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민 출신’ 총영사 정정태
“부가세·한국학교·인력난… 미루지 못할 숙제부터 풀겠다”
15년 전, 한 명의 한국 변호사가 떤선녓(Tan Son Nhat) 공항에 내렸다. 2011년 3월의 일이다. 그는 이후 호찌민(Ho Chi Minh)의 산업단지와 법정, 코참(KOCHAM) 회의실과 교민 모임을 오가며 한국 기업의 분쟁을 조율하고, 교민들의 민원을 듣고, 베트남 법전을 들춰왔다. 그리고 지난 2월, 그는 변호사 가운을 벗고 외교관 명패 앞에 앉았다. 정정태(Jeong Jeong-tae) 신임 주호치민 총영사. 호찌민 교민 사회가 배출한 첫 총영사다.
법무법인 지평(Jipyong) 호찌민 지사장, 코참 운영위원, 코트라(KOTRA) 자문변호사. 민간에서 쌓은 이력은 화려하지만, 그가 짊어진 자리의 무게는 다르다. 부임 두 달, 사이공(Saigon) 중심가의 총영사관 집무실에서 그를 마주 앉았다.

■ “바로 이웃이었던 사람이, 공관 안으로 들어왔다”
정 총영사는 자신의 임명을 “영광이자 막중한 책임”이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호찌민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사람으로서 주호치민 총영사라는 중책을 맡게 되어 개인적으로 무한한 영광이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현지 사정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교민과 우리 기업이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보다 면밀히 살펴 실질적인 도움을 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그는 자신이 ‘첫 사례’라는 점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다. 과거 교민 출신 대사가 임명된 적은 한 차례 있었지만 근무지는 하노이(Hanoi)였다. 호찌민 교민들이 지근거리에서 공관장을 만날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바로 이웃이었던 사람이 공관 안에 들어와 있다 보니 서로 낯설고 적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일단 공관에 들어와서 많이 배우고 있고, 한편으로는 교민 시각에서 공관에 기대했던 것들을 안에서 펼쳐보려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 미시에서 거시로, 의자 하나의 무게
법조인의 의자와 외교관의 의자. 같은 도시에서 같은 사람을 마주하더라도, 두 의자가 짊어진 무게는 다르다. 정 총영사는 변호사 시절과 현재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했다. “변호사로서는 개별 기업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미시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이었다면, 총영사는 국익을 위해 거시적 관점에서 양국 간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전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위치”라고 했다. 개별 사안의 해결을 넘어 제도와 정책 차원의 근본적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의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변호사 시절 그가 주로 다룬 분야는 기업 자문이었다. 교민 개인의 민사·형사 사건은 베트남 변호사법상 외국계 로펌이 직접 소송 대리를 할 수 없어 한계가 컸다. 법정에 나설 수는 없었지만, 서류 검토와 컨설팅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그는 한국 기업과 교민의 애로를 풀어왔다. 그 시간이 지금은 가장 큰 자산이 되고 있다.
민간 시절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가 공적 중립성에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단호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신속하고 정확히 파악하는 데 분명한 장점이 있다”면서도 “공직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성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숨 가쁜 부임 두 달… 베트남 고위직 예방과 현안 전달의 병행
부임 두 달, 그의 일정표는 숨 쉴 틈이 없었다. 동나이성(Dong Nai)과 호찌민시의 공안청장, 당서기장, 인민위원장 예방이 줄줄이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베트남 지방 고위직들의 유임 여부가 결정되는 시기와 맞물렸다. 그는 부임 인사를 드리는 기회에 그동안 한국 기업과 교민들이 정부 기관 쪽에 전달하고자 했던 애로사항을 함께 건의해 왔다.
교민 단체와의 상견례도 1차 라운드가 마무리됐다. 주요 동포단체는 대체로 한 차례씩 면담을 마친 상태다. “당분간 교민 단체 일정은 크게 없고, 지금은 기업 쪽을 집중적으로 만나면서 현장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고 했다.
■ 전문가 자문단 가동… “특별한 절차 없이 활용 가능”
정 총영사가 코참 간담회에서 제안해 주목받은 변호사·회계사·관세사 전문가 자문단의 윤곽이 드러났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 정부기관의 행정처분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총영사관 자문변호사가 해당 조치의 법적 근거와 대응 방안을 먼저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담당 영사가 베트남 소관 기관에 필요한 조치를 요청하는 구조다.
