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Interview – NIPA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김영훈 호치민 IT센터장

베트남이 한국기업들에게 ‘제2의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면서 진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교민 인구가 늘어나자 마치 입술에는 입술이, 후추에는 소금이 어울리듯 수많은 한국의 정부기관과 공기업들이 앞다투어 베트남에 둥지를 틀었다. 대사관, 영사관 같은 외교기관부터 기업 투자를 돕는 KOTRA, 각 지방자치단체의 베트남 사무소까지 기관도 다양하고 목적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최근 신짜오베트남 레이더에 정체불명의 단체가 포착됐다. 하는 일을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묘하게 존재감 있는 기관이다. 호치민시 1군 M-Plaza 15층. 겉보기엔 평범한 오피스 공간이지만, 이곳에는 11개의 한국 IT기업들이 마치 비밀 아지트처럼 모여 있다. 간판에 적힌 ‘NIPA 한국정보통신산업진흥원 호치민 IT지원센터’라는 긴 이름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우리는 뒤에서 몰래 기업을 돕는 기관입니다.” 김영훈 센터장이 건넨 명함에는 영어로 ‘National IT Industry Promotion Agency’라고 적혀 있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지만, 한국의 IT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 은밀하고도 강력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NIPA는 어떤 기관이고, 베트남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봤다.

NIPA, 과연 무슨 기관인가?

NIPA가 어떤 기관인지 잘 모르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한국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2009년 여러 작은 공공기관들을 통합해서 만들어진 기관입니다. 우리나라 ICT 산업 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현재 7개 본부를 운영하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본부, AI 인프라 본부, AI 융합 본부, 지역 디지털 산업본부, 메타버스 본부, 그리고 제가 소속된 글로벌 본부가 있습니다. 특히 6개 본부 중 2개가 AI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정도로 AI 분야에 집중하고 있어요.

해외에 센터를 운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2014년 8월 정부 기능 조정으로 ICT의 해외 진출 지원 기능이 NIPA로 이관되면서 시작됐습니다. 한국은 협소한 국내 시장의 한계를 돌파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어요. 특히 IT 기업들은 혼자서 해외로 나가기에는 외국에서의 풍파가 너무 거세죠. 그래서 현지에서 직접 지원할 수 있는 거점이 필요했습니다.
2014년 싱가포르와 미국 실리콘밸리를 시작으로, 현재 5개국 6개 센터 1개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도 뱅갈로르, 베트남 하노이(2018년), 호치민(2019년), 두바이(2023년), 뉴욕 데스크(2024년)까지요.

베트남에 센터가 두 개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베트남은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희망 국가 부동의 2위입니다. 1위는 당연히 미국이고요. 베트남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경제성장률 6%대, 젊고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들이 이미 진출해 있어서 ‘포스트 차이나’ 전략의 핵심 지역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NIPA의 일은 “막연한 환상을 현실로 바꾸는 일”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 스타트업 기업들의 실상은 어떤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막연한 기대를 갖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주말에 김 사장이랑 골프 치다가 베트남 진출을 결정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입니다. 베트남은 가깝고, 문화적 동질성이 있고, 실패해도 비용이 많이 안 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하지만 여기 와서 오래 생활해보면 매일매일 “참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한국에서 좋은 레퍼런스를 가진 기업들도 여기서는 완전 신생 노브랜드 기업이에요. K-마크 하나로 비빌 만한 시장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NIPA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두 가지 핵심 역할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번 시도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두 번째는 막연한 시장 진출 희망과 현실 간의 간극을 줄이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오피스 공간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법률·회계 자문 컨설팅, 현지 인재 채용 지원을 합니다. 특히 ‘ICT 공동채용관’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서 한국 기업들이 무료로 베트남 IT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돈 없는 토니 스타크를 돕는다.

흥미로운 표현이네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제가 초등학생 아들에게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어요. “돈 없는 토니 스타크를 지원해서 자비스를 만들게 해주는 게 아빠 일이다”라고요. 세상에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토니 스타크 같은 사람들이 많은데, 토니 스타크는 원래 아빠 때부터 부자라서 자기 아이디어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세상을 혁신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자금력이 없어서 실현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런 기업들을 발굴해서 지원하는 게 NIPA의 역할이에요. 국내에서 꽃을 피운 다음에는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요.


구체적인 성공 사례가 있나요?
라이트비전이라는 AI 기업이 대표적입니다. 2020년 아이디어만 갖고 저희에게 온 완전 생 스타트업이었어요. 기존 CCTV로부터 데이터를 받아서 AI로 분석, 객체 인식을 통해 안전사고나 주차 관제, 교통량 예측을 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이죠.
저희가 2년간 예산을 지원해서 솔루션을 완성했고, 매출이 0원에서 3억, 30억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 호치민 센터에 입주해서 3년째 활동하고 있고, 싱가포르로도 진출했어요. 태국과는 MOU도 체결했고요.

한국형 IT 교육으로 인재 양성

인재 양성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Korea IT School’이라는 프로그램을 2019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어요. 베트남에서 IT 개발자를 채용했을 때 퀄리티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문화적 차이로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1년에 30-60명 정도의 교육생을 선발해서 20주간 IT 기초·실무 교육과 함께 한국 기업 문화, 언어적 기초 교육을 시킵니다. 지금까지 328명을 양성했고, 그 중 268명이 한국 기업에 인턴십으로 연계됐어요. 취업률이 81%입니다.

올해는 프로그램에 변화가 있다고 하던데요?
두 가지 개선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베트남 대학교들과 직접 협업해서 IT 관련 전공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형 IT 교육을 하는 과정을 신설했어요. 두 번째는 ‘IT 커뮤니케이터’ 과정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IT 프로젝트를 아웃소싱할 때 가장 큰 문제가 커뮤니케이션이에요. 한국어 전공 학생들에게 IT 기본 교육을 시켜서 IT 통역 전문가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이죠.

