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엔 없었던 여름 보양식, 현대엔 펫푸드까지 등장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보양식 업계가 분주하다. 삼계탕 전문점마다 긴 줄이 늘어서고, 장어구이집에는 예약 문의가 쇄도한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다른 풍경이 눈에 띈다. 바로 ‘반려동물용 보양식’의 등장이다.
한 업체가 출시한 반려견용 영양 오리탕의 상품설명서를 보자. “신선한 국산 오리를 장시간 우려낸 육수에 부드러운 오리안심, 인삼, 고구마로 맛과 영양을 담은 반려견용 보양식입니다. 닭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강아지가 섭취하기 좋으며 반려견 피모건강과 원기회복에 도움을 주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것이 특징입니다.”
풀무원식품의 반려견용 보양식 안내문도 흥미롭다. “동물복지 닭고기, 황태, 두부 등 엄선한 건강 재료에 신선한 채소를 듬뿍 넣어 입맛 없는 여름철 반려견의 원기를 회복시켜 줄 제품입니다. 여름철 더위로 입맛이 떨어진 반려견, 출산이나 수술을 마친 반려견, 영양 보충이 필요한 반려견, 입맛이 까다로운 반려견도 부담 없이 섭취할 수 있습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복날의 대표 보양식이던 보신탕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과거에는 개를 잡아먹던 시대였는데, 이제는 개를 위한 보양식을 만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음식 트렌드의 변화를 넘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관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엔 보양식이 없었다?
흥미롭게도 전문가들은 조선시대에는 여름철 특별한 보양식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상식을 뒤엎는 충격적인 주장이다.
홍석모(1781-1850)의 [동국세시기]에 개장국 끓이는 법과 “여름철에 먹으면 시원하고 여름나기 좋다”는 문구가 나오긴 하지만, 당시 개고기는 별식이 아닌 상식이었다는 것이다. 즉, 여름철 특별히 보양을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평소에도 먹던 일상 음식이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여름철 보양을 위한 특별한 음식을 먹는 일이 없었다”는 한 연구자의 분석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보양식 문화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민어탕이 반가의 보양식이라는 말도 근거가 없다. 교산 허균(1569-1618)이 [성소부부고-도문대작] 에서 “민어 등은 서해안 전역에서 두루 많이 잡히기 때문에 별도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민어는 여름철에 많이 잡혔을 뿐 특별한 보양식은 아니었다. 여름철에 민어를 먹는 것은 단순히 민어의 제철이 여름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진짜 여름나기의 비밀: 얼음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났을까? 답은 뜨거운 보양식이 아니라 차가운 얼음에 있었다. 조선시대 여름나기의 필수 재료는 얼음이었다. 얼음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었다. 하나는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동빙고와 서빙고가 있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동빙고동’은 동빙고가 있던 자리다. 동빙고는 정해진 궁중의 제사 등에 사용할 얼음을 보관하는 곳이었고, 서빙고는 국가와 궁중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얼음을 보관했다. 규모는 서빙고가 동빙고에 비해 8배 정도 컸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8년(1426) 11월 3일 기록에 따르면, 세종이 “얼음을 저장하고 얼음을 내는 것은 비단 상제(喪祭)를 위할 뿐 아니라, 실상 음양(陰陽)의 부조화를 고르게 하는 데도 관계가 있는 것이니 가벼이 하지 말라”고 말했다.얼음은 빙부들이 한겨울 한강변에서 채취했다. 겨울과 얼음은 모두 ‘음(陰)’이다. 이듬해 봄, 얼음 창고를 열고 얼음을 꺼낸다. 더운 여름은 ‘양(陽)’이다. 여름에 얼음을 사용하는 것은 세종대왕의 표현대로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름철에는 국가에서 벼슬아치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에게 직급별로 얼음을 나눠주던 반빙(頒氷)의 관습도 있었다. 옥살이를 하는 이들에게까지 얼음을 나눠주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동국이상국집] 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해진다. “밤중에 술 깨어 찬 얼음 깨무니 / 온갖 맛 좋은 음식 여기에 당하랴 / 이런 맛 한평생 나 혼자만 아는가 했더니 / 늙은 중이 나 먼저 일찍이도 알았구나.”조선왕조의 진짜 보양식들
조선시대에 여름철 특별한 보양식은 없었지만, 사계절 내내 먹던 진짜 보양식들은 존재했다.
