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을 둘러싼 중동 지역의 군사적 충돌이 장기화하면서 미국 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방파제가 무너지고 있다. 치솟는 연료비와 식품 가격에 미국인들의 지갑이 급격히 메마르면서 소비자 심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26일 미국 연방 노동통계국(BLS)과 현지 경제 매체 CNBC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3,8% 상승해 지난 202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자산의 여파로 에너지 부문 물가가 18% 가까이 폭등하면서,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는 메가톤급 도미노 효과를 촉발했다.
실제로 대규모 연휴인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연방 현충일)’를 맞아 야외 바비큐 파티와 가족 여행을 준비하던 미국인들은 전방위적인 물가 고비를 맞이했다. 미시간대학교가 발표한 5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약 석 달간 이어진 중동 분쟁발 유가 폭등세가 직렬 연동되면서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로 추락했다. 유통가 수뇌부들도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미국 저가 화장품 대기업 이.엘.에프. 뷰티(E.l.f. Beauty)는 소비자들이 연료비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자 가격 인상 계획을 전격 유보했으며, 맥도날드 최고경영자(CEO) 역시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인해 패스트푸드 업계가 매우 가혹하고 도전적인 환경에 직면했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곳은 먹거리 부문이다. 비료 대금 상승과 사육 두수 감소가 겹치며 여름철 단골 메뉴들이 일제히 올랐다. 품목별로 보면 토마토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9.7% 폭등하며 가계에 가장 큰 부담을 안겼고, 원두 공급망 차질로 커피 가격도 18.5% 치솟았다. 전 국민의 주식인 스테이크용 소고기(16.1%)와 다진 소고기(14.5%), 이탈리아식 소시지(10.7%) 등 육류 제품도 두 자릿수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밖에 디저트용 케이크·쿠키류가 5.1%, 소스 및 조미료가 3.7% 올랐으며 탄산음료(3.7%)와 맥주(2.2%) 값도 일제히 상향 계량화됐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 철을 앞둔 여행 인프라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미국자동차협회(AAA)는 이번 연휴 기간 총 4천500만 명의 미국인이 50마일(약 80km) 이상의 장거리 이동에 나설 것으로 예측했다. 이 중 3천900만 명 이상이 차량을 이용할 예정이지만, 전국의 휘발유 가격은 중동 전쟁 발발 이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4%나 폭등했다. 개인 재무 분석 기관 너드월렛(NerdWallet)의 킴벌리 팔머 전문가는 “유가 폭등 속에서도 고향 방문이나 휴가를 포기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주유소에서 지출이 늘어난 만큼 다른 생활비 예산을 눈물겹게 삭감하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항공 등 공중 물가 상황은 더욱 참혹하다. 미국의 항공권 가격은 1년 새 20.7% 급등해 오일쇼크 여파가 잔존했던 지난 2022년 에너지 위기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형 항공사들은 이란이 글로벌 원유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을 전격 봉쇄하거나 위협하면서 항공유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아 티켓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해명했다. 연료비 삼중고를 버티지 못한 미국 대형 저비용항공사(LCC) 스피릿 항공(Spirit Airlines)이 이달 초 전격 파산 조치되면서, 향후 여객 공급망 축소로 인한 항공료 추가 폭등 우려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실사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인의 20%는 고유가 부담을 이기지 못해 여름 휴가 일정을 축소하거나 목적지를 가까운 도심 근교로 변경하겠다고 응답했다. 연휴 기간 호텔 및 숙박업소 비용도 4.3% 상승 흐름을 보였다.
물가 파고는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려는 이른바 ‘홈캉스’ 족도 피해 가지 못했다. 영화, 연극, 콘서트 등 문화 예술 관람권 가격이 전년 대비 5,5% 올랐으며, 자전거 및 스포츠 용품 가격은 4.3% 상승했다. 원예 활동에 필요한 잔디깎이 등 공구 자산은 5%, 조경용 식물과 화훼류 가격도 6% 오르는 등 미국인들은 일상의 모든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 인플레이션의 혹독한 역풍을 견뎌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