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갑을(甲乙)’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분 구분이 생겨났습니다. ‘갑질’이라는 용어가 대변하듯, ‘갑’은 흔히 부도덕하고 권위적인 존재로 치부되곤 합니다. 과연 갑과 을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본래 갑을병정(甲乙丙丁)은 하늘의 이치와 날짜를 의미하는 십간(十干)에서 유래했습니다. 여기에 땅의 시간인 십이지(十二支)가 더해져 60갑자를 이룹니다. 즉, 본래는 순서를 나타내는 기호이자 조화로운 우주의 질서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기호는 승자와 패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가르는 서글픈 이분법의 잣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甲은 나쁜 건가요? 그래서 당신은 좋은 을乙이 되고 싶은가요?
아니지요.
누구나 ‘갑’이 되길 원하지요.
그렇다면 진정한 갑이란 누구인가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지요.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갑은 사회적 지위나 부의 축적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갑의 기본적 기준은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려한 권세를 누리는 대기업 임원이라도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면 그는 진정한 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반면, 규모는 작더라도 스스로 일과 휴식의 균형을 결정하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삶의 진정한 주인, 즉 ‘갑’입니다. 누구의 지배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꾸려가는 것, 그것이 바로 ‘갑’의 핵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상황을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결과를 올곧이 책임집니다. 결과가 나쁘다고 환경이나 타인의 탓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가 실패에서 성공의 길을 찾아냅니다.
반면, ‘을’은 자신의 삶을 환경의 산물이나 상황의 피해자로 규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는 흙수저로 태어났으니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없다고 믿으면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피하는 사람이 ‘을’ 의 특징입니다.
사르트르는 이를 자기 기만(Bad faith)이라 불렀습니다. 잘못된 믿음에 안주하며 모든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가끔 일부러 ‘을’ 을 자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고,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남이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게 편하다는 의존 철학에 빠져,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식당에서 모여 메뉴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작은 모임에서 방향으로 정하는 자리에서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남이 하는 것만 구경합니다. 이런 분들은 그렇게 사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지지 않고 논란에 빠지지 않고 아무 상처로 입지 않고 사는 현명한 처세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자신에게 의견조차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밀려드는 고립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앎에 대한 자세’가 갑과 을을 가르는 또 다른 기준이 됩니다. 아날로그 시대, 전 세계 동포 언론인이 인정한 최고의 교민잡지로 사랑받았던 <씬짜오 베트남> 역시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배움을 게을리한다면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채 ‘환경적 을’로 추락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씬짜오 베트남>은 결코 을의 자리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은 바로 이러한 탐구의 자세에서 축적됩니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자본을 쌓아 우리 교민들에게 더 유용하고 깊이 있는 가치를 전할 것입니다.
결국 ‘갑’으로 산다는 것은 내면의 통제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현재의 노력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응원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주체적으로 찾아가는 사람이 만드는 인생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자신의 삶의 ‘갑’으로 남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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