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 하노이(Hà Nội) 떠이호(Tây Hồ)동의 한 카페에 들어선 윌 쿠라조(Will Courageux·33)는 50㎡ 남짓한 공간이 이미 가득 찬 것을 봤다. 외국인 20여 명이 킥오프 휘슬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2026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자국 대표팀과 이라크의 경기(6월 23일)를 응원하러 카페를 찾았다. 프랑스 국적이 아닌데도 순수한 축구 사랑으로 카페에 온 외국인이 많았다.
윌은 프랑스에서는 보통 준결승부터 결정적인 경기에서 대표팀이 이기면 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트남에 온 뒤로 습관이 바뀌었다. 그는 “베트남에서는 축구 열기가 여전히 뜨겁지만 가족적인 분위기다. 조별리그든 결승이든 축구는 늘 사람을 만나는 구실이 되는데, 나도 베트남 사람들의 이 문화에 물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대표팀이 나오지 않는 경기까지 보기 시작했다. 하노이의 한 국제학교 교육 전문가인 그는 “처음 며칠은 잠이 부족해 몸이 꽤 무거워서 주로 오후에 일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소리 지르는 기분이 짜릿하다”고 말했다.
6월 20일 새벽 2시, 미국인 마르케스 라이언(Marquez Ryan·36)은 친구들과 호찌민(Hồ Chí Minh)시 안카인(An Khánh)동의 한 바에서 자국 대표팀 경기를 지켜봤다. 라이언은 미국에서는 축구가 농구나 미식축구만큼 관심을 받지 못해, 보통 다음 날 아침 골 장면 요약 영상을 다시 보는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런데 여기 살면서, 택시 기사부터 아파트 경비원까지 미국 대표팀 선수 이름을 줄줄 아는 것을 보고 놀랐다. 현지인들의 뜨거운 관심이 에너지를 줘서 그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응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26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 베트남 외국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축구 관람 장소를 찾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새벽 5시에 문 여는 곳은 어디냐’, ‘우리 대표팀 경기 같이 볼 동향 사람을 찾는다’는 글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다.
이런 수요에 맞춰 하노이와 호찌민의 적지 않은 외식업소가 운영 방식을 바꿨다. 하노이 푸쿠 카페&스포츠바의 다오 쑤언 쯔엉(Đào Xuân Trường) 매니저는 올해 시즌 손님이 두 시간대로 뚜렷이 나뉜다고 말했다. 관광객과 가족을 포함한 외국인 손님은 주로 오전 5시부터 9시 사이 경기에 몰리며, 손님 수는 경기나 대표팀 인기에 따라 50명에서 250명까지 오간다. 그는 “시차가 커서 야간·이른 아침 근무 인력을 늘려야 했고, 모든 서빙 직원이 영어로 메뉴와 화면 관련 요청을 돕는다”고 말했다. 업소는 화질과 지연을 잡기 위해 프로젝터와 케이블 방송 회선도 개선했다.
호찌민시에서 바를 운영하는 호주 출신 제이미 터크웰(Jaime Tuckwell·47)도 직원을 2교대로 배치하고 새벽부터 영업시간을 늘렸다. 손님은 주로 영국·호주·네덜란드에서 왔다. 베트남에서 11년을 산 그는 두 나라의 축구 관람 문화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호주에서는 대표팀 경기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펍에 고정적으로 모이지만, 베트남에서는 큰 식당부터 길거리 노점까지 관람 공간이 더 유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베트남 팬들은 호날두나 메시 같은 개인 스타를 좋아해 그 스타가 있는 팀을 응원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스타가 있든 없든 국가나 지역의 깃발에 충성한다”며 베트남 사람들이 호주 사람보다 승리를 훨씬 오래 자축한다고 말했다.
스포츠 전문 바 외에 현지의 소박한 생활 방식에 녹아드는 외국인도 많다. 다낭(Đà Nẵng)에 사는 영국인 잭 윌슨(Jack Wilson·33)은 이른 아침이면 골목 어귀 노점을 찾는다. 동네 주민들이 공용 마당에 TV를 들고 나와 이웃과 함께 보는 곳이다. 잭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연유 커피를 마시며 가끔 베트남어 몇 마디로 사람들과 함께 한 장면을 평한다. 그는 “영국에서는, 특히 자국 대표팀 경기를 볼 자리를 잡으려면 자리가 꽉 차서 보통 몇 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주민들의 환대 덕분에 나 같은 타향살이가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노이에 사는 프랑스인 소피 베르나르(Sophie Bernard·29)도 길거리 식당을 관람 장소로 택했다. 그는 “새벽 2시에 뜨거운 퍼 한 그릇을 먹으며 주인, 손님과 이야기하고 우리 팀이 골을 넣으면 소리치는 그 기분은 고향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적 관점에서 팜 응옥 쭝(Phạm Ngọc Trung) 전 방송선전학원 발전문화학과장(부교수·박사)은 현지 주민들이 다른 나라 대표팀을 응원하며 보이는 열의가, 타향살이하는 외국인 공동체에 안심과 존중받는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영국 시민이 길거리에서 TV를 보고 프랑스 시민이 커피를 마시며 축구를 응원하는 모습은 현지 문화가 큰 흡인력과 포용력을 지녔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은 단지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착하기로 한 땅의 생활 방식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동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