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NATO) 방위비 분담금 증액 거부 및 이란 문제 비협조를 이유로 스페인과의 모든 무역 관계 단절을 지시하면서, 백악관이 동맹국을 향해 동원할 수 있는 법적 제재 수단과 그 파급력에 국제 경제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0일 워싱턴 외교가 및 국제 무역 통상 당국 종합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재무장관에게 스페인과의 전면적인 무역 절교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재무부와 상무부, 무역대표부(USTR)는 스페인산 수입 금지 대상 품목 리스트 작성에 착수했다. 전문 법조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면 또는 부분적 무역 봉쇄를 단행하기 위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핵심 카드로 꺼내 들 것으로 내다봤다.
IEEPA는 미국 대통령이 국가 안보나 외교 정책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상황에 대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해당국과의 금융 거래 및 교역을 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한 강력한 법적 권한이다. 과거 대(對)러시아, 북한, 이란 제재에 활용된 바 있다. 비록 지난 2월 미 연방대법원이 IEEPA를 근거로 한 일방적 ‘관세 부과’에는 제동을 걸었으나, 특정 국가와의 무역을 전면 금지하거나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는 여전히 합법적이라는 것이 통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미국 기업들이 스페인 항공기 부품 제조업체 ITP 에어로 등에서 수입하는 항공기 엔진 터빈 부품처럼 경제적 파급력이 큰 필수재의 경우, 과거 러시아 제재 당시 우라늄이나 팔라듐을 제외했던 것처럼 선별적 면제 조치를 적용할 가능성도 크다.
이 외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불공정 무역 행위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역법 301조(통상법 301조)나, 국가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무역확대법 232조 등 다각도의 무역 장벽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1기 행정부 시절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올리브 업계의 요청에 따라 스페인산 블랙 올리브에 3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전례가 있다. 다만 스페인의 무역 정책 권한이 유럽연합(EU) 공동 통상 조약망에 묶여 있는 만큼, 미국이 스페인을 독자 제재할 경우 EU 전체와의 전면적인 무역 전쟁으로 번질 위험 지표도 감지된다.
양국 간 교역 규모를 고려할 때 실제 제재가 발효될 경우 미국 역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양국의 상품 및 서비스·관광 총교역액은 745억 달러(상품 479억 달러)에 달하며, 스페인은 미국의 23위 교역 상대국이다. 특히 미국은 지난해 스페인을 상대로 52억 5,000만 달러의 무역 수지 흑자를 기록할 만큼 수출 효자 시장이다. 미국은 스페인에 의약품, 원유, 민간 항공기, 옥수수 등을 주로 수출하고 있으며, 스페인으로부터는 의약품과 변압기, D/V 및 올리브유 등을 주로 수입한다. 투자 부문에서도 스페인 기업들이 미국에 1,11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이 스페인의 최대 투자국인 반면, 미국 역시 스페인 현지에 1,324억 달러를 투자해 약 2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어 자산 동결 시 양국 기업 모두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아울러 미국인들의 스페인 관광 제한 여부도 쟁점이다. 지난해에만 445만 명의 미국인이 스페인을 방문해 약 61억 5,000만 유로를 지출하는 등 미국 관광객은 스페인 내 4대 관광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에도 스페인이 나토 분담금을 GDP의 5% 수준으로 올리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관세 폭탄을 시사한 바 있으며, 올해 3월에는 전면적인 수입 금지 조사를 명령하기도 했다. 국제 경제 전문가들은 공언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구체적인 금지 품목 리스트 작성 등 실효적 압박 정국이 전개되는 만큼, 실제 발효 여부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과 나토 동맹 체제 전체가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