 제안하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실제 캠페인을 해보면 조회수가 높다고 반드시 성과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로로엘은 지난 수년간 베트남 시장에서 수행한 프로젝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왔다. 업종별 캠페인 성과, 콘텐츠 유형, 참여율, 도달률, 브랜드 적합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했고, 이를 분석할 수 있는 자체 AI 추천 시스템을 개발했다.
기업이 업종과 캠페인 목적을 입력하면 AI가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합한 인플루언서를 추천하고, 예상 성과를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단순히 팔로워 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캠페인 데이터를 학습해 추천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조 대표는 “저희의 경쟁력은 마케팅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기술로 전환하는 데 있다”며 “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AI의 추천 정확도도 함께 높아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접근은 현재 운영 중인 플랫폼 서비스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기업은 데이터 기반으로 적합한 크리에이터를 찾고, 캠페인을 운영하며, 결과 데이터를 다시 시스템에 축적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많은 기술 기업이 서비스를 개발한 뒤 어떻게 시장에 적용할지 고민한다면, 저희는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기술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기술과 서비스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계속 고도화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무실 공간에 대해서도 같은 철학을 강조했다.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장비가 아니라 데이터와 사람입니다. 콘텐츠 촬영은 프로젝트 특성에 맞게 외부 현장에서 진행하지만, 이 공간에서는 AI 시스템 개발, 데이터 분석, 플랫폼 운영, 고객 전략 수립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저희에게는 스튜디오보다 개발과 협업이 가능한 환경이 더 중요합니다.”


목표는 결국 IT, 그리고 양방향 네트워크
향후 계획을 묻자 조 대표는 ‘기술 고도화’를 가장 먼저 이야기했다. “AI와 플랫폼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사업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개발과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투자가 들어갑니다. 하지만 저희는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얻는 데이터를 다시 기술에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서비스와 기술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선순환이 저희의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현재 로로엘은 자체 AI 기반 인플루언서 추천 시스템을 시작으로 데이터 분석과 자동화 기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향후에는 기업이 베트남 시장 진출 과정에서 필요한 시장조사, 파트너 발굴, 마케팅 전략, 캠페인 운영까지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통합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조 대표는 “저희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한 마케팅 대행사가 아니라 베트남 비즈니스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플랫폼 기업”이라며 “기업들이 더 적은 시행착오로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계획” 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뿐 아니라 베트남 기업의 한국 및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연결하는 양방향 비즈니스 플랫폼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조 대표는 로로엘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술 기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