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를 치다보면 잘 풀리는 날도 있는가 하면 전혀 안 풀리고 꼬이기만 하는 날이 있습니다. 잘 풀리는 날에는 어떻게 쳐도 대충 공이 홀을 향해 달리곤 하는데, 안되는 날은 아무리 집중을 한다고 해도 공은 술 취한 인간의 발걸음처럼 흔들거리기만 합니다.
이런 날이 문제지요, 안되는 날 어찌해야 하나요?
골프에서는 이런 일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늘 다음에는 잘되겠지 하는 희망으로 다음 라운드를 기약하며 구장을 떠나지만 현실은 기대치와 다릅니다. 또 다시 반복되는 혼돈의 시간을 만나고, 그 시간마저 익숙해지면 이제는 ‘욕심을 내려놓자’ 라는 미명 하에 포기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실수가 용인되는 루저의 함정에 편하게 자리하게 됩니다.
골프계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는 실수 속에서도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골퍼의 자세라고 말합니다. 공이 안 맞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점수를 만들어가란 소리입니다. 싱글 골퍼들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평소와 다르게 실수가 많아 보이는데 실제 스코어가 크게 다르지 않는 밉상스러운 동반자가 바로 그런 자세를 익힌 골퍼입니다. 이들은 안 맞는 샷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어프로치가 무너지면 웨찌를 버리고 퍼트를 잡아서 라도 공을 홀 가까이로 보냅니다. 그들은 절대 공이 멋대로 가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주역” 계사전에 궁즉변 변즉통 (窮則變 變則通) 이란 말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쓰는 궁하면 통한다는 의미의 궁즉통(窮則通)의 어원입니다. 막힌 길은 변화를 통해서 풀어보라는 것입니다. 어프로치가 막히면 퍼트를 들어서 변화를 구하는 것이 그런 시도의 하나입니다. 옛사람이 수천 년 전에 적어둔 그 한 줄이, 안 풀리는 날의 골프장 잔디 위에서도 그대로 살아납니다. 2002년부터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베트남 한인사회의 최대 미디어 노릇을 하던 씬짜오베트남 역시 최근 그와 꼭 닮은 혼란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아날로그 잡지로 20년을 넘게 지내다가, 디지털 시대의 당연한 요구를 마주하다 보니, 그 낯섦에 어찌 할 바를 모른 채 당황하는 시기를 거쳤습니다.
이제는 우리 시대가 끝났구나 싶었지요.
그래도 살아야 지요. 시대가 바꿨다고 그냥 무너질 수는 없지요. 시대가 변했는데 그 변화를 거부하며 살아갈 길이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무너진 필드에서 보기라도 건지자는 심정으로 새 시대의 바람 앞에 마주 섭니다.
25년을 고이 키운 아날로그 잡지 위에 서툰 디지털의 옷을 입힙니다. 당연히 시행착오도 나옵니다. 엉뚱한 차림새에 혼자 한숨을 쉰 날도 있었지요. 그렇게 1년여를 입시공부 하듯 꾸준히 매달리다 보니 조금씩 감이 잡힙니다.
질서는 무질서를 거쳐 생겨납니다. 혼돈의 시간 다음에 새로운 질서가 오는 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평소의 리듬이 죄다 무너졌다고 느낄 때야 말로, 실은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순간인 것이지요. 궁(窮)했으니 변(變)할 차례였던 것입니다.
그 난전의 시간을 건너고 나니, 어느새 베트남 한인사회의 그 어느 미디어도 갖추지 못한 디지털 인프라가 손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감성이 가득한 물리적 잡지 위에 사이트와 앱과 온라인 프로그램을 입히면서,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인프라가 만들어졌습니다.
지역적, 시간적, 언어적 제한이 사라졌습니다. 호찌민 지역만이 아니라 베트남 전역에서 시간의 제약 없이 언제나, 그리고 다양한 언어를 포용하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했습니다. 아날로그의 무게와 감성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디지털의 날개를 단 것입니다. 한때 그토록 요원해 보이던 변화가, 이제는 오히려 설레는 기대로 다가옵니다. 막혔던(窮) 것이 변(變)하여, 비로소 통(通)한 것입니다.
그대는 어떤가요, 그대의 필드에도 안 풀리는 날이 있지 않은가요?
지금이 바로 그 한복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막혔다는 것은 곧 변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이고, 그 변화의 끝에는 새로운 길이 열리더라는 것을, 안 풀리던 라운드의 18번 홀에서, 그리고 숨 막히던 디지털의 한 해 끝에서 우리는 배웠습니다.
“공이 멋대로 가도록 놔두지 않는다면, 희망은 살아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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