이들은 현재의 보양식과는 전혀 다른 철학과 조리법을 가지고 있었다.
타락죽: 임금만이 맛볼 수 있었던 최고급 보양식
대표적인 것이 ‘타락죽’이다. 타락은 우유를 뜻하는 말로, 찹쌀을 넣고 끓인 우유죽이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임금이 병에 걸렸을 때 내의원 약국에서 타락죽을 조제해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내의원에서 타락죽을 만들어 원로 신하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는 타락죽이 단순한 음식이 아닌 귀한 보너스처럼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타락죽이 얼마나 귀한 음식이었는지는 중국에서의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자금성에서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대기하던 조선 사신 김창업이 타락차를 마신 사건이다. 다른 사신들이 낯선 타락차를 마시려 하지 않았으나 김창업은 이미 타락차의 맛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이는 타락죽이 조선의 고위 관리들조차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이었음을 방증한다. ‘타락’이라는 용어 자체도 흥미로운 어원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 음역으로 보이며, 우유를 뜻하는 돌궐어 ‘토락(Torak)’에서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려시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돌궐족이 한국에 들어와 목축을 담당했으며, 이로 인해 우유를 타락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죽 요리들: 조선시대 보양식의 보고
조선시대 문헌들에는 놀랍도록 다양한 죽 요리들이 보양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증보산림경제[에 수록된 보양 죽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유죽: 물 2홉, 심말(쌀가루) 2홉을 섞어 끓이다가 우유 1되를 넣고 염탕(소금을 넣어서 끓인 국)으로 간을 맞춘다.
2. 잣죽: 흰쌀과 실백으로 끓인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전해 오고 있다.
3. 호박죽: 어린 호박·햅쌀·돼지고기 또는 닭고기를 함께 넣어 끓인 다음에 굴젓국물로 간을 맞춘다.
4. 우양죽: 소의 양을 곤 국물에 멥쌀을 넣어 끓인다.
5. 붕어죽: 붕어·멥쌀·후추·고추·천초·생강류 등의 향신료를 많이 넣고 끓인다.
6. 생굴죽: 생굴을 기름에 볶은 다음에 물을 붓고 끓이다가 쌀을 넣고 무르게 끓었을 때에 달걀을 푼다.
7. 율무가루죽: 율무가루에 쌀가루를 3분의 1의 비율로 넣고 끓인 뒤에 꿀을 탄다.
8. 연뿌리가루죽: 연뿌리가루에 녹두녹말이나 칡뿌리녹말을 섞어서 끓인다.
9. 마죽: 마의 앙금을 만들어 녹두녹말이나 칡녹말을 섞어서 끓인다.
10. 가시연밥죽: 가시연밥의 열매 속의 씨를 쪄 말려 가루 낸 것에 쌀과 고기류를 넣고 끓인다.
11. 전복·홍합·쇠고기죽: 전복·홍합·쇠고기 등을 각각 가늘게 저미고 쌀과 함께 쑨다.
12. 양원죽: 찹쌀·멥쌀을 각 1되씩을 노랗게 볶고 다시 찹쌀·멥쌀 1되씩을 섞어 가루로 빻아서 포대에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에 조금씩 끓인다. 꿀과 함께 대접하면 보양식으로서의 효과가 크다고 한다.
13. 녹두죽: 녹두녹말을 말렸다가 오미자즙과 함께 끓이고 꿀을 탄다.
특별한 보양식들: 귀족들만의 별미
[음식지미방] 에는 별탕(자라탕)이 소개되어 있다. 자라를 삶아서 그 살을 찢어 오미자초·생강·천초·후추·소금에 무쳤다가 맛이 든 다음에 맑은 장국에 끓인 것이다. 이 별탕은 현재까지도 보신용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보양식으로 우족(소발)을 무르게 고아 식혀두었다가 필요할 때에 강정 크기만큼 썰어서 먹기도 했다. 이것을 족탕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족편법에 해당한다. 먹을 때에는 꿩고기국물에 표고·무를 썰어 넣고 간을 한 다음에 밀가루를 풀어 걸쭉한 즙액을 만들어 여기에 족편을 넣어 먹었다.