활용 방법도 간명했다. “담당 영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실 때 법률 검토 자문을 요청하시거나, 담당 영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법률자문단을 안내해 드리겠다”고 했다. 별도 신청 절차 없이 상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식이다.

■”부가세 환급, 모든 기업의 공통 현안”
기업 간담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현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부가가치세 환급 문제를 꼽았다. “모든 기업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애로사항”이라는 것이다. 다만 해법은 간단치 않다. 그는 “내국 수출입 제도 관련 개정 법령의 소급 적용 여부, 거래 상대방의 부가세 미신고 상태 폐업, 베트남 정부의 환급 재원 부족 등 원인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개별 사안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통관·물류 지연 문제에 대해서는 “제도 전환 과정의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신중한 해석을 내놓았다. 하위 규정과 시스템 정비가 충분히 병행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으며, 베트남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총영사관의 한계도 솔직히 인정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같은 개별 사안에 직접 관여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기업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유관기관과의 공식 채널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 섬유·금융 업계의 속앓이… “새 시장 창출 제도 제안도 구상”
업종별로 파고들면 고민은 더 구체적이다. 섬유업계의 경우 인력난이 구조적으로 시급해 중국 기업들에게 인력을 뺏기고 있는 상황이다. 정 총영사는 “자동화 설비 전환에 대한 정부 보조금 문제를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고, 상급지나 아예 다른 해외로 이전하는 것에 대한 지원 방안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며 “다각도 검토와 요청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권에 대한 진단은 한층 날카로웠다. 변호사 시절 금융 자문 경력이 묻어났다. “베트남은 아직 금융 산업이 성숙돼 있지 않다. 은행은 대출, 증권사는 브로커리지만 하는 상황이라 경쟁이 타이트하고 시장이 협소할 수밖에 없다.” 그는 새로운 금융 상품, 파생상품 거래, 최근 발표된 가상자산 거래소 라이센스 발급 움직임 등을 언급하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제도 방안에 대한 제안도 해보려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대목은 베트남 공공기관 측의 자세다. “베트남 공공기관들을 만나보면 그쪽에서도 자기들 산업을 고도화하기 위한 방안을 많이 연구하고 있고, 한국의 경험을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외국인 관점에서 본 제도 개선 사안이나 발전 방향에 대한 간담회·세미나를 열어 달라는 제안을 베트남 공공기관 쪽에서 먼저 하고 있다.” 한국 측 일방의 요구가 아니라, 양방향의 필요가 맞물리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 한국국제학교 부지 확장, “최우선 중점 과제”
오랜 숙원 사업인 호치민 한국국제학교 (Korean International School Ho Chi Minh City) 문제는 그가 부임 직후부터 직접 챙기고 있는 현안이다. “부임하자마자 당장의 현안이 생겼다. 신규 부지에 대한 토지사용권 문제, 선생님들의 워크퍼밋 문제가 있다.” 담당인 최철호 영사와 함께 호찌민시 공무원, 베트남 외무부 쪽과도 협업해 협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국제학교에는 2,100여 명의 교민 자녀가 재학 중이다. 전 세계 34개 재외한국학교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규모지만, 교실 부족과 학급 과밀화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정 총영사는 학교 부지 확장을 “최우선 중점 과제”로 규정하며, 호찌민시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조속한 해결을 위한 전방위적 외교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단체 쪽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주재원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다. 가정이 화평해야 기업 활동도 열심히 할 수 있으니 기업분들의 관심이 매우 많으시더라.”
■ “발로 뛰는 영사 행정, 선제적 적극행정으로”
정 총영사는 “발로 뛰는 영사 행정”이라는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사후 보완적 민원 대응을 넘어 선제적 적극행정을 지향한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대기업·금융기관은 물론 코참 산하 업종별 협의체 대표들과의 정기 간담회는 이미 진행 중이며, 코참·코트라와 협업한 정책 개선 세미나도 준비하고 있다.
