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중종의 말로와, 문정왕후

지난 이야기 500년 전 조선은 아주 뛰어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정치가 혹은 학자들이 우수한 제도를 만들었으나 소인배 성리학자들은 현실보다 이념에 초점을 두었고 민생보다 기득권에 집착한 나머지 세계 흐름에서 낙후되어 갑니다. 조선이 망할 때까지 성리학을 고집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중종의 간접정치와 김안로 앞서 설명드린 것 처럼 중종은 신하를 통한 간접 정치를 많이 합니다. 즉위 초 반정 3대장 중 박원종을 선택하였고 조광조를 거쳐 기묘사화 3인방 중 권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중종 치세의 마지막 권력가 김안로가 나타납니다. 이렇듯 중종은 4명의 신하를 통하여 40년 치세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권력을 위임한 후 의심이 들면 제거합니다. 박원종과 권곤은 노환으로 죽지만 조광조와 김안로는 중종의 의심과 분노 때문에 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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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조선의 개혁

지난 이야기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꿈꾸며 성리학 이념에 충실한 유교국가를 건설 하고자 했던 조광조는 자신의 이상향을 실현 시키고자 무리한 개혁을 시도하다 제거됩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 수십명이 희생 되었으나 그 후로도 조광조 인맥들을 제거합니다. 이렇듯 기묘사화 후 오랫동안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었건만 사림파는 더 많은 학자들은 배출합니다. 조광조는 죽었으나 조선은 성리학 국가로의 뿌리를 내리는 시대가 시작됩니다. 조광조의 성리학 연구는 주변 사림파 선비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화담 서경덕, 남명 조식, 퇴계 이황, 기대승 등 뛰어난 후배들이 조광조를 흠모하고 그의 이론과 성리학을 연구하여 16세기 말 조선은 성리학 국가로.. 원상 복구된 조광조의 개혁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의 정책들이 폐기 되는 사례가 많듯이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죽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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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의 초고속 질주와 몰락

지난 이야기 중종반정 5년 후 박원종을 필두로 반정 3대장이 연달아 사망합니다. 중종은 왕권을 회복하고 반정 3대장의 빈자리를 조광조가 채웁니다. 뛰어난 성리학자인 조광조는 성리학이 지배하는 조선을 계획 합니다. 그러나 부국강병 민생안정 등 정치의 본분을 망각한채 유교 법도만 강조 합니다. 또한 조광조의 강직한 성품에 중종은 염증을 느낍니다. 사림들을 동원해서 임금을 압박하는 조광조를 보고 중종은 누가 임금이고 누가 신하인가 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마침내 임금과 신하는 크게 충돌하고 기묘사화를 잉태합니다. — 옳다고 생각하는것을 밀어 붙이는 원칙주의자 조광조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대가 누구이든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밀어 붙이는 성격입니다. 또한 같은 공무원들 중 조광조 자신이 소인이라 생각한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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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이후 사대부의 보신주의와 조광조의 등장

  지난 이야기 폭군 연산을 몰아내고 등극한 중종은 117명 반정공신을 책봉 합니다. 공신 80%가 가짜 말이 나올 정도로 엉터리 공신책봉은 대간들의 공격대상이 됩니다. 박원종 등 반정 3대장은 대간을 무마하려고 유자광 혼자 유배 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러나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잠복기를 거쳐 다시 수면위로 부상합니다. — 유유부단, 간접통치의 왕 중종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정통성도 미약하지만 중종의 성격도 과단성이 부족해서 측근을 통한 간접적인 통치를 하는 군왕입니다. 신하들에 의한 조선의 첫번째 반정이 성공하자 제2 제3의 반정을 경계하는데 이는 임금과 반정 주역들의 공통된 걱정입니다. 반정 다음해에 이과의 역모사건을 필두로 반정 3대장의 권력 독식에 불만을 가진 신복의는 반정 3대장 제거를 시도했으나 거사 전에 발각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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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과 박원종 그리고 공신

지난 이야기 연산군은 어머니 복수를 위해 갑자사화를 일으킨 정황은 어느정도 사실이지만 군주의 권력을 반석위에 올려 놓기위해 사건을 확대 했습니다. 갑자사화 후 강화된 군주의 권력은 자신의 사치와 쾌락을 위해 사용했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은 조선건국 후 가장 고통받는 시절을 보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선 최초로 임금이 쫓겨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른바 “중종반정”입니다. 반정의 배경과 기회주의자들 중종반정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 조선왕조 중종실록 박원종 졸기 내용을 살펴보면, “연산군의 백모이면서 박원종의 누나인 월산대군 부인이 연산군의 아기를 임신하자 부끄러워 자결을 했고 이에 격분한 박원종은 죽은 누이의 복수를 위해 반정을 일으켰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믿기 힘든 기록 입니다. 중종반정 당시 월산대군 부인의 나이는 50대 초반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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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피바람, 갑자사화