암탉 2마리에 말린 대구 3마리를 함께 섞어서 뼈가 녹도록 고아 그 국물을 식혀 묵처럼 굳게 한 다음에 썰어서 초간장에 찍어 먹는 보양식도 있었다.
개장의 복잡한 조리법
보양식으로서 개장의 역사도 꽤 오래되었다. 그 제조법은 현재의 보신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개 1마리에 참기름 5홉, 또는 참기름 1종지와 참깨 1되, 후추·천초 등 향신료를 많이 넣어 조미한 것을 솥 안에 넣는다. 물을 조금 부은 다음에 솥뚜껑을 뒤집어 덮은 채로 익힌다.
솥뚜껑 위에 찬물을 담고 자주 갈아 주면서 고기가 연해질 때까지 익힌다. 개고기와 조미료를 항아리에 넣어 봉해서 중탕으로 익히는 방법도 있었다. 보신용 개장을 만들려면 5일쯤 전에 닭 1마리를 먹였다가 잡은 개를 썼다고 한다. 보신용 개로는 누런 개가 좋다고 추천되어 왔다.
웅장(곰발) 요리도 복잡했다. 곰의 다리를 돌회(석회)를 섞어 끓인 물에 담가 소금에 절였다가 물에 오래 삶아서 무르게 익혀 만들었다. 발가락 사이를 칼로 째고 기름장에 양념하여 굽기도 했다. 애저찜(새끼돼지찜)도 보신용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전라남도 광주의 명물요리로 전래되고 있다. 생후 6, 7개월도 안 된 새끼돼지의 배 안에(내장을 빼고) 꿩·닭·두부·무 등을 파·마늘·후추·기름·장으로 볶은 것을 채우고 쪄 익혔다.
근현대 보양식의 등장과 변화
현재 보양식의 절대강자인 삼계탕도 1960년대에야 등장한 비교적 새로운 음식이다. 냉장 유통이 필수인 수삼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불가능했던 요리였다. 조선시대의 삼은 원래 산삼이었는데 영조, 정조 시대를 지나면서 가삼(인공재배 인삼)의 양식 재배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인삼이 비교적 흔해졌지만 국가는 인삼과 홍삼을 엄격히 관리했다.
조선시대 닭요리는 물로 찐 수증계, 연계 백숙, 닭고기가 들어간 연포탕 등이 있었다. ‘영계백숙’은 없었다. ‘영계’는 ‘YOUNG’과 ‘鷄’의 합성어로 잘못된 표현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영계(英鷄)가 있긴 하지만, 이는 석영 먹여 기른 닭이라는 뜻이며, 이 닭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영계가 낳은 달걀이 효험이 있다”는 중국 [본초강목]의 기록을 옮긴 것일 뿐이었다.
정희정 한국미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닭을 이용한 음식은 세계 보편적이지만, 국물 음식에 닭의 형태를 유지하고 인삼을 넣은 삼계탕은 한국에서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삼계탕의 독특함은 닭의 형태를 유지한 점에 있다.
“닭을 통째로 조리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음식”이며 “손질이 번거롭고,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도 모양과 맛, 효능을 위해 선호했던 방식”이라는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보신탕이 뒷골목으로 물러나면서 삼계탕이 보양식의 지존 자리를 차지했다. 동물 보호 의식의 확산과 국제적 이미지를 의식한 결과였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복날 보양식의 대표음식은 보신탕이었고, 개장국이란 이름으로 오랜 역사 동안 보양식 넘버원으로 군림해 왔던 사실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곰탕과 설렁탕: 서민들의 보양식
삼계탕이 계절적 보양식이라면, 곰탕과 설렁탕은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서민들의 보양식이었다. 소의 뼈와 고기를 고아 우려낸 하얀 국물을 바탕으로 만드는 설렁탕과 곰탕은 고기와 갖가지 채소, 양념 등으로 맛을 내어 기력을 돋우는데 최고였다. 둘의 차이는 설렁탕은 사골 위주로 끓이기 때문에 국물이 더 탁하고 하얗지만 곰탕은 고기 위주로 국물을 내어 더 맑다는 점이다. 물론 둘이 혼용되는 경우도 많으며 거의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렁탕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됐다는 설에 따르면, 몽골의 슈루라는 음식이 고려에 들어온 몽골군에 의해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선농단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선농탕이 기원이었다는 설도 있다.
