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ng Out – 랑 사이공(laang Saigon)에서의 오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베트남 전통 요리의 정수를 만나다

호찌민시 2군 타오디엔(Thao Dien)은 ‘베트남의 청담동’으로 불린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빌라들이 즐비한 이 동네는 외국인 거주자들과 현지 부유층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가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다. 사이공 강변을 따라 형성된 이 지역은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그랩(Grab) 택시가 당후포(Dang Huu Pho) 거리로 접어들자 울창한 가로수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22번지 앞에서 내리니 하얀 벽과 나무 루버로 마감된 2층 건물이 녹음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정원에는 열대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작은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지워냈다. 이곳이 바로 2018년 문을 연 랑 사이공(Laang Saigon)이다.

콴부이 그룹의 야심작

랑은 베트남에서 가장 성공적인 레스토랑 그룹 중 하나인 콴부이(Quan Bui)의 프리미엄 브랜드다. 콴부이가 ‘시골 선술집’이라는 소박한 콘셉트로 베트남 가정식을 대중화했다면, 랑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되 훨씬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방향으로 진화한 케이스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직원이 미소로 맞이했다. “예약하셨나요?” 다행히 평일 점심 시간이라 자리가 있었지만, 주말이나 저녁 시간대에는 사전 예약이 필수라고 했다. 온라인 시스템(linktr.ee/quanbuigroup)이나 웹사이트(laangsaigon.com)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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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의 미학

1층 홀은 높은 천장과 큰 창문 덕분에 개방감이 넘쳤다. 인테리어는 1960-70년대 사이공의 황금기를 연상시키는 빈티지 스타일이다. 티크 목재 테이블과 의자, 대리석 바닥, 그리고 옛 사이공의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현대적 디자인 요소들이 적절히 가미되어 고루하지 않으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 바로 들어오면 보이는 정원 및 테라스 공간 사진

직원의 안내로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벽에 걸린 커다란 유화가 눈길을 끌었다. 베트남 전통 의상 아오자이(Ao Dai)를 입은 여인의 초상화였는데, 어딘지 모르게 현대적인 터치가 느껴졌다. 2층은 1층보다 더 아늑했다. 조명이 한층 낮아져 더욱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10인 이상의 단체 모임에 적합한 프라이빗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 2층 모습

직원의 안내로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벽에 걸린 커다란 유화가 눈길을 끌었다. 베트남 전통 의상 아오자이(Ao Dai)를 입은 여인의 초상화였는데, 어딘지 모르게 현대적인 터치가 느껴졌다. 2층은 1층보다 더 아늑했다. 조명이 한층 낮아져 더욱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10인 이상의 단체 모임에 적합한 프라이빗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으니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 몬스테라 같은 열대 식물들이 우거진 정원은 마치 도심 속 정글 같았다. 타오디엔만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이곳에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2층 화장실을 이용해보니 고급 호텔 수준의 청결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 랑에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정원 사진

메뉴판을 펼치다

메뉴판은 제법 두껍다. 소설책만큼이나 방대한 선택지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영어와 베트남어로 병기되어 있고, 대부분의 메뉴에 사진이 첨부되어 있어 주문하기는 편했다. 카테고리는 크게 애피타이저, 샐러드, 수프, 메인 요리, 밥과 국수, 디저트, 음료로 나뉜다.
가격대를 살펴보니 애피타이저는 10만~20만 동, 메인 요리는 20만~40만 동 수준이다. 베트남 물가를 고려하면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타오디엔의 다른 고급 레스토랑들과 비교하면 합리적인 편이었다. 1인당 50만~70만 동(약 2만 5천~3만 5천 원)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번째 요리, 포멜로 샐러드

주문 후 15분 정도 지나자 첫 요리(GỎI BƯỞI TÔM NƯỚNG)가 나왔다. 넓은 접시 위에 예술 작품처럼 담긴 포멜로 샐러드는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했다. 자몽(포멜로)의 과육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발라낸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위에 숯불에 구운 큰 새우 3마리, 민트와 고수 같은 허브, 얇게 썬 적양파, 튀긴 샬롯, 그리고 땅콩이 올라가 있었다.
포크로 한 입 떠먹자 새콤달콤한 자몽의 맛이 먼저 입안을 채웠다. 이어서 새우의 탄력 있는 식감과 고소한 맛, 허브의 상큼함, 튀긴 샬롯의 바삭함이 차례로 느껴졌다. 드레싱은 느억맘(Nuoc Mam, 베트남 피시소스) 베이스인 듯했는데, 라임과 칠리가 들어가 상큼하면서도 약간의 매콤함이 있었다. 각 재료의 신선도가 뛰어났고, 무엇보다 맛의 균형이 완벽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각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의 정성과 드레싱의 비율이 이 요리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것 같았다. 특히 자몽의 쓴맛을 완전히 제거하면서도 과즙의 신선함은 그대로 살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레스토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요리, 소프트쉘 크랩

