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투어리즘’ 열풍

달리면서 세계를 여행한다

새벽 5시 30분의 하노이(Hà Nội). 아직 잠들어 있는 호안끼엠 호수(Hồ Hoàn Kiếm) 수면 위로 안개가 깔리고, 가로등 불빛이 물에 흔들린다. 그 고요 속으로 두 발이 콘크리트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파스텔 건물들 사이를 지나고, 천 년 고도의 좁은 골목을 통과해, 호찌민 묘소(Lăng Chủ tịch Hồ Chí Minh) 앞 바딘 광장(Quảng trường Ba Đình)에 닿는다. 가이드와 함께 달리는 여행자의 GPS 시계가 9km를 찍을 때쯤, 도시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러닝 투어리즘(Running Tourism)의 풍경이다. 마라톤 완주 메달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를 두 발로 탐색하는 여행 방식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여행과 달리기가 결합한 이 ‘레이스케이션(Race-cation)’은 이제 소수 마니아의 취미를 넘어, 글로벌 여행 트렌드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무대 중 하나로 베트남이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마라톤이 여행의 이유가 되는 시대

숫자가 트렌드를 말해준다. 스포츠 앱 스트라바(Strava)가 전 세계 1억 3,50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2024 연간 스포츠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 마라톤·울트라 마라톤 등록 건수는 2024년에만 9% 증가했다. 런 클럽(run club) 참여율은 같은 해 59% 급증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 최대 호텔 그룹 아코르(Accor)는 ‘체육 모험(Athletic Adventure)’을 2025년 최대 여행 트렌드로 꼽으며, 운동 휴가 관련 검색이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레이스 무대에서도 기록이 깨졌다. 2024년 뉴욕 마라톤은 5만 5,000명 이상의 완주자를 배출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2025년 도쿄 마라톤 역시 역대 최다인 3만 8,000명을 유치했다. 2025년 런던 마라톤 추첨에는 무려 84만 명이 몰렸고, 그중 국제 지원자 증가율만 43%에 달했다.
러닝 USA의 2024 글로벌 러너 서베이는 이 트렌드의 심리적 핵심을 짚었다. 러너들이 레이스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 ‘목적지(location)’라는 것이다. 더 이상 마라톤은 집 근처 도로에서 42.195km를 완주하는 행위가 아니다.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를 넘고, 파리의 샹젤리제를 달리고, 도쿄의 황궁 주위를 돌며 그 도시를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체험하는 ‘이동 관광’이 됐다.
이 트렌드의 심층 동인을 네덜란드 심리학자들은 매슬로(Maslow)의 욕구 피라미드 최상단에서 찾는다. “기술 발전으로 더 많이 앉아 있고, 신체 노동은 줄었으며, 에너지는 남아돈다. 우리에게는 목표가 필요하다.” 하이킹이나 사이클링이 아닌 달리기가 특별히 부상한 이유도 있다.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은 유산소 운동이라는 점이다. 신발 하나면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고, 도시의 골목길이 그대로 코스가 된다.

런 클럽, 클럽을 대체하다

러닝 투어리즘의 성장 배경에는 전 세계 도시를 물들이고 있는 ‘런 클럽 문화’가 있다. 스트라바 데이터는 “런 클럽이 나이트클럽을 대체하는 사교 공간으로 부상했다”고 진단한다. 운동을 통한 사회적 연결이 참여의 주요 동기가 됐으며, 응답자의 58%가 피트니스 그룹을 통해 새 친구를 사귀었다고 답했다. Z세대는 런 클럽을 통해 만난 사람과 데이트한 경험이 5명 중 1명에 달했다.
방콕 루미피니 공원 주변에는 아디다스 러너스(Adidas Runners) 클럽이 주 2회 트랙 훈련과 주말 장거리 런을 진행한다. 도쿄 타워 주변 거리는 밤마다 런 클럽의 발소리로 채워진다. 시드니에는 60개 이상의 런 클럽이 경쟁하며 도시를 달린다. 이 현상은 단순한 피트니스 트렌드가 아니다. 디지털 연결이 극대화된 시대에, 오히려 몸을 직접 부딪히는 오프라인 만남을 갈망하는 역설적 욕구가 러닝이라는 매개를 통해 분출되고 있다.
여행과 런 클럽은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여행지의 런 클럽에 ‘게스트 러너’로 참가해 현지인과 함께 달리는 것이 새로운 여행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어 한마디 없이도 달리는 페이스와 땀으로 소통할 수 있다.

