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주식시장에서 상장기업의 70퍼센트 이상이 과거 경제 위기 당시에 준하는 극심한 저평가 구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빈그룹 계열사들이 전체 지수를 견인하면서 착시 효과를 일으키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대다수 종목은 기업 실적에 비해 주가가 크게 낮아진 상태라는 지적이다.
5일 베트남 자산운용사 비나캐피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 증시의 우량주 중심 지수인 베트남종합지수(VN지수)는 2026년 상장기업 이익이 약 15퍼센트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선행 주가수익비율(P/E) 약 13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 상장 주식의 70퍼센트 이상이 P/E 10배 미만에서 거래되는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나캐피탈은 이 같은 저평가 수준이 통상 금융위기나 실물경제 침체기 같은 극단적인 대외 충격이 발생했을 때나 찾아오는 이례적인 영역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지수 전체의 밸류에이션과 대다수 개별 종목의 주가 사이에 큰 괴리가 발생한 주된 원인은 빈그룹 생태계 주식들의 급등 때문이다. 빈그룹(VIC), 빈홈즈(VHM), 빈컴리테일(VRE), 빈펄(VPL) 등 빈그룹 계열 4개 사가 VN지수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년 전 약 8퍼센트에서 현재 약 30퍼센트 수준까지 전례 없이 확대됐다.
실제로 지난해 VN지수는 약 41퍼센트 상승했으나 빈그룹 계열사를 제외하면 실제 상승률은 10퍼센트 안팎에 그쳤다. 올해 역시 빈그룹 계열사가 포함된 전체 지수가 제외된 지수보다 4에서 5퍼센트포인트가량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강세를 주도하고 있다. 빈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 전체의 평균 P/E는 10배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들 기업의 이익 성장률 전망치는 16퍼센트로 오히려 지수 전체 평균보다 높다.
올해 빈그룹의 주가 상승을 이끈 핵심 요인으로는 빈패스트의 구조조정 및 빈그룹으로부터의 분사 계획, 그린SM(GSM)의 기업공개(IPO) 추진, 빈홈즈의 깜짝 실적 등이 꼽힌다. 올해 1분기 베트남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1퍼센트 급증하며 시장 예상치인 15퍼센트를 크게 웃돌았다. 실적 폭증을 주도한 빈홈즈를 제외하더라도 시장 전체 이익은 예상치의 두 배인 30퍼센트 증가해 기업들의 기초체력은 견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나캐피탈은 하이테크 중심의 수출 호조 등 거시경제 환경이 튼튼함에도 증시가 이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트남의 컴퓨터 및 전자제품 xuất khẩu(수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년 대비 50퍼센트 가까운 고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가 일시적으로 확대된 것 역시 인공지능(AI) 관련 장비와 자재 수입이 급증한 데 따른 결과로, 경제 둔화의 신호가 아니며 동화(VND) 환율에도 큰 압박을 주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중동 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차질 장기화 우려, 5퍼센트를 넘어선 인플레이션 압력,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 등은 여전히 리스크 요인으로 지적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해 약 50억 달러어치를 순매도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현재까지 약 20억 달러 규모의 베트남 주식을 팔아치웠다.
비나캐피탈은 이러한 대외적 도전 과제 속에서도 베트남 정부가 정책적 대응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며, 국유기업 개혁과 FTSE 신흥시장 승격 요건 충족을 위한 제도 개선, 부동산 프로젝트 규제 완화 등이 본격화되면 장기적으로 시장 유동성과 밸류에이션이 정상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2026년 베트남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퍼센트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