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 골프 메니아는, 뭔 이유가 필요해! 하며 코웃음 칠 일이지만, 오히려 골프를 40년 가까이 치며 적당한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에서 현타가 오면 자문해보는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골프를 왜 쳐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요즘처럼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기 전, 한창 달구어진 대지가 품어내는 열기를 그대로 안고 필드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새어나올 수 있는 푸념식 멘트가 바로 이것입니다.
더구나 더위에 지친 몸이 공을 제멋대로 보내고 그 공을 쫓아 뙤약볕 아래 여기저기를 헤매다 보면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하는 자문이 절로 나오지요.
돈을 주면서 걸으라 해도 사양할 일을 내 돈을 내면서 하고 있으니 참으로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는 말은 베트남의 뜨거운 햇살아래 한번이라도 채를 잡아본 골퍼라면 누구나 한번쯤 격하게 공감해 본 감성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를 쳐야 할 이유를 찾아보지만 사실 특별한 이유를 찾지는 못합니다. 그냥 좋아서 치는 것이죠. 남에게 내 세울 만한 정당한 이유를 찾아내지는 못하고 그저 건강에 좋아서 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대기도 합니다.
골프는 실제로 돈과 시간, 멘탈까지 모두 쏟아부어야 하는 종합 소모성 취미 활동입니다. 그러다 보니 삶의 스토리가 평이한 사람들이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굴곡이 많은 거친 삶에는 골프가 지긋하게 머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삶의 속도가 바꿔 생활의 리듬이 흔들리면 제일 먼저 골프같은 소비의 당위성을 증명하지 못하는 소모성 활동이 뜸해질 수밖에 없지요.
저 같은 경우도 한동안 골프를 떠난 적이 있긴 합니다. 그 당시 핑계는 나이 탓에 골프 비거리가 줄어서 재미가 없어졌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아마도 그 당시 사업상의 변화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하노이 진출을 시도하며 다른 사업을 손대기도 하고 접기도 한 시기였나 봅니다. 아무튼 그렇게 정신이 분산된 상황에서는 골프가 머물 자리가 없는 듯합니다.
골프로 다시 돌아오게 된 시기를 보면 이 역시 공감이 갑니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추었을 때 역설적이게도 다시 골프로 돌아왔습니다. 그 당시 MZ 세대들이 골프에 입문한 것 역시 코로나로 인한 생활의 단조로움이 골프를 불러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골프는 부산하고 굴곡진 변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팬데믹이 끝나고 다시 삶의 격동기를 겪는 MZ 세대로부터 골프가 떠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형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진짜 골프를 쳐야 할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스스로와 집사람을 납득시키기에는 충분한 이유를 발견하고 미소를 짓습니다.
삼성 핸드폰에는 삼성 헬스라는 앱이 기본으로 깔립니다. 하루에 몇 걸음 걷는지를 측정하면서 건강의 척도를 매기는 앱인데, 우연히 여기에 맥박(심박수)을 재는 기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맥박을 재 봤는데, 결과로 보여주는 것은 맥박만이 아니고, 스트레스 치수와 에너지 강도 그리고 자율신경의 안정도를 의미하는 HRV(심박변이도) 수치도 제공합니다.
평소 사무실에서 일할 때 측정을 하면 심박수는 정상에서 조금 떨어지는 듯하고, 스트레스 수치는 90%가 넘을 정도로 높고, 에너지는 기준 이하로 떨어지고, HRV만 그나마 정상이라는 수치가 나오는 게 일반적인데, 우연히 골프를 치곤 난 후 측정을 해봤더니 모든 수치가 확 달라집니다.
평소 60 내외의 심박수가 70정도로 올라가고, 스트레스는 양호할 만큼 좋아지고 에너지 치수 역시 활발하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와우! 골프가 이런 역할을 한다고 하며 감탄을 하게 만듭니다.
이제 시니어가 골프를 쳐야 할 이유가 나왔습니다. 사회활동이 빈번한 젊은이들과는 달리 교제를 통해 대화를 나눌 기회도 별로 없는 시니어에게는, 오랜만에 잘 차려 입고 나선 필드에서 친구들을 만나 함께 걸으며 공을 쫒아다니며 파안대소를 나누는 것이 건강에 직접적 보약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집사람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럴 수 있지 하고 공감을 던지긴 하지만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하긴 뭐 대수로운 일이겠습니까? 어차피 틈만 나면 골프장을 찾아다니는 인간인데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그나마 그 나이에 그거라도 해야지 하며 양보하는 상황인데, 스트레스 치수나 신체 건강수치가 좋아진다니 다행이다 정도로 치부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골프를 치면서 공이 안 맞으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늘어난다고 생각하지만 몸과 마음은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초록빛 필드와 따스한 햇살이 주는 순작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 수치로 확인하고 나니 진짜 몸도 좋아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골프는 굴곡진 삶에는 머물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건 골프가 잔잔한 삶을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그 잔잔함을 평화로 되돌려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내내 90%까지 차오른 스트레스 수치를 주말 한나절의 필드가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다면, 골프는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적어도 저와 집사람을 납득시키기에는 충분한, 골프를 쳐야 할 타당한 이유를 이제야 찾은 듯합니다.
여전히 삶의 여정이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주말이 되면 다시 필드에 나가 그 일상의 잡음을 지울 수 있는 일정이 있다는 것이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이번 주말에는 공이 잘 맞건, 안 맞건 우리 모두 입가에 미소를 담고 굿샷을 날려보시길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