달리는 여행자는 ‘황금 관광객’인가

러닝 투어리즘이 도시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숫자로 증명됐다. 2024년 보스턴 마라톤의 경제 효과는 매사추세츠주 전체에 5억 910만 달러, 한화로 약 6,900억 원에 달했다. 2,900개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2억 700만 달러의 가계 소득을 창출했다.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한 러너의 81%가 주 외부에서 방문했으며, 방문자 1인당 주말 평균 지출은 500달러에 달했다.
마라톤 참가자들이 ‘혼자 오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러너는 2~3명의 동반자와 함께 여행하고, 59%가 3~5박을 체류한다. 레이스 하루를 위해 최소 3박의 여행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호텔·식당·관광지가 모두 수혜를 입는다. 보스턴 시내 호텔에 머문 관람객의 하룻밤 숙박비 평균은 429달러였고, 기타 활동 지출은 500달러였다.
다만 러너 자체가 항상 ‘이상적인 관광객’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레이스 전날 탄수화물 식단을 챙겨야 하는 러너는 고급 레스토랑보다 국수집을 선호하고, 레이스 당일에는 완주 직후 호텔 침대에 쓰러진다. 진짜 경제 효과는 러너 본인보다 그를 응원하러 함께 온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나온다. 러닝 투어리즘의 영리한 기획자들은 이 구조를 꿰뚫고 있다. 가장 경쟁력 있는 러닝 투어 패키지는 러너와 비러너 동반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담고 있다.

베트남, 러닝 투어리즘의 신무대

베트남은 러닝 투어리즘의 신흥 핵심 무대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가 맞물린다. 하나는 베트남 관광 자체의 폭발적 성장이다. 2025년 베트남의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22.1% 증가해 약 1,717만 명을 기록했으며, 동남아시아 최고 성장률 목적지로 올라섰다. 다른 하나는 베트남이 제공하는 다양한 지형이다. 하노이의 천 년 고도, 달랏(Đà Lạt)의 고원과 소나무 숲, 사파(Sa Pa)의 계단식 논과 만년설 봉우리, 꾹프엉(Cúc Phương)의 열대우림.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다양한 런 코스를 한 나라 안에 담고 있지 않다.
2025년 스탠다드차타드 하노이 헤리티지 마라톤(Standard Chartered Hanoi Heritage Marathon)은 70개국 2,500명의 국제 러너를 불러 모아 2024년 대비 두 배 가까운 성장을 기록했다. 총 1만 5,000명의 국내외 선수가 참가한 이 레이스는 호안끼엠 호수·서호(Hồ Tây)·문묘(Văn Miếu)·호찌민 묘소 등 11개의 역사 유산을 달리며 연결하는 ‘문화 러닝’의 성격을 담고 있다. 런닝과 관광이 하나의 레이스 안에 녹아 있는 것이다.
달랏 울트라 트레일(Dalat Ultra Trail)은 초대 대회에서 2,000명을 모았고, 이듬해에는 4,500명 이상으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아시아 트레일 마스터(Asia Trail Master) 시리즈의 베트남 대표 레이스로, 해발 2,079m의 랑비앙(Langbiang) 봉우리를 넘는 최장 85km 코스가 국제 트레일 러너들의 도전 리스트에 올라 있다.

베트남에서 살 수 있는 러닝 투어 상품

베트남에는 현재 레이스 참가부터 가이드 런 투어, 패밀리 트레일 패키지까지 다양한 러닝 투어 상품이 구매 가능하다. 대표 상품을 정리한다.

1. 베트남 마운틴 마라톤 트래블 패키지

운영사: 토파스 트래블(Topas Travel) | vietnamtrailseries.com
베트남 산악 마라톤 대회(VMM, Vietnam Mountain Marathon)와 결합한 전문 여행 패키지다. 매년 9월 사파(Sa Pa)에서 열리는 VMM은 10km·21km·50km·70km·100km 등 다양한 거리로 구성돼 입문자부터 울트라 러너까지 참가 가능하다. 사파의 계단식 논, 소수민족 마을, 열대 원시림을 통과하는 코스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토파스 트래블의 10박 패키지는 레이스 참가와 하롱베이(Vịnh Hạ Long) 수상비행기 투어, 란하베이(Lan Hà Bay) 크루즈를 결합해, 달리지 않는 동반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가족 전체가 함께하는 ‘패밀리 패키지’도 별도 운영된다. 레이스 피니시 라인인 토파스 에코로지(Topas Ecolodge)는 사파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생태 리조트로, 완주 후의 회복 숙소로도 최적이다.
거리: 10km~100마일 / 개최 시기: 매년 9월 / 대상: 전 레벨

2. 베트남 정글 마라톤 패키지

운영사: 토파스 트래블 | vietnamtrailseries.com
뿌르엉(Pù Luông) 자연 보호구역에서 펼쳐지는 정글 트레일 런 패키지다. 베트남 북부의 울창한 원시림과 소수민족 마을을 달리는 이 대회는 사파와는 다른 야생의 매력이 있다. 9일짜리 패밀리 패키지는 러너와 그 가족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을 동시에 운영해, 달리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 모두가 여행을 즐기도록 구성됐다.
개최 시기: 연중 특정 일정 / 특징: 패밀리 동반 가능, 원시림 트레일

