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현금성 결제 시스템의 급격한 확산세 속에서도 베트남 시중의 현금 유통 비율이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역주행하고 있다. 세제 개편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과세 회피 움직임과 암시장 내 귀금속·외환 거래 성행이 결합하면서 은행 시스템 밖으로 거대한 현금 유동성이 유출되는 양상이다.
27일 베트남 중앙은행(SBV)과 금융 당국이 공시한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총통화(M2) 대비 현금 유통 비율은 11,52%까지 치솟았다. 이는 지난 2025년 9월 말 기록한 최저점인 9,48%와 비교해 불과 몇 개월 사이 2%포인트 이상 급증한 수치다. 전체 통화 공급 규모를 감안할 때 약 360조 동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산이 시중 현금 형태로 은행권 밖으로 빠져나간 셈이다.
금융투자 업계와 SHS증권의 거시경제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이러한 현금 선호 현상의 핵심 배경으로 자영업자(개인사업자)에 대한 정밀한 세제 정책 개편이 지목된다. 정부 조례에 따라 지난해 6월 1일부터 연 매출 10억 동 이상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과세 관청 연동 전자세금계산서 사용이 의무화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정액세(추계과세) 제도가 전면 폐지됐다. 과세 당국이 세원 투명화를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자, 세무 노출을 꺼린 상당수 자영업자가 추적을 피하기 위해 계좌 이체를 거부하고 전면적인 현금 거래로 선회했다. 실제로 도심 상권에서는 이체 내역에 문구 기재를 금지하거나, 여러 계좌로 분할 송금하게 한 뒤 현금으로 되찾는 식의 음성적 우회 거래 매트릭스가 대거 확산됐다.
여기에 전통적인 자산 시장인 금(Gold)과 미 달러화(USD)의 암시장 거래 폭증도 현금 유출의 방파제를 허물었다. 개인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사설 금은방에서 실물 자산을 매입하고, 이 돈이 다시 제도권 은행으로 환류하기까지 상당한 타임라인 공백이 발생하면서 시중의 유통 화폐 수치가 급격히 불어난 것이다. SHS증권 전문가들은 “공식 금융 시스템을 이탈한 가혹한 ‘그림자 현금 경제’가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현금 쏠림은 시중은행의 유동성 방어 전선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올해 1분기 재무제표 기준 베트남 28개 주요 은행 중 23개 은행에서 저원가성 예금인 요구불예금(CASA) 비율이 15~30%가량 급감했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자금 줄기가 마르자,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높은 이자를 지급하는 정기예금이나 은행 간 시장 차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됐다. 이는 결국 순이자마진(NIM) 악화로 이어져 시중은행들의 수신 금리 인상 경쟁을 촉발하는 부메랑이 됐다.
부춘 주이(Vu Tuan Duy) SHS증권 거시경제 수석 분석가는 인터뷰에서 “연말연시 설(Tet) 연휴 소비 수요와 기업들의 세금 납부 타임라인이 겹친 상황에서, 과세 회피성 유출까지 가세하며 시중 유동성이 마치 가뭄 전 강물이 빠져나가듯 급격히 고갈됐다”라며 “은행 간 익일물 금리가 요동치면서 중앙은행이 지난해 말 외환 스왑(SBV Swap) 채널을 통해 긴급 수혈에 나서야 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금융계는 정부의 비현금성 결제 활성화 조례와 투명성 확립 정책이 시장의 음성적 저항을 유발하지 않도록, 세제 연착륙을 위한 정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