관할 지역 지원 계획도 구체적이다. 이달 초 껀터(Can Tho)시 방문을 시작으로 한국 기업과 교민이 밀집한 지역을 연 1회 이상 방문할 예정이며, 냐짱(Nha Trang)·푸꾸옥(Phu Quoc)·껀터 등 원격지를 대상으로 한 순회영사 서비스를 확대한다. 디지털·온라인 영사 서비스 강화를 위해 외교부 및 재외동포청과도 협력을 추진할 방침이다.
교민 행사 참석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내비쳤다. “개인적으로 친하고 잘 아는 분들이 곳곳에 계시다. 여러 단체의 개인적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외면할 수는 없다.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 일정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다.
■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한인 사회”
호찌민에서 15년을 살아온 당사자로서 한인 사회의 변화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진출 업종과 연령대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고, 관광·유학·연수·출장 등 단기 체류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동남아 최대 한인 밀집 지역으로 약 10만여 명이 체류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호찌민 동포사회는 이해관계가 그만큼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어, 더 세밀한 지원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임기 중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과제를 묻자 그는 “급변하는 정책 환경 속에서 모든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균형 있게 조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세무·노동·인허가 등 규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현장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 적절하고 신속한 대응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전망이다.
■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
정 총영사는 자신의 임명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 읽었다. “호찌민에서 10년 넘게 생활해 온 교민 출신을 특임공관장으로 임명한 데에는 재외공관이 동포사회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라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현장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총영사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무실 문을 나설 때, 그의 책상 위 법령집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변호사 15년, 외교관 두 달. 같은 책, 다른 의자. 약 10만 호찌민 한인 사회가 그 의자 위의 그를 지켜보고 있다.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지 않았나. 교민이 총영사로 임명된 건 사실상 처음인데.
“솔직히 저도 놀랐다. 임명권자를 직접 만나 과정을 들을 기회는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배경은 잘 모른다. 다만 혼자 짐작해 보자면, 호찌민 총영사관은 대사관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기업과 교민에 더 밀착된 업무가 많은 공관이다. 현지 교민과 기업을 잘 알고 현황에 밝은 사람이 와서 경험과 전문성을 풀어냈을 때 플러스되는 요소가 많다고 판단하신 게 아닐까 싶다.”
변호사 시절과 총영사로서의 역할, 어떤 차이를 느끼시나.
“변호사로서는 개별 기업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미시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이었다면, 총영사는 국익을 위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양국 간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개별 사안 해결을 넘어 제도와 정책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역할의 범위와 책임이 크게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웃이었던 사람이 공관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서로 좀 낯설고 적응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저도 공관에 들어와서 많이 배우고 있다.”
기업 간담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애로사항은.
“단연 부가가치세 환급 문제다. 모든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애로사항이다. 그다음은 인력 문제다. 섬유협회 쪽은 인력난이 구조적으로 시급하다 보니 중국 기업들한테 뺏기고 있다. 자동화 설비 전환에 대한 정부 보조금 문제를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고, 상급지나 아예 다른 해외로 이전하는 것에 대한 지원 방안 같은 다각도의 검토나 요청을 하신다.”
호치민 한국국제학교 건설 문제가 오랜 숙원 사업이다. 현재 진행 상황은.
“호치민 한국국제학교는 동포사회 안정과 발전을 위한 핵심 교육 인프라라고 생각한다. 현재 2,100여 명 교민 자녀들이 재학 중이며, 이는 전 세계 34개 재외한국학교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다만 교실 부족 및 학급 과밀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만큼, 교육 시설 확충을 위한 학교 부지 확장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사실 부임하자마자 당장의 현안이 생겼다. 신규 부지에 대한 토지사용권 문제, 선생님들의 워크퍼밋 문제가 있다. 담당인 최철호 영사와 함께 호찌민시 공무원, 베트남 외무부 쪽과도 협업해 협의를 많이 진행하고 있다. 총영사관은 학교 부지 확장을 최우선 중점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호찌민시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조속한 해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씬짜오베트남 독자, 호찌민 교민과 기업인들에게 한 말씀.
“호찌민에서 10년 넘게 생활해 온 교민 출신을 특임공관장으로 임명한 데에는 재외공관이 동포사회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라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호찌민 동포사회와 소통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협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현장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총영사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호찌민 동포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당부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