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그룹 천즈 회장 기소, 런던 부동산 2천억원 동결…시하누크빌 건물 10개 중 8~9개 중국인 소유, 3m 담장·철조망·CCTV로 감시


“20년 전에도 이곳은 카지노 도시였지만 그때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휴양지였습니다. 6~7년 전부터 갑자기 중국인 부호들이 시하누크빌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캄보디아 남부 해안도시 시하누크빌(Sihanoukville)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오창수(58) 한인회장은 14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함께 도심을 둘러보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인 대학생이 캄보디아 범죄조직에 고문당해 숨진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미국과 영국이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조직에 대해 21조원 상당의 자산을 압류하는 등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고 연합뉴스가 14일 보도했다.
수도 프놈펜(Phnom Penh)에서 200km 떨어진 시하누크빌은 택시로 3시간 넘게 걸리는 해안도시다. 고속도로 나들목에 들어서자 현지어인 크메르어와 함께 중국어가 적힌 안내 표지만 보이기 시작했다.
도심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긴 해변 주변에 늘어선 호텔과 음식점 대부분이 중국어로 쓴 대형 간판을 내걸고 영업 중이었다. 시하누크빌에 있는 건물은 10개 중 8~9개꼴로 중국 갑부들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회장은 “중국인들이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가량을 주고 캄보디아 시민권도 사들이고 있다”며 “대기자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장악한 해변 도시 곳곳에는 아파트나 리조트와 형태가 비슷한 고층 건물이 즐비했다. 대부분 주변에는 교도소 담장처럼 3~4m 높이의 돌담이 서 있었다.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돌담 위에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깨진 유리 조각도 박혀 있었다.
1층 외부 유리는 전부 쇠창살로 막혀 있었으며 건물 밖에서는 건장한 현지 보안 직원 여러 명이 삼엄한 눈빛으로 감시했다. 보안 직원들은 취재진 차량이 주변을 맴돌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계속 노려봤고, 누군가에게 보고하는 듯 연락하기도 했다.
오 회장은 이런 건물들이 모두 최근 한국인들이 납치돼 감금된 범죄 단지인 이른바 ‘웬치(园区)’라며 시하누크빌 전체가 ‘감옥 도시’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범죄 단지는 순한 맛, 중간 맛, 매운맛으로 표현할 수 있다”며 “한번 잡히면 못 나오는 매운맛 웬치는 진짜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여기 범죄 단지 대부분은 중국인 총책이 운영한다.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범죄 단지도 있지만 중국인 총책 밑에서 한국인 중간책이 일하는 곳이 많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14일 캄보디아 등지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며 전 세계 피해자들의 돈을 뜯어내고 인신매매한 노동자들을 고문하는 불법 스캠(사기)센터를 운영해온 조직을 제재했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은 ‘프린스 그룹(Prince Group)’과 그 회장인 천즈(Chen Zhi)다. 영국 정부 성명에 따르면 프린스 그룹은 캄보디아 등지에서 광범위한 사업을 하는 업체다. 천즈와 이 업체는 카지노와 스캠 센터로 사용되는 단지를 건설하고 대리인을 통해 운영에 관여한다.
일간 가디언(The Guardian)에 따르면 천즈는 1987년 중국에서 태어났고 빠르게 부를 축적하며 캄보디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키프로스(Cyprus)와 바누아투(Vanuatu) 시민권을 사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재무부는 프린스 그룹을 ‘초국가적 범죄조직’으로 규정하고 천즈 회장을 비롯한 이 그룹과 관련해 146건의 제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미 법무부는 천즈 회장을 온라인 금융 사기와 자금 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피고인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간 파악된 범죄 사실만으로 재판에 회부한 것으로, 유죄 확정 시 최대 40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법무부는 천즈 회장이 보유해온 약 150억 달러(약 21조원) 상당의 비트코인 12만7,271개를 몰수하기 위한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현재 미국 정부가 이 비트코인을 압류 중인데, 이는 법무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압류라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프린스 그룹과 연계된 레저·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진베이 그룹(Jinbei Group)’, 진베이·프린스 그룹과 연계된 암호화폐 플랫폼 ‘바이엑스 거래소(BYDFi Exchange)’도 제재 대상이다.
영국 정부는 ‘골든 포천 리조트 월드(Golden Fortune Resorts World)’도 제재 대상으로 올리면서 프린스 그룹 자회사가 건설하고 ‘기술 단지’로 위장한 프놈펜 외곽의 대규모 스캠 단지의 배후 회사라고 설명했다.
천즈를 비롯한 이들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에 사업체를 두고 런던 부동산 시장에 투자해 왔다. 여기에는 런던의 1,200만 파운드(약 230억원)짜리 저택과 1억 파운드(1,900억원)짜리 사무용 건물, 아파트 17채가 포함된다.
제재로 이들 사업체와 부동산은 즉각 동결되며 천즈 등은 영국 금융체계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베트 쿠퍼(Yvette Cooper) 외무장관은 “이런 끔찍한 스캠 센터의 배후에 있는 자들은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망치면서 그 돈을 묻어두기 위해 런던의 주택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프린스 그룹에 대한 제재와 함께 캄보디아 소재 금융서비스 대기업 후이원(Huione) 그룹을 미국 금융체계에서 차단하는 조치도 확정했다.
후이원 그룹은 악의적인 사이버 행위자들이 사기·탈취를 통해 확보한 가상화폐 자금을 수년간 세탁해왔으며 북한이 탈취한 가상화폐 자금을 세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후이원 그룹은 2011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최소 40억 달러(5조7,000억원)의 불법 자금을 세탁했는데 이 가운데 3,700만 달러는 북한이 해킹한 가상화폐라고 재무부는 설명했다.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이제 후이원 그룹 관련 거래가 금지된다.
한편 캄보디아에서 120억원대 ‘로맨스 스캠’ 사기 행각을 벌인 한국인 부부의 국내 송환이 난항을 겪고 있다.
14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캄보디아에서 체포·구금돼 국내 송환 절차가 진행 중이던 30대 A씨 부부가 또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부부는 올해 2월 초 현지에서 체포된 후 지난 6월 초 한 차례 석방됐다가 우리나라 법무부가 지난 7월 말 수사 인력을 보내 현지 경찰과 함께 다시 체포해 구금했으나 이후 다시 풀려났다.
송환 지연 배경에는 캄보디아 당국의 ‘맞교환’ 요구가 있다. A씨 부부와 한국에 있는 캄보디아 반정부 인사를 서로 송환하자는 것이다.
국내 체류 중인 해당 반정부 인사는 ‘부트 비차이(Buth Vichai)’라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자국 정치 체제를 비판하는 콘텐츠를 올리는 인플루언서로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 신청을 한 상태다.
법적으로 난민 신청자는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체류 자격이 보장되는 데다가 한국과 캄보디아 간에는 ‘정치범’을 인도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캄보디아 당국의 요구를 들어주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 부부의 로맨스 스캠 사건을 계속 수사해 범죄 혐의자 총 83명을 특정하고 54명을 검거했다. 이 중 34명은 구속기소 돼 일부는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A씨 부부 일당은 딥페이크로 가상 인물을 만들어 채팅 앱을 통해 이성에게 접근, 연인 사이가 된 것처럼 신뢰를 쌓으며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캄보디아에 본거지를 두고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00여 명을 상대로 120억원을 뜯어냈다.
Vnexpress 202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