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Special Report – 동남아 휩쓴 중고 매장 열풍, 베트남만 예외인 이유

방콕 랑수언에서 본 중고매장의 가능성

방콕 룸피니의 랑수언 소이. 켐핀스키와 킴튼 호텔이 늘어선 이 거리는 방콕에서 임대료가 비싸기로 손꼽히는 구역이다. 그 한복판 피야플레이스 빌딩에 일본 중고품 체인 ‘세컨드스트리트(2nd STREET)’가 들어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중고 매장이라는 선입견이 먼저 무너진다. 조명과 집기, 동선 설계가 여느 신품 편집숍과 다르지 않다. 옷을 통에 쏟아붓고 손님이 뒤지게 하는 방식이 아니다. 1층은 여성용, 2층은 남성용으로 층을 갈랐고, 층마다 의류·가방·신발·액세서리가 카테고리별로 정리돼 있다.
눈길이 오래 머문 곳은 중고 명품 코너였다. 코치(Coach) 계열 여성용 핸드백이 1,500밧(약 6만원)대부터 붙어 있다. 신품 정가의 10분의 1 수준이다. 세컨드스트리트 태국법인이 자사 사이트에 걸어둔 ‘태국 인기 브랜드’ 목록에는 슈프림, 노스페이스, 루이비통, 스투시, 나이키, 에르메스, 메종 마르지엘라가 나란히 올라 있다.
방콕에도, 쿠알라룸푸르에도, 싱가포르에도 이런 매장이 있다. 호찌민에만 없다.

1년 8개월 만에 3개에서 14개로

세컨드스트리트를 운영하는 일본 게오홀딩스가 태국에 1호점을 낸 것은 2023년 12월이다. 2025년 1월 말 기준 태국 점포는 3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현재 태국법인 공식 지점 목록에 오른 매장은 14개다. 랑수언을 비롯해 시암디스커버리, 센트럴월드(브랜드 전문점 포함 2개), 프롬퐁, 실롬엣지, 팟션아일랜드, 방카피, 씨콘방캐 등 방콕 노른자 상권을 훑었다. 1년 8개월 만에 4배가 넘게 불어난 셈이다. 회사는 태국에서 10년 안에 50개 점포를 목표로 하고 있다.

2nd street에서 볼 수 있는 명품 상품 ▲

태국만이 아니다. 세컨드스트리트는 2025년 4월 전 세계 1,000호점을 돌파했고, 그 무렵 싱가포르와 홍콩에도 처음 진출했다. 말레이시아는 2018년 1호점 이후 현재 32개 점포로 늘었다. 싱가포르 1호점은 313@서머셋에 일본에서 들여온 2만 3,000점을 깔고 문을 열었다.
일본 본토에서는 더 상징적인 일이 벌어졌다. 세컨드스트리트의 일본 국내 점포는 3월 말 기준 931개로, 794개인 유니클로를 점포 수에서 앞질렀다. 중고 옷가게가 일본 의류 소매업의 최다 점포 브랜드가 된 것이다.

경쟁사들도 남하 중이다. 도쿄 기반의 트레저팩토리는 태국에 6개, 대만에 3개 점포를 운영한다. 지난 5월 방콕 ‘더몰 방캐점’ 개점일에는 문을 열기도 전에 100명 넘는 손님이 줄을 섰다. 헌책방으로 출발한 북오프그룹은 ‘자란자란재팬(Jalan Jalan Japan)’이라는 이름으로 말레이시아를 공략하며 2033년까지 해외 200개 점포를 목표로 걸었다. 이 밖에 왓만, 고메효, 에코링, 하드오프가 방콕에 복수 점포를 열었다.
다만 이 열풍의 무대는 동남아 전역이 아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 집중돼 있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는 정식 체인이 들어가 있지 않다. 이유는 뒤에서 다룬다.

방콕소재 트레져 팩토리 매장 모습

말레이시아에서 운영중인 자란자란재팬 매장

일본의 재고 과잉과 동남아의 구매력이 맞물렸다

왜 하필 지금, 왜 동남아인가

첫째, 일본 안에 물건이 남아돈다. 북오프그룹은 연간 4억 점 이상을 매입하지만 판매는 3억 점에 못 미친다. 팔리지 않은 물건은 재활용하거나 폐기해왔다. 이 잉여 재고를 해외에서 현금화하는 것이 해외 진출의 출발점이다. 북오프는 올 4월 훼미리마트와 손잡고 일본 전역 편의점에 수거함을 두고 모은 물품을 말레이시아·카자흐스탄의 자사 26개 점포로 실어 보내는 구조까지 만들었다.

둘째, 일본 중고품의 상태가 좋다. AFP통신이 방콕 논타부리의 창고형 매장을 취재하며 뽑아낸 문장이 이 대목을 정확히 짚는다. 페이스북에서 장난감 키링을 파는 태국 상인 룩푸 사팃빤야폰(36)은 “일본에서 쓰레기로 여겨지는 것도 태국에서는 쓸모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소비자의 물건 관리 습관이 그대로 상품 경쟁력이 된다.

셋째, 물가와 중산층이다. 훼미리마트를 보유한 이토추상사의 마쓰야마 마사시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 확대”와 인플레이션이 맞물려 소비자를 “합리적인 가격의” 재활용품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품 명품에는 손이 닿지 않지만 브랜드는 갖고 싶은 신흥 중산층에게 정확히 들어맞는 가격대다.