지난 이야기 평범한 군주의 길을 가던 연산군은 대간 권력과 충돌을 합니다. 처음에는 연산군이 대간들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훈구파 공신들을 이용합니다. 무오사화 이후 지나친 왕권강화 정책을 펴는 연산군에게 불안감을 느낀 신하들은 공신과 대간들이 연합하게 됩니다. 이에 연산군은 훈구파 공신들과 대간 모두에게 철퇴를 내려 치는데 이른바 갑자사화의 발생입니다. — 갑자사화 발생배경 지난 시간에 설명한 것과 같이 아버지의 두 후궁 엄숙의 정소용을 몽둥이로 때려 죽이면서 벌어진 사건이 갑자사화 입니다. 아버지의 후궁 둘을 죽인 후 연산군은 엄숙의와 정소용의 아들 둘을 끌고 할머니 인수대비 처소로 갑니다. 그리고 “할머니 왜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라고 외칩니다. 노환을 앓고 있던 인수대비는 충격으로 한달 후 운명 합니다. 이제 무자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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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본질

유자광을 몰락시킨 임사홍 한풀이를 통하여 조선에 타격을 주다 지난 이야기 연산군은 의도적으로 무오사화를 만들었고 대간 권력을 약화 시켰습니다. 지나친 대간권력을 억제하고 균형 잡힌 권력을 활용하여 정치를 했으면 진일보한 조선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에 재갈을 물린 연산군은 독재권력을 추구합니다. — 간신의 대명사 임사홍 연산군은 서자 출신 유자광을 이용하여 무오사화를 일으켰습니다. 무오사화의 결과 삼사 대간들의 권력은 위축 되었으나 만족하지 못 합니다. 무오사화 후 국왕, 대신, 삼사는 권력의 균형이 이루어져 현재의 삼권분립을 연상 시킵니다. 무오사화 후 올바른 정치로 갔으면 조선의 정치문화는 더욱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한 연산군은 독재권력 구축을 위해 또다른 사화를 일으키는데 이른바 갑자사화 입니다. 이번에는 간신의 대명사 임사홍이 주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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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과 신분제 그리고 무오사화

지난 이야기 연산군은 대간들의 비판을 싫어하여 언론자유를 억압하고 대간들 길들이기 하느라 유자광을 이용하여 무오사화를 일으켰습니다. 정치 감각이 뛰어난 연산군은 대간권력을 축소하는 도구로 무오사화를 일으킨 듯 합니다. 유자광은 누구인가? 즉위 후 4년동안 대간들과 대립한 연산군은 김일손의 사초 사건이 일어나자 왕권을 강화할 좋은 기회라고 여긴 듯 합니다. 유자광의 약점을 파악한 연산군은 대간들의 숙청을 위해 유자광을 이용합니다. 유자광은 무오사화의 주역이다 라고 평하는 학자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필자 생각은 연산군의 각본에 의해 유자광이 춤춘 사건이 무오사화 입니다. 왜냐하면 무오사화 후 유자광은 빈손이고 연산군은 자신이 원하던 왕권 강화를 구축합니다. 그러면 소득없는 무오사화를 일으킨 유자광에 대해 살펴봅시다. 유자광은 대부분의 역사기록에 간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남을 음해하고 고변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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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사회의 명암 – 4대 사화

지난 이야기 500년 전 중세사회에 다른 국가들이 가질 수 없었던 언론자유를 가졌던 조선은 분명 선진화된 국가 였습니다. 또한 뛰어난 기록문화의 영향으로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 기록하여 자세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의 이웃나라 지식인들은 조선의 언론자유를 부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생겨서 선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른바 4대사화 발생입니다. — 대간과 언관 대신들의 비리나 부패에 대하여 비판하고 탄핵할 권한을 부여받은 관리를 대간 혹은 언관이라 부릅니다. 대간들은 훈구파 대신들의 탄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왕에게도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을 때가 많았습니다. 성종때 대간들의 언론 자유를 제도화 했는데 이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새로운 제도가 연착륙 하기도 전에 국왕에 대한 비판과 대간들에 대한 탄핵이 심했습니다.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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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제도와 쇠퇴의 시작

