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 Info – 40년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진로 선택은?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의대로, 그리고 반도체

한국 입시 역사를 40년 관통한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선택은 그 시대의 경제와 사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1985년 서울대 물리학과가 정점을 찍던 시절, IMF 이후 의대 공화국의 시대를 거쳐, 2025년 현재 반도체·AI 학과로의 대이동까지. 수험생들의 선택이 말하는 대한민국 40년의 이야기를 추적했다.

1980년대, 과학입국의 꿈과 공대 전성시대

1985학년도 입시, 서울대 물리학과는 자연계 정점에 군림했다. 연세대 의대조차 서울대 이공계 학과들보다 한참 아래였다. 상위 10위권이 모두 서울대였고, 물리학과·전자공학과·기계공학과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당시는 중공업과 제조업이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이던 시절이다. 전자공학·화학공학·기계공학, 일명 ‘전화기’만 가면 취업이 보장됐다. 1973년 신설된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는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과학인재 육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과 수출 주도 경제 성장이 맞물리면서 이공계는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이 흐름은 이어졌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공학과가 부상했고, 서울대 공대는 여전히 최상위권 학생들의 최종 목표였다.

1985학년도 입시, 서울대 물리학과는 자연계 정점에 군림했다. 연세대 의대조차 서울대 이공계 학과들보다 한참 아래였다. 상위 10위권이 모두 서울대였고, 물리학과·전자공학과·기계공학과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당시는 중공업과 제조업이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이던 시절이다. 전자공학·화학공학·기계공학, 일명 ‘전화기’만 가면 취업이 보장됐다. 1973년 신설된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는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과학인재 육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과 수출 주도 경제 성장이 맞물리면서 이공계는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이 흐름은 이어졌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공학과가 부상했고, 서울대 공대는 여전히 최상위권 학생들의 최종 목표였다.

IMF가 바꾼 판도, 의대 공화국의 탄생

전환점은 1997년 외환위기였다. 대량 실직과 기업 파산을 목격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안정성’에 주목했다. 1995년부터 서울대 의대가 서울대 공대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이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됐다.
2005학년도에 이르면 상황은 극적으로 바뀐다. 상위 20위권에 이공계 학과가 단 한 곳도 없었다. 1위부터 7위까지 모두 의대와 한의대였다. 연세대 치대가 3위에 진입하며 ‘의치한약수’ 시대가 본격화됐다.
“공대 출신들이 명퇴당하고 대기업이 무너지는 걸 봤습니다. 자식만큼은 평생 안전한 직업을 갖기를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죠.”
서울 강남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의 말이다. IMF 이후 전문직 열풍이 불면서 거의 모든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선호하게 됐다.

의대 독주 시대, 그리고 부작용

2010년대~2020년대 초반, 의대 선호는 절정에 달했다. 2020년대 들어 의대뿐 아니라 수의대까지 서울대 공대와 비슷한 입결을 보이며 ‘메디컬 공화국’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충격적인 통계가 있다. 2022학년도 기준, 전국 의약학계열 선발인원은 6,825명으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순수 자연계열 선발인원 5,079명보다 많았다. 최상위권 학생 대부분이 의대로 향하면서 이공계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SKY 대학의 중도탈락자 수가 이를 증명한다. 2022학년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중도탈락자는 2,131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대 최초합격자 중 10.5%가 미등록했고, 그 중 87%가 자연계열 학생이었다. 의대 재도전을 위해서였다.
과학고와 영재고 학생들마저 의대로 향했다. 당초 과학자를 꿈꾸다 한국 과학계의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 수능을 공부해 의대에 진학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2024-2025, 새로운 변화의 조짐

그런데 2024년 말부터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25학년도 의약학 계열을 제외한 자연계 상위 30개 학과 중 5개가 반도체 관련 학과였다. AI학과 4개, 컴퓨터학과 3개가 뒤를 이었다.
결정적 계기는 SK하이닉스의 ‘파격 보상’이었다. 대기업 계약학과는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고, 성과급 1억 원이 화제가 되면서 ‘공대에 가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전국 5개 과학기술원의 수시 경쟁률은 5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올해 의대 지원자 감소폭은 정원 확대 이전보다도 커 ‘묻지마 의대’ 현상이 다소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남학생들은 대기업 계약학과나 반도체 첨단학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여학생들은 여전히 의대 선호도가 높아 성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문과의 안정성: 경영·경제 불변의 법칙

이과가 극적 변화를 거듭하는 동안, 문과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2021학년도부터 2025학년도까지 5년 연속, 경영학과는 최상위권 학과로 굳건한 위치를 지켰다.
2025학년도 주요 10개대 인문계 상위 31개 학과 중 경영학과가 5개로 가장 많았다. 자유전공학부 4개, 통계학과 4개, 행정학과 4개가 뒤를 이었다. 특히 자유전공학부는 2024학년도 2개에서 올해 4개로 급증했다.
흥미로운 점은 무전공 제도가 확대되면서 입학 후 학과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실제 선택은 경영학과로 더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제학과, 행정학과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와 심리학과 등 사회과학 계열도 콘텐츠 산업 성장에 힘입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경영·경제’ 중심 체제는 흔들림이 없다.

시대별 최상위권 학과 비교

보상 체계가 인재 흐름을 결정한다

입시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입시를 ‘가장 솔직한 경기 후행 지표’라고 부른다.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 이만기 소장은 “이번 조치(의대 증원과 반도체 학과 신설)로 특히 최상위권 대학들의 계약학과, KAIST 등 과학기술원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로학원 측은 더 구체적인 분석을 내놨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합격생의 45%가량이 의대 진학 가능권에 있었는데,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정시 합격선이 하락하면서 이 비율이 78.5%로 증가한다. 상위권 대학 학생들이 의대 진학 장벽이 낮아졌다고 생각해 반수 등에 도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변화는 단순히 의대 정원 변화만이 아니다. 강남의 한 입시학원 원장은 “올해는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AI 시대에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할까요’라고 물어본다”며 “엔비디아 주가 상승과 반도체 학과 경쟁률 상승이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핵심은 ‘보상 체계’다. 필수의료과 의사가 부족한 이유가 보상 때문이듯, 이공계 인재의 흐름도 결국 성공과 고소득이 보장되는지 여부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지속가능한 변화일까

2024-2025년의 변화가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구조적 전환점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몇 가지 분명한 신호는 있다.

첫째, 인공지능과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만큼, 이 분야 전문가에 대한 수요와 대우는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그러나 기업과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파격적 대우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이공계 전반으로 확산돼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셋째, 의대 쏠림 현상은 여전히 강력하다. 특히 여학생들의 의대 선호도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어, 성별 격차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넷째, 문과는 경영·경제 중심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자유전공학부 확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영학과로의 쏠림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입시 지형의 변화는 결국 사회 전체의 보상 구조 개편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선택이 특정 분야에 쏠리지 않고 다양한 영역으로 분산되려면, 그만큼 각 분야의 비전과 보상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40년 입시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수험생들의 선택은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반응한다. 1980년대 과학입국의 꿈이 공대 열풍을 만들었고, IMF의 충격이 의대 시대를 열었듯, 이제 AI 시대의 새로운 기회가 다시 한번 판을 바꾸고 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일부 특정 학과로의 ‘또 다른 쏠림’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답은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떤 보상 체계를 만들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 본 기사는 종로학원,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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