넷째, 중고에 대한 낙인이 사라졌다. 세컨드스트리트의 성장을 떠받친 것은 저렴한 패션을 찾는 Z세대 수요다. 남과 겹치지 않는 유일성, 지속가능성이라는 명분, SNS 인증 문화가 결합했다. 태국은 원래 헌옷 문화가 없는 나라였는데도 세컨드스트리트 진출 첫 달 매출이 전 세계 점포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랑수언 매장이 보여주는 것 – 소매 운영 노하우 자체가 상품이다. 에어컨, 진열, 등급 판정, 정찰제, 정품 감정. 재래 구제시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뒤지던 경험을 쇼핑몰 매장 경험으로 바꿔놓은 것이 이들의 진짜 무기다.

그런데 베트남에는 없다

여기까지 읽으면 자연스러운 질문이 남는다. 인구 1억, 평균연령 30대 초반, 브랜드 소비 욕구가 폭발하는 베트남을 이들이 왜 건너뛰었나.
답은 취향이 아니라 법이다.
베트남은 중고 소비재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 9월 5일 발효된 정부 시행령(Nghị định) 292/2026/NĐ-CP는 수입 금지 품목 23개군을 규정하면서, 중고 섬유·의류·신발, 중고 전자·냉장·가전제품, 인테리어 장식품, 도자기·유리·금속·플라스틱 생활용품, 중고 자전거·오토바이, 중고 의료기기를 그대로 금지 목록에 유지했다. 새로 만든 규정이 아니라 기존 금지 조항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정부는 낙후 설비 유입과 안전·품질·환경 위험을 막고 소비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세컨드스트리트와 자란자란재팬의 사업 모델은 ‘일본에서 매입 → 수입 → 현지 판매’다. 이 구조는 베트남 국경에서 그대로 막힌다. 호찌민의 ‘항 시(hàng si)’ 시장이 여전히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베트남만의 특수한 사정도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2015년부터 중고 의류·신발 수입을 금지했고, 지난해 10월부터는 밀수업자 블랙리스트 제도까지 도입하며 단속 강도를 높였다. 필리핀은 ‘우까이우까이’로 불리는 중고 의류의 상업적 수입을 1966년부터 금지해왔다. 일본계 체인이 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로 몰린 것은 시장 크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규제 지형 때문이다.

사지 않고 사들이는 모델

그렇다고 일본 리유스 업계가 베트남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방식을 바꿔 들어왔다.
일본 바리유엔스(Valuence)의 명품 매입 브랜드 ‘ALLU(아리유)’는 2025년 9월 9일 호찌민 다카오의 풍칵코안 거리 8번지에 1호점을 열었다. 가방·시계·주얼리를 취급하고 베트남어·영어·일본어로 응대한다. 회사는 이어 2026년 7월 4일 하노이에 ‘ALLU 하노이센터’를 열었다.
핵심은 이 매장이 물건을 들여오는 곳이 아니라 사들이는 곳이라는 점이다. 현지에서 매입해 현지나 해외로 유통하니 수입 금지 규정에 걸리지 않는다. 규제의 벽을 우회하는 유일하게 깨끗한 경로가 명품 매입 모델이었던 셈이다.
바리유엔스는 하노이 진출을 알리며 베트남의 럭셔리 시장이 확대를 이어가고 있고, 명품을 포함한 리유스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막힌 것은 물건이지 시장이 아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베트남에 중고 시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수입이 막혀 있을 뿐이다.
인도 컨설팅사 레드시어(RedSeer Strategy Consultants)는 2022년 베트남 중고 거래 시장을 11억 달러 규모로 평가하면서, 2026년까지 51억 달러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품목은 전자제품과 가전, 그리고 의류였다. 같은 시기 캐러셀 리커머스 인덱스 2021 조사에서는 베트남 응답자의 83%가 중고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사겠다고 답했다. 글로벌데이터 조사에서는 신품을 사기 전에 중고품을 먼저 살펴본다는 응답이 전체의 41%,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62%에 달했다.
즉 수요는 이미 있다. 문제는 그 수요를 받아낼 소매 형태다.
지금 호찌민의 중고 거래는 대부분 개인 간 SNS 직거래나 소규모 상점, 혹은 회색지대의 ‘항 시’ 시장에서 이뤄진다. 감정도, 보증도, 가격 기준도 없다. 2022년 출시된 베트남 중고 패션 앱 픽티나(Piktina)가 월평균 200% 성장률을 기록하며 투자를 유치한 것도 이 공백을 노렸기 때문이다.
일본 체인들이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판 것이 정확히 그 공백이었다. 등급 판정, 정찰제, 정품 감정, 정돈된 매장. 재래 구제시장의 경험을 소매업의 경험으로 바꿔놓은 것이 이들의 무기였고, 그 무기는 물건을 수입하지 않고도 옮겨올 수 있다.
바리유엔스의 ALLU가 호찌민 1호점을 낸 지 열 달도 안 돼 하노이로 넘어간 것이 그 증거다. 베트남에는 이미 명품을 손에 쥔 소비자층이 형성돼 있고, 그들이 물건을 내놓을 때 제값을 매겨줄 창구는 아직 드물다.
한국 교민 입장에서 이 상황은 두 얼굴이다. 방콕 출장길에 세컨드스트리트에 들르면 서울 백화점 가격의 몇 분의 일로 물건을 집어올 수 있다. 호찌민에서는 같은 경험을 살 수 없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아직 아무도 제대로 채우지 않은 자리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규제가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는 다른 문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밀수 단속을 강화하면서도 한편으로 중고 의류 거래를 양성화해 세수를 확보하자는 논의가 재무장관 입에서 공개적으로 나왔다. 베트남 정부는 아직 그런 신호를 내지 않았다. 다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영역은 이미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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