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중국의 매운맛 하면 사천(四川) 요리의 얼얼한 맛(마라)이나 충칭(重慶)의 용암처럼 붉은 훠궈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먼저 고추를 일상 식단에 도입해 즐겨 먹은 곳은 구이저우(貴州)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1일 중국 식문화 학계와 현지 소식에 따르면 청나라 시대의 수많은 역사 문헌과 기록을 고찰한 결과, 구이저우 주민들은 이미 260여 년 전부터 고추를 매일 먹는 음식 메뉴에 포함해 온 중국 내 최초의 고추 소비자들이었다. 구이저우성은 전체 지형이 가파른 산비탈과 험준한 산악 지대로만 이루어져 있어 중국에서 유일하게 평야가 없는 성(省)이라는 척박한 지리적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특유의 토양 조건과 기후가 고추 재배에는 가장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면서 오늘날 중국 전역에서 가장 큰 고추 생산 기지로 자리매김했다.
고추 수확 비수기인 최근에도 구이저우성의 고추 전문 가공 공장과 도매 시장들은 밀려드는 건고추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연일 밤낮없이 가동되고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025년 한 해 동안 구이저우성 물류 거점을 통해 유통된 고추 물량만 무려 38만 톤에 달하며, 이는 전 세계 80여 개 국가와 지역으로 수출되어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구이저우성이 중국 매운맛의 종가로 인정받는 것은 단순히 압도적인 생산량 때문만은 아니다. 고추를 활용해 조리하는 방식의 독창성과 다양성 면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3세기 전 유럽 상인들을 통해 고추라는 외래 식물이 처음 중국에 유입되었을 때, 다른 지역 주민들은 이를 그저 보기 좋은 관상용 식물로만 여겼다. 그러나 경작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가축을 기를 자원마저 없었던 구이저우의 토착민들은 생존을 위해 이 매콤하고 알싸한 열매를 요리에 접목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독특한 고추 가공품을 발명해 냈다.
그 대표적인 명물이 구이저우인들의 밥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수제 양념장인 ‘후라자오(糊辣椒·손으로 빳빳하게 찧은 구운 고추)’다. 구이저우의 전통 가정에서는 지금도 옥상이나 마당에서 직접 후라자오를 만드는 오랜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야생 고사리 줄기를 불뗌거리로 삼고 소나무 가지를 태운 재를 솥에 직접 섞어가며 고추를 볶는데, 이는 고추 특유의 훈연(불맛) 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전통 가이드라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추는 겉면이 거뭇거뭇하게 그을리면서 잘 익은 과일을 구운 듯한 진하고 매콤한 향을 풍긴다. 이 구운 고추를 거칠게 빻아 간장, 기름과 섞어내면 주방의 탄내가 섞인 쌉싸름한 맛과 함께 재료 본연의 감칠맛(우마미)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최고의 소스가 완성된다. 전 세계 마트의 양념 코너를 점령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중국의 유명 고추기름 소스인 ‘라오간마(老干妈)’ 역시 이처럼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려 했던 구이저우 토착민들의 생활 지혜와 농산물 상업화 과정이 낳은 위대한 결과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