설렁탕과 곰탕은 짧은 조리시간과 저렴한 가격 등으로 인해 이미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서민들도 애용하는 음식이 되었다. 현진건의 유명한 작품인 ‘운수 좋은 날’에서도 하층민인 김첨지가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 오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설렁탕이 서민들도 부담 없이 먹은 음식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역별로도 다양한 특색이 있는 곰탕들이 있다. 나주곰탕, 황해도 해주곰탕, 대구 현풍읍의 현풍곰탕이 대표적이다. 특히 전라남도 나주곰탕은 나주의 5일장에서 상인들과 서민을 위한 요리로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오랫동안 끓인 국물과 한번 끓인 소뼈에 다시 고아 낸 국물을 섞어 더 맑고 진하게 만들어 맛이 좋다고 한다.
농경시대의 산물, 보양식 문화
보양식 문화는 본질적으로 농경시대의 산물이다. 육체노동이 중심이던 가난한 시대에 특정 시기 영양보충을 위한 이벤트로 기능했다. 삼계탕, 추어탕, 염소탕, 장어구이 등 전통 보양식들의 공통점은 단백질이 풍부한 식재료라는 점이다. 1970~80년대만 해도 자라, 개구리, 뱀, 고양이까지 보양식이라 불렀다. 음식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기력’을 보충하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었던 것이다. [도문대작]과 [증보산림경제] 에는 소·돼지·멧돼지·닭·꿩·토끼·양·염소·개·거위·오리·매·노루·사슴·표범·곰의 발 등이 양생음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해산물로는 전복·생굴·해삼·조기·청어 등이 양생식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축산물로는 한우곰탕, 오리탕, 염소탕 등이 인기였고, 수산물로는 장어, 낙지, 문어, 전복 등이 인기를 끌었다.
현대 보양식의 딜레마와 변화
영양 과잉 시대의 역설
현대에 와서 보양식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과거와 달리 식재료가 풍부하고 육체노동에서도 벗어났으며, 각종 건강기능식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날 대표 보양식들의 한 끼 열량은 성인 하루 권장량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영양 과잉 상태라서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고칼로리 보양식은 오히려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유진 맛 칼럼니스트는 “현대인들 같은 경우 한여름이라고 해서 특별히 영양을 챙겨 먹어야 할 만큼 영양이 부족하지 않고, 일단 성인병이나 이런 것들이 과식하고 영양분이 남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보양식 시장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과학적 근거보다는 습관적 인식, 실제 기능보다는 마케팅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보양식의 실제 영양학적 가치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양식’ 시장경쟁이 치열한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외식업계의 변화와 간편 보양식의 등장
10년 전만 해도 삼복 시즌은 외식업계의 명절이었다. 복날 특수는 설과 추석 양대 명절만큼 중요했고, 특별 메뉴를 개발하고 홍보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역대급 무더위가 예고되어 있지만 외식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며 간편 보양식 수요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반려동물용 보양식의 출현은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결론: 변화하는 보양식,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
보양식의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가 변해도 ‘건강에 좋은 것을 먹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타락죽과 각종 귀한 재료로 만든 죽들이 보양식이었고, 근현대에는 삼계탕과 곰탕이 주류를 이뤘다. 현재는 간편 보양식과 심지어 반려동물용 보양식까지 등장했다.
보양식 문화의 변화는 단순한 음식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관과 경제 상황, 영양 상태의 변화를 반영한다. 과거 영양 부족 시대의 보양식은 실질적인 영양 보충의 의미가 있었지만, 현재는 심리적 만족과 문화적 관습의 의미가 더 크다. 그럼에도 보양식 문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음식을 통해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 욕망 때문이다. 다만 그 대상이 사람에서 반려동물로까지 확장된 것이 21세기 보양식 문화의 새로운 특징이라 하겠다. 앞으로 보양식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과 음식을 통한 치유에 대한 믿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