AI 시대에 통역이 대체되지 않을까요?
흥미롭게도 AI 시대가 오면서 오히려 통역사들의 몸값이 올랐어요. AI가 생산성을 높여줬거든요. 하지만 AI가 잘하는 건 어려운 것이고, 못하는 건 복잡한 겁니다. 여러 프로세스가 얽혀있는 복잡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필요해요. 특히 문화적 차이나 톤 같은 건 AI가 기계적으로만 처리하죠. 내 고객이 원하는 IT 프로젝트가 어떻게 해석돼야 하는지는 그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새로운 접근

기존 지원 방식과 다른 접근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존에는 IT 기업들을 IT 박람회나 IT 관련 행사에 데려갔어요. 그런데 그러면 판매자와 판매자가 만나게 됩니다. IT 기업들은 다양한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갖고 있으니까, 실제 그 솔루션을 사줄 수 있는 소비자를 만나야 해요. 예를 들어 디지털 헬스 기업이라면 의학계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제조업 AI 솔루션 기업이라면 제조업체 관계자들을 만나야 합니다. 올해는 도메인별로 실수요처가 모이는 자리를 찾아서 공급자와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계획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세요.
저희가 지원하는 기업 중에 내시경으로 3기 위암을 실시간으로 디텍팅할 수 있는 AI 솔루션을 가진 곳이 있어요. 내시경 모니터 옆에 소켓 하나만 꽂으면 AI가 95% 정확도로 진단해줍니다. 이런 기업은 IT 박람회가 아니라 의학 심포지엄이나 학회에서 발표할 기회를 가져야 해요. 제조업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터의 미세한 진동을 AI 카메라로 분석해서 벨트 교체 시기를 미리 알려주거나, 화장품 제조에서 색깔 배합의 정확도를 높여주는 솔루션들이 있어요. 이런 기업들은 제조업체와 직접 만나야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데이터 주권 시대의 AI 전략

AI 3대 강국 진입이라는 정부 목표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AI 생태계를 피라미드로 보면 맨 밑에 인프라(GPU), 그 위에 파운데이션 모델(GPT 같은), 맨 위에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가 있어요. 지금은 모든 관심이 인프라와 모델에 쏠려 있지만, 실제 가치 창출은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에서 일어납니다. 한국은 그 상위 단계, 즉 AI를 실제 산업에 적용해서 혁신을 일으키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100만 원을 투자해서 50만 원의 가치를 창출하는 현재 상황을 바꿔야 해요.

데이터 주권도 중요한 이슈로 보이는데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죠. 한국과 일본 사이 바다 사진에서 모든 텍스트를 지우고 빨간 선을 그어서 ChatGPT에게 “이 지역이 어디냐”고 물으면 ‘Sea of Japan’이라고 답합니다. 북미 데이터로 학습됐기 때문이죠.
AI 시대에는 데이터를 누가 갖고 있느냐가 국가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 미래의 아이들이 어떤 데이터로 학습된 AI와 생활할 것인가의 문제거든요. 그래서 모든 나라가 자국 내 데이터센터 유치에 나서는 겁니다.

숨은 혁신 기업들의 발굴자

NIPA가 지원하는 기업들 중 특별한 사례가 더 있나요?
국방 분야 솔루션도 있어요. 해양 경비대에서 사용하는 레이더 – 열화상카메라 – CCTV 릴레이 시스템을 AI로 자동화한 기업이 있습니다. 기존 장비는 그대로 두고 데이터만 연결해서 AI가 자동으로 미확인 물체를 탐지하고 추적하는 시스템이에요. 현재 국방부에 납품돼서 실제 운용되고 있습니다. 산림 분야도 흥미로워요. 산림청이 연간 1000억원을 쓰는 재선충 방제 예산을 혁신한 사례입니다. 드론으로 산림을 촬영해서 AI가 고사목을 86% 정확도로 찾아내는 솔루션을 개발했어요. 이전에는 0%였으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거죠.
그리고 세종시 정부청사와 서울시 지하철역에 설치된 솔루션인데, CCTV 촬영이 불가능한 여자 화장실에서 소리만으로 위험 상황을 감지합니다. “살려주세요” 같은 진짜 위험 신호와 영화나 게임 소리를 구별해서 디텍팅해요. 이런 기업들은 아직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 현장에서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희 역할은 이런 ‘숨은 고수’들을 발굴해서 키우는 거예요.

새로운 지원 전략 3단계 지원 시스템 구축

올해 새롭게 준비하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3단계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1단계는 사전 마켓 리서치예요. 베트남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에게 출장 오기 전에 냉철한 시장 분석을 제공합니다. “당신 솔루션은 이미 여기에 차고 넘친다. 잘로나 모모를 이기실 수 있으면 오시고, 아니면 접으라”고 솔직하게 말할 예정이에요.
2단계는 온라인 컨설팅입니다. 한국에서 성공한 솔루션도 베트남에 맞게 현지화해야 해요. 한국형 홍보물을 단순 번역해서 가져오면 필패합니다. 베트남 바이어에게 맞는 제품 설명과 마케팅 전략을 컨설팅해드립니다. 3단계에서 비로소 온·오프라인 매칭을 통해 실제 시장을 보여드리는 거죠.

마지막으로 NIPA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NIPA는 뒤에서 몰래 기업을 돕는 기관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해요. 저희가 추구하는 건 기업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번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AI는 당장 당신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다만 AI를 더 잘 활용하는 사람이 당신을 대체할 겁니다”라는 말처럼, 저희도 시대 변화에 맞춰 기업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IT 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NIPA는 계속해서 든든한 뒷받침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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