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거래에 대한 제재 유예 조치가 만료되며 압박이 거세진 가운데, 베트남의 이웃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계획을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라며 수입 강행 의사를 공식 천명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서방의 제재 동참 압박보다 자국의 에너지 안보와 실리 구축을 최우선으로 두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2일 인도네시아 국영 안타라(Antara)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라오데 술레이만(Laode Sulaeman)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 석유가스총국장은 자카르타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제재 유예 조치가 지난 5월 16일부로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원유 도입 프로세스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이틀 전 율리옷 탄중(Yuliot Tanjung) 에너지부 차관이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음을 언급하며 양국 간의 협력이 차질 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립한 로드맵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올해부터 오는 2026년 말까지 총 1억 5,000만 배럴에 달하는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할 계획이다. 이는 ‘만도 섬나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가 신흥 경제 대국으로서 빠른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안정적인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는 핵심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바흘릴 라하달리아(Bahlil Lahadalia) 인도네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양국 간의 세부 협상과 매매 계약서 체결이 모두 마무리됐다”라며 “제반 운송 절차가 끝나는 대로 앞으로 2주 이내에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첫 번째 유조선이 인도네시아 항구에 입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거래 대금 규모나 배럴당 할인 가격 등 상세한 계약 조건은 대외 보안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상당한 양의 국내 원유 생산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여전히 석유 순수입국 지위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신임 대통령 정부는 가정용 연료, 교통, 산업 전반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 확보를 최우선 민생 과제로 설정했다. 현재 러시아산 원유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중동산 원유나 기타 국제 기준 유가보다 대폭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어, 수입국 입장에서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앞서 율리옷 탄중 차관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위한 법적·제도적 프레임워크를 구축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카르타 당국은 국영 에너지 기업이 직접 수입을 주도하는 방안과 공공 서비스 기관을 중간 매개체로 설정하는 방안 등 두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서방의 금융 제재망을 우회하기 위한 정교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의 이번 행보가 서방 세력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독립적이고 주도적인(độc lập và chủ động)’ 전통적 외교 노선과 최근 브릭스(BRICS) 가입을 기점으로 신흥국들과의 연대를 다지려는 전략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현재 러시아산 원유는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거대 시장으로 대거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들 국가 역시 서방의 무역 제한 조치에 동참하기보다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에너지 안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최근 인도 정부 역시 미국의 제재 기조 변화와 무관하게 국내 에너지 수요 충족을 위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지속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교역 가치 사슬의 중심축이 서방에서 아시아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