이어서 나온 소프트쉘 크랩구이(CHẢ CUA ĐÚT LÒ) 시각적으로도 화려했다. 황금빛으로 바삭하게 구운 게 2마리가 게살과 돼지고기가 적절하게 섞고, 치즈로 위를 감싼채로 나왔고, 곁들임으로 오렌지 소스와 칠리소스가 제공되었다.
간장 소스를 게 위에 올려 먹어보니 과연 감탄이 나왔다. 위에 올려진 치즈 그리고 구어진 패티의 고소함과 오렌지의 신선한 산미가 만나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다.
이 요리를 통해 랑의 조리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베트남 전통 요리인 게 요리에 오렌지라는 서양 식재료를 더해 전혀 새로운 맛을 창조한 것이다. 퓨전이라는 말이 자칫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랑의 요리는 베트남 요리의 정수를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잃지 않는 균형감을 보여주었다.

메인 요리, 오리가슴살

메인으로 주문한 오리가슴살(XÁ XÍU VỊT)은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오리고기에다가 절인 야채가 같이 나온 요리다. 긴 그릇에 담겨 나온 본 요리는 붉은 소스로 인하여 베트남 보다는 무언가 프랑스적인 느낌이 강한 요리지만, 사실 동양적인 요소는 떠나지 않은 맛이다.
붉은 소스는 그레이비보다는 중국식 호이신소스게 가까운맛에다가, 비계로 인하여 기름지기 쉬운 오리고기를 잘 익혀서 순살의 맛이 느껴지고 약간의 비계지방이 순살의 퍽퍽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한국인인 나에게는 단맛이 다소 강하게 느껴졌다. 베트남 남부 요리는 북부에 비해 단맛이 강한 편인데, 이는 사탕수수 재배가 많은 남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다음에 올 때는 주문 시 단맛을 조금 줄여달라고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나온 잡곡볶음밥과 곁들여 먹으니 고기의 퍽퍽함과, 소스 특유의 단맛이 중화되면서 훨씬 균형 잡힌 맛이 되었다. 생선 요리치고는 밥도둑이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배가 제법 불렀다.

주변 테이블의 풍경

주변 테이블을 살펴보니 다른 손님들이 주문한 요리들도 흥미로웠다. 옆 테이블의 외국인 가족은 반쎄오(Banh Xeo, 베트남식 팬케이프)를 나눠 먹고 있었다. 황금빛 쌀가루 반죽에 숙주나물과 새우, 돼지고기를 넣어 구운 이 요리는 한국의 부침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어 보였다. 랑의 반쎄오는 일반 길거리 음식보다 훨씬 정갈하게 플레이팅되어 나왔고, 신선한 채소와 함께 라이스페이퍼에 싸 먹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분보후에(Bun Bo Hue)를 먹고 있었다. 후에 지방의 전통 쌀국수로, 얼큰하고 깊은 맛이 특징인 음식이다. 플레이팅을 보니 5성급 호텔에서 나올 법한 깔끔한 스타일이었다. 길거리 음식의 거칠지만 강렬한 맛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순할 수 있겠지만, 베트남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이 될 것 같았다.
게살 국수인 반다꾸아(Banh Da Cua)를 먹는 손님도 보였다. 게살이 듬뿍 들어간 붉은색 국물이 식욕을 돋웠다. 다음 방문 때는 꼭 시도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배려

메뉴판을 다시 살펴보니 채식 메뉴가 상당히 풍부했다. 그린 레벨(Green Rebel)이라는 섹션에 다양한 채식 옵션이 준비되어 있었다. 코코넛 과육을 마늘과 함께 볶은 요리, 표고버섯을 마늘과 함께 볶은 요리(Bong He Xao Toi) 등이 눈에 띄었다.
이는 베트남 불교 문화의 영향도 있지만, 전 세계적인 채식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와 비채식주의자가 함께 식사하기에 적합한 레스토랑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 랑은 이를 완벽하게 해결한 듯했다. 채식하는 친구들을 다음에 꼭 데려와야겠다.