3. 하노이 모닝 러닝 투어

운영사: 베트남 트레일 시리즈(VTS) | vietnamtrailseries.com
레이스가 아닌 순수 ‘런시잉(Runseeing – 달리며 관광하기)’ 투어다. 가이드와 함께하는 9km 코스로, 이른 아침 아직 혼잡하지 않은 하노이의 명소들을 달리며 탐방한다. 하노이의 여러 유명 호수와 공원을 이어 달리고, 구시가지(Old Quarter)의 좁은 골목을 누비며, 기찻길 카페 거리(Train Street)를 지난다. 코스 중간에는 커피 스톱이 포함돼 있어 현지 카페 문화까지 경험할 수 있다.
별도의 러닝 실력이 필요 없는 입문자 친화적 투어로, 관광과 달리기를 동시에 즐기려는 여행자에게 적합하다.
거리: 9km / 난이도: 초급 / 특징: 중간 커피 스톱 포함

4. 달랏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 참가

운영사: 달랏 울트라 트레일(Dalat Ultra Trail) | dalat-ultra-trail.com
호찌민에서 비행기로 45분, 버스로 6시간 거리의 달랏(Đà Lạt)은 해발 1,500m의 고원 도시로 열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베트남 유일의 서늘한 도시다. 매년 3월 개최되는 달랏 울트라 트레일은 아시아 트레일 마스터 시리즈에 포함된 국제 대회로, 소나무 숲·폭포·계곡·랑비앙 봉우리를 넘는 환상적인 코스를 자랑한다. 거리는 20km·42km·65km·85km로 나뉘며, 국제 러너들의 뜨거운 참가가 이어지고 있다. 달랏 자체가 꽃 축제, 와인, 딸기 농원, 프랑스풍 빌라 등 러닝 외의 관광 매력도 풍부해 전후 여행 일정을 채우기에도 좋다.
거리: 20km~85km / 개최 시기: 매년 3월 / 진입지: 호찌민 경유

5. 꾹프엉 정글 패스 (Cuc Phuong Jungle Paths)

운영사: 꾹프엉 국립공원 (cucphuongtourism.com.vn)
아시아 최우수 국립공원(2018~2024년 6회 연속 선정)인 꾹프엉(Cúc Phương) 국립공원 내부를 달리는 트레일 런 대회다. 하노이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으며,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열대 원시림 내부를 달리는 경험은 달리기와 자연 생태 체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2025년 대회는 10km·21km 코스로 진행됐으며, 희귀 조류와 영장류 서식지를 달리는 이 코스는 자연 애호 러너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거리: 10km, 21km / 특징: 아시아 최우수 국립공원 코스

6. 고! 러닝 투어 (GO! Running Tours) 호찌민·하노이

운영사: gorunningtours.com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가이드 런 투어를 운영하는 글로벌 브랜드의 베트남 노선이다. 하노이와 호찌민시 두 도시를 커버하며, 전문 가이드와 함께 도시의 주요 명소를 달리며 역사·문화 설명을 곁들이는 방식이다. 호찌민 코스는 통일궁(Dinh Độc Lập)·따오단 공원(Công viên Tao Đàn)·사이공강(Sông Sài Gòn) 강변로·동콰이 거리(Đường Đồng Khởi)의 프랑스 식민지 건축물을 달리며 연결한다. 그룹 투어와 프라이빗 투어 모두 운영한다.
코스: 5~10km / 형태: 그룹 또는 프라이빗 / 언어: 영어

베트남 러닝 투어, 이렇게 준비하라

두 발이 여는 여행의 다른 차원

관광 버스 창문 너머로 도시를 보는 것과, 그 도시의 새벽 공기를 폐 가득 들이마시며 달리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러닝 투어리즘이 제안하는 것은 후자다. 도시의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두 다리의 속도로 도시를 통과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노이의 새벽 두부 장수, 달랏 고원의 이름 모를 야생화, 사파 계단식 논 사이를 걷는 소수민족 여성의 뒷모습.
세계 마라톤 등록자가 매년 9% 늘어나고, 런 클럽이 60%씩 성장하며, 84만 명이 런던 마라톤 추첨에 도전하는 이 시대에, 베트남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달리는 여행자들의 새로운 성지로 자리 잡고 있다.
다음 번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러닝화를 짐 가방 맨 위에 올려두는 것을 생각해보길.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그것이 최고의 가이드가 될 수 있다.

베트남 주요 러닝 이벤트 캘린더 202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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