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미식가들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글로벌 미식 전문 매체가 아시아 전역의 수많은 요리 중 최고의 돼지고기 요리들을 선정해 발표한 가운데, 베트남의 다채로운 돼지고기 특산 요리 9가지가 명단에 대거 이름을 올리며 동남아 미식 강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22일 세계 미식 에디터들과 셰프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로컬 음식을 소개하는 세계적 요리 안내서 테이스트 아틀라스(Taste Atlas)에 따르면, 당사는 전 세계 여행객과 식도락가들을 위해 ‘아시아 최고의 돼지고기 요리 76선’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번 명단에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대중적인 쌀국수부터 북부 산악지대의 독특한 부족 요리, 중부 왕실의 풍미를 담은 꼬치 요리까지 총 9가지의 베트남 전통 음식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입증한 요리는 단연 ‘분짜(Bún chả)’다. 평점 5점 만점에 4.3점을 받으며 아시아 전체 순위에서 무려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숯불에 구워낸 양념 돼지고기 경단과 삼겹살을 새콤달콤하게 조정 한 따뜻한 느억맘 소스에 담가 쌀소면, 신선한 생채소와 함께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베트남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수도 하노이가 본고장으로 가장 유명하다. 특히 지난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고(故) 앤서니 부르댕 셰프가 하노이의 한 로컬 식당에서 함께 분짜를 즐기는 모습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방영되면서 글로벌 미식가들의 필수 버킷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한국의 돼지고기 장조림과 유사해 친숙한 전통 요리인 ‘틔트코타우(Thịt kho tàu·돼지고기 메추리알 장조림)’가 20위에 랭크됐다. 큼직하게 썬 돼지고기를 캐러멜 소스로 갈색 빛깔을 낸 뒤 계란이나 메추리알, 코코넛 주스, 피시소스 등을 넣고 약불에서 뭉근하게 졸여낸 요리로, 부드러운 식감과 단짠(달고 짠)의 조화가 특징이다.
중부 에메랄드빛 고도 후에(Huế) 지역의 별미인 ‘넴루이(Nem lụi)’는 평점 4.1점으로 24위를 차지했다. 다진 돼지고기 반죽을 향긋한 레몬그라스 줄기에 감싸 숯불에 노릇하게 구워낸 요리로, 라이스페이퍼에 각종 야채와 함께 싸서 특제 땅콩 소스 등에 찍어 먹는다.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 등지에서 아침 식사로 사랑받는 국민 음식 ‘껌똠(Cơm tấm·깨진 쌀로 지은 밥)’은 평점 4.0점으로 29위에 안착했다. 도정 과정에서 부서진 쌀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 위에 달콤한 양념 갈비 구이(Sườn nướng)와 돼지껍질 채를 고소한 볶은 쌀가루에 버무린 비(Bì), 베트남식 계란 찜 등을 얹어 새콤달콤한 느억맘 소스를 뿌려 먹는 남부의 클래식한 한 그릇 요리다.
겨울철과 북부 지역의 최대 명절인 뗏(Tết·설날)에 빼놓을 수 없는 ‘틔트동(Thịt đông·돼지고기 편육 젤리)’도 포함됐다. 프랑스의 아스픽(Aspic)이나 한국의 편육과 유사한 이 요리는 돼지고기와 껍데기, 목이버섯, 당근 등을 향신료와 함께 오래 끓여낸 뒤 차갑게 식혀 젤라틴 성분으로 단단하게 굳혀 젤리 같은 식감으로 즐기는 독특한 내력의 음식이다.
베트남 북부 고산 지대의 이국적인 풍미를 담은 전통 요리들도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사파(Sa Pa) 등 북부 소수민족의 지혜가 담긴 ‘까이메오 틔트런각벱(Cải mèo xào thịt lợn gác bếp·사천식 갓과 훈제 돼지고기 볶음)’은 숲에서 재배한 쌉싸름한 야생 갓과 부엌 화로 연기로 오랜 시간 훈연해 깊은 풍미를 자랑하는 삼겹살을 마늘, 후추와 함께 강한 불에 볶아낸 요리다. 랑손(Lạng Sơn)과 꽝닌(Quảng Ninh) 등 북부 산악지대의 명물인 ‘커우눅(Khâu nhục·한자어 ‘공육(扣肉)’)’ 역시 순위에 올랐다. 중국 광둥성 지역의 조리법에서 유래해 베트남식으로 토착화된 이 요리는 돼지오겹살을 튀긴 후 다양한 약재와 양념을 얹어 입안에서 부서질 듯 장시간 푹 쪄내 명절이나 결혼식 등 최고의 연회 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길거리 간식의 대명사인 ‘틔트씨엔느엉(Thịt xiên nướng·돼지고기 꼬치구이)’은 사파 지역의 흑돼지(Thịt lợn đen)를 활용해 양념한 뒤 숯불에 구워 깨소금 소스 등에 찍어 먹는 스타일로 74위에 선정됐다. 마지막으로 하노이 외곽 단푸엉(Đan Phượng) 현 풍(Phùng) 마을의 유서 깊은 특산품인 ‘넴풍(Nem Phùng)’이 명단에 올랐다. 넴풍은 데친 돼지 살코기와 지방, 쫄깃한 껍데기를 가늘게 채 썬 뒤 고소하게 볶은 찹쌀가루(Thính)와 버무려 무화과나무 잎(lá sung)과 바나나 잎으로 감싸 만드는 전통 발효 음식으로, 특유의 향과 씹는 맛이 일품이다.
지난 2015년 설립된 테이스트 아틀라스는 전 세계 9,000개가 넘는 로컬 레스토랑의 정보를 연결하고, 요리 전문가들과 셰프들의 엄격한 데이터 연구를 바탕으로 수만 가지의 전 세계 요리를 소개해 미식 문화의 다양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