디저트와 음료

식사를 마치고 이곳의 시그니처 음료인 코코넛 커피(Coconut Coffee)를 주문했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겨 나온 이 음료는 층층이 나뉜 비주얼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맨 아래에는 신선한 코코넛 과육, 중간에는 연유, 맨 위에는 진한 베트남 커피가 올라가 있었다.
빨대로 저어 먹자 달콤함과 쌉싸름함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코코넛의 고소함, 연유의 달콤함, 커피의 쓴맛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입안에서 춤을 췄다. 호찌민에서 며칠 동안 여러 카페를 다녀봤지만, 이곳의 코코넛 커피가 단연 최고였다. 베트남 커피 문화의 진수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직원에게 소금 커피(Salted Coffee)에 대해 물어보니 이것도 인기 메뉴라고 했다. 베트남 중부 도시 후에에서 유래한 이 음료는 달콤한 크림 위에 소금을 뿌려 짭조름한 맛과 단맛의 조화를 즐기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다음 방문 때 꼭 시도해봐야겠다.
디저트 메뉴로는 바나나 아이스크림(Banana Ice Cream)이 눈에 띄었다. 사진을 보니 비주얼이 훌륭했다. 하지만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다음 기회로 미뤘다.

서비스의 수준

랑의 서비스는 전반적으로 훌륭했다. 직원들은 친절하고 전문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웃는 얼굴로 응대했다. 영어도 유창해서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메뉴 설명을 요청하자 각 요리의 특징과 추천 조합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음식이 나오는 타이밍이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적절한 간격으로 요리가 제공되어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었다. 물잔이 비면 바로 채워주고, 빈 접시는 신속하게 치워주는 등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계산을 요청하자 항목별로 정리된 영수증과 함께 작은 사탕이 제공되었다. 총 금액은 1인 기준 약 70만 동(약 3만 5천 원). 베트남 물가를 고려하면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음식의 질과 서비스, 분위기를 종합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가격이었다.

가격 대비 가치

랑의 가격은 호찌민의 일반 식당에 비하면 확실히 높은 편이다. 배낭여행객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대다. 평균적으로 1인당 50만~70만 동, 푸짐하게 먹으면 100만 동(약 5만 원)도 훌쩍 넘을 수 있다.
하지만 가격 대비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꼈다. 음식의 질, 서비스, 분위기를 종합하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온 가족이나 친구를 접대하거나,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 특별한 날의 데이트 장소로는 완벽할 것 같다.
타오디엔의 다른 고급 레스토랑들과 비교해도 가격이 합리적이다. 같은 수준의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럽식 레스토랑에 비하면 30-40% 저렴하다. 베트남 음식을 세련되게 즐기고 싶은데 길거리 음식의 위생이 걱정되는 이들에게는 완벽한 선택지다.

현대적 감각와 전통의 조화가 아름답게 마감된 레스토랑

랑 사이공은 베트남 전통 요리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완벽하지는 않다. 가격이 높고, 조명이 다소 어두우며, 메뉴 선택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음식의 질, 분위기, 전반적인 경험이 우수하다.
타오디엔의 녹음 속에 자리한 이 레스토랑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다. 옛 사이공의 우아함과 현대 호찌민의 활력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나는 베트남 요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다음 호찌민 방문 때, 타오디엔의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고 싶다면 랑 사이공의 문을 두드려보라. 당후포 22번지,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오감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경험이 될 것이다. 참고로 시내 중심1군 응오 반남 거리(Ngo Van Nam) 18번지에도 랑이 있다. 7군이나, 1군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그곳디 더 좋을 수 있다.
레스토랑을 나서며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녀는 밝은 미소로 답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미소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랑 사이공이라는 공간이 가진 따뜻함이 그 미소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랑 사이공(Laang Saigon) 정보
◆ 주소: 22 Dang Huu Pho, An Khanh Ward, Thu Duc City (타오디엔)
◆ 전화: 028-6650-4344
◆ 영업시간: 매일 오전 7시 – 오후 10시
◆ 예약: https://laangsaigon.com 또는 https://linktr.ee/quanbuigroup
◆ 가격대: 1인당 50만~100만 동 (약 2만 5천~5만 원)
◆ 주차: 무료 주차 가능
◈ 설 연휴 기간에도 영업합니다

◆ 제2지점: 랑 센트럴(Laang Central) – 18 Ngo Van Nam, Saigon Ward
◈ 2월 16일부터 2월 22일까지 설 연휴 휴무합니다
◈ (2월 23일부터 다시 영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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