지난 이야기 조선건국 후 100년 동안 조선은 언론자유, 권력견제 등 중세시대 제도 치고는 비교적 선진화된 제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생활도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갈수록 백성들은 고달픈 삶을 삽니다. 권력자의 탐욕이 백성들의 몫을 빼앗고 벼슬아치와 양반들을 위한 사회로 변해가는 조선입니다. 세계적 수준의 기록문화 역사기록은 세계 수준급의 기록을 자랑합니다. 그중에서도 조선왕조 실록은 독보적인 기록 문화를 자랑합니다. 중앙정부에서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다 보니 잘한 것과 잘못한 것 전부 여과없이 기록됩니다. 이렇게 상세한 역사기록을 근거로 일제는 우리역사의 잘못된 점, 어두운 면을 강조하여 우리민족에게 열등감을 심는데 주력 했습니다. 이렇듯 잘한 점과 못한 점을 상세하게 기록한 역사는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잘못된 사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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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3국 전통 정치제도를 비교하다

지난 이야기 성종은 사림파를 등용하여 훈구파 대신들의 전횡을 견제하는데 신하가 신하를 견제하는 “이신제신”입니다. 성종은 이신제신을 위해 언론의 자유를 입법화 하는데 500년 전 중세사회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새로운 제도에 의해 사림파들은 100년 동안의 은둔생활을 접고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와 100년 동안 치열한 정치투쟁을 합니다. — 중세시대 선진화된 제도를 보유했던 조선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올바른 역사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시각을 버리고 과거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조선의 붕당정치나 당쟁을 늘 나쁘게 본 것은 현재의 시각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그 당시에도 “민심이 천심” 이라는 도덕적 기준이 있었지만 현대처럼 일반인의 저항이나 견제가 힘든 시절이라 정치인 스스로 바른 정치를 해야 하는데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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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과 백성의 삶

지난 이야기 조선건국 당시 시행된 과전법은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소하는 백성을 위한 법입니다. 조선건국 후 80년간 백성들의 삶이 고려 왕조 보다는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조선건국은 권력을 위한 쿠데타, 또한 백성을 위한 쿠데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유정난으로 집권한 공신들은 오로지 권력을 위한 쿠데타를 일으켜 백성들의 삶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훈구파의 등장입니다. 자영농 체제의 조선 신진사대부가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65년 지난 1453년 계유정난으로 어린 단종은 왕권을 상실하고 수양대군이 사실상 국왕 노릇을 합니다. 계유정난부터 세조와 아들 예종 치세까지 16년의 짧은 기간에 무려 네 번의 공신책봉이 있었는데 이전의 공신들과 다른 성향을 나타냅니다. 또한 성종 즉위 2년에 국왕의 의지와 상관없이 “좌리공신” 이라는 9번째 공신책봉을 하는데 15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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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의 몰락

공신들은 수백만평의 토지와 수백 명의 노비를 소유하고 세금면제 병역면제, 게다가 왕권을 능가하는 권력까지 가졌으니 가히 조선은 공신들의 나라입니다. 지난 이야기 조선건국 초 혼란기에 있었던 네 번의 공신책봉은 훈구파 탄생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이 무너질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고 태종의 강력한 왕권강화 정책으로 공신들의 전횡도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태평가를 부른 세종 문종 치세를 지나 세조때 부터는 본격적인 공신의 세상이 됩니다. 성종때 등장한 사림파는 부패해진 훈구파와 치열한 권력투쟁을 예고합니다. 당파싸움의 휴식기와 한명회 고려 말부터 조선건국 초기까지 치열한 세 번의 당파싸움 끝에 정국은 잠시 휴식기를 가집니다. 태종의 잔인한 공신숙청과 외척제거를 경험한 대신들은 경제적 부를 누리며 조용히 삽니다. 우리는 세종대왕의 치세를 태평세대라 부르는데 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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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의 몰락

