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나타난 줄 알고 도망치던 아이들”… 35년 전 베트남 개방기를 렌즈에 담은 독일인 교사의 회상

출처: VnExpress Travel
날짜: 2026. 5. 25.

베트남이 오랜 전쟁의 상흔을 딛고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카메라 하나를 들고 베트남 전역을 누볐던 독일인 여행가가 35년 전의 순박하고도 원시적이었던 베트남의 풍경을 회고했다.

26일 베트남 관광 업계와 외교 문화 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78세의 은퇴 교사인 한스 페터 그룸페(Hans-Peter Grumpe) 씨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83일간 베트남을 종주하며 촬영한 수천 장의 사진 기록과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전했다.

그룸페 씨가 처음 베트남 땅을 밟은 1991년은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Đổi Mới)’를 도입한 지 겨우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국립관광국 데이터에 따르면 당시 연간 외국인 입국자는 25만~30만 명 수준에 불과했고, 숙박과 교통 인프라는 매우 열악했다. 특히 외국인의 지방 이동이 엄격히 통제돼 비자 외에도 지역별 ‘통행증’을 따로 지참해야 했다.

그는 당시 유일한 국영 여행사였던 ‘비엔남 투어리스트(Vietnam-Tourist)’를 통해 차량과 운전사, 통역사를 고용해 이동했다. 1991년 호찌민시를 시작으로 구찌, 미토, 다낭, 호이안, 훼, 하노이, 닌빈, 하롱베이를 돌았고, 1992년과 1993년에는 중부 고원지대(테이응우옌)와 디엔비엔푸, 라이쩌우, 까오방, 랑손 등 중국 접경 북부 오지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룸페 씨는 “1992년 당시 디엔비엔푸 북쪽과 중국 국경 지대를 여행한 최초의 서양인 중 한 명이었을 것”이라며 “디엔비엔푸 북부의 한 타이족 마을에 내렸을 때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귀신이라도 본 듯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쳐 가이드가 족장을 찾아가 신원을 확인해 준 뒤에야 겨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서양인을 처음 본 오지 주민들은 턱수염이 무성한 그를 ‘소련 아저씨(ông Liên Xô)’라고 부르며 신기해했고, 신체 접촉을 하며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고산지대에 호텔이 없던 시절이라 그와 일행은 주로 성 인민위원회 관사에서 숙박을 해결했다.

그가 기억하는 1990년대 초 베트남은 전쟁의 흔적이 여전하면서도 낙천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케산 전투 현장, 구찌 터널, 빈목 터널, 미라이 등을 방문했을 당시 케산 주변에는 포탄 껍데기가 고철로 팔리기 위해 집 앞에 쌓여 있었고, 버려진 탱크는 닭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은 미라이 학살 현장에서는 1968년 당시 13세의 나이로 논바닥 소 배 밑에 숨어 유일하게 생존한 목격자가 가이드를 맡아 비극의 역사를 전해 듣기도 했다.

북부 고산지대 사파(SaPa)의 1991년 풍경은 그에게 때 묻지 않은 원시적 감동을 안겨줬다. 당시 사파는 국제 관광 안내서에도 등재되지 않은 오지였다. 통행증의 여권 번호 오타 하나 때문에 현지 공찰과 두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야 겨우 진입할 수 있었다. 오래된 프랑스식 빌라를 개조한 관사 발 balcony(발코니)에서는 안개에 싸인 산맥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밤이 되면 객실 안에 박쥐와 쥐가 나타나곤 했다. 주말에 열린 사파 장터와 러브 마켓(chợ tình)은 완전한 자급자족 형태였으며, 붉은다오족과 검은흐몽족 주민들이 40km 이상을 맨발로 걸어와 촛불과 호청(빛) 아래서 노래로 교감하는 순수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인 1993년 다시 찾은 사파는 통행증 제도가 폐지되면서 관광객이 늘고 주민들이 기념품을 판매하는 등 상업화가 시작되어 있었다. 경제 발전의 속도는 하노이 거리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1991년 동독산 심슨(Simson)과 MZ 오토바이로 가득했던 하노이 거리는 1993년이 되자 일본산 오토바이로 대체되었고 비디오 대여점, 구두닦이, 전자오락실이 급증했다. 다만 중도 도심의 많은 고택이 현대식 건물을 짓기 위해 철거되는 모습은 그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가 여행을 마친 지 15년이 지난 후 인터넷에 공개한 베트남 종주 사진들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2014년 하노이 옛거리 문화교류센터 설계에 참여하던 프랑스 건축가 로맹 오르푀브르(Romain Orfeuvre) 씨가 1990년대 초 자료 부족으로 고심하던 중 그의 사진을 발견해 연락을 취해왔다. 이 사진들은 고증 자료로 활용되어 2015년 2월 센터 개관 당시 상설 전시관에 헌정되었다.

주변 친구들로부터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현대 베트남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룸페 씨는 결국 독일 체류를 선택했다. 그는 “급격한 도시화를 겪기 전,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던 옛 베트남의 기억을 내 마음속에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라며 “그 시절 내가 찍은 사진들이 베트남 현대사의 소중한 기록이자 증인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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