신하들의 권력을 극도로 제한하고 당파싸움의 근원을 제거한 태종은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조선건국 과정에서 4번의 공신 책봉이 새로운 특권층을 만들었다. — 지난 이야기 고려말 30년 동안 여당인 권문세족과 야당인 신진사대부가 치열한 권력투쟁을 한 결과 신진사대부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토지개혁(과전법) 문제로 신진사대부도 곧 분열되어 온건파와 강경파로 갈라져서 대립하다 강경파가 승리하고 조선을 건국합니다. 조선건국 후 정국을 주도하던 정도전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파들은 1차 왕자의 난으로 제거됩니다. 이렇게 조선 초 정치권 변동을 겪고 권력투쟁은 잠시 휴식기를 가집니다. — 신진사대부 혁명파는 고려말 권문세족들과 신진사대부 온건파를 차례대로 제거하고 조선을 건국합니다. 조선건국 후 혁명파 주류세력의 수장 정도전은 조선의 토대를 마련하고 백성과 국가를 위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던 중 기득권층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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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 파벌싸움

지난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당파싸움에서 패배한 권문세족은 일부만 살아남고 대부분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두번째 당파싸움에서 패배한 신진사대부 온건파는 낙향하여 100년 동안 성리학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여 다시 권력에 도전합니다. 이른바 사림파의 등장입니다. — 1,392년 신진사대부 강경파는 대비 안씨를 (공민왕의 후비 안씨) 겁박하여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이성계가 고려 제35대 국왕으로 등극합니다. 이성계는 민심을 의식하여 궁궐에서 생활하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 합니다. 일국의 국왕이 출 퇴근한 사례는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등극 당시에 “모든 법과 제도는 고려의 것에 따른다”라고 선포하여 자신은 역성혁명을 한 것이 아니라 천명에 의해 선양을 받아 고려를 통치하는 것으로 포장을 합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즉위 한달 후 조선건국을 선포합니다. 고려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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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의 몰락

지난 이야기 정도전은 23세에 관직에 진출하여 9년간 개혁정책을 경험합니다. 다음 9년간은 유배생활을 하며 백성들의 참상을 경험합니다. 이성계를 만나고 9년간은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고 조선을 건국합니다. 조선 건국 후 500년 사직의 기틀을 세우고 개국 6년 후 이방원에게 살해 당합니다. — 최초의 당파싸움 권문세족 VS 신진사대부 우리나라 최초의 당파싸움은 고려말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두 세력의 충돌입니다. 물론 고려말 이전에도 권력투쟁이 있었지만 이념 혹은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여 집단 투쟁한 것은 고려말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두 세력이 처음입니다. 우리는 말로 하는 싸움을 당파 싸움이라 표현합니다. 무력에 의한 무신 정치는 당파싸움이 없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무사정치를 했고 독재정치를 했으니 당연히 당파싸움이 없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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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개혁가 ‘정도전’

    지난 이야기 고려말 상황은 무신정권과 원간섭기 180년 세월이 빚어낸 기득권 층의 횡포가 극심하던 시절이었고 게다가 자주독립이 요구되는 시절이었죠. 의지가 강한 공민왕은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으나 내우외환이 겹쳐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소장파 성리학자들에게 고려개혁의 과제가 넘어갑니다.   소장파 수재, 가시밭 길로 정치인생 시작 개혁의 화신 정도전은 필자가 열심히 자료를 찾은 조선시대 인물 중 한명입니다. 그의 출생과 현실개혁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인물, 정도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암울했던 고려말 1342년 충북 단양 도담삼봉 외가에서 정도전은 출생합니다. 정도전의 집안은 경상도 봉화 지역의 호장출신으로 지역의 유지입니다. 정도전은 공민왕 9년 1360년 18세의 나이로 소년 급제를 할 정도로 수재 였습니다. 급제 후 공민왕의 총애를 받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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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개혁

지난 이야기 고려말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된 이유는 피폐해진 국가 재정과 굶주린 백성들 때문입니다. 왕실과 귀족들의 사치로 국고는 텅텅 비어 있고 백성들은 하루 종일 일해도 배고픔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새로운 학문 성리학이 배출한 신진사대부는 기득권 세력인 권문세족들과 정면 승부를 펼칩니다. 개혁의 선두주자 정도전은 위화도 회군으로 권문세족을 일거에 소탕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갑니다.   충선왕의 시도 무신정권 100년을 거친 후 몽고 간섭기 80년 동안 원나라와 결탁한 부원배들의 횡포에 전답을 빼앗기고 고통받는 고려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을 원했고 이러한 사태를 직시하고 개혁을 추진한 고려의 임금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역사 최초의 혼혈 임금 충선왕은 아버지 충렬왕과 어머니 제국대장공주 (원세조 쿠빌라이의 후궁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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