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아웃 선정 세계 12위, 성당 뒷 골목 탐방 후기
성당 앞에서 셔터만 누르고 돌아서던 동네가 세계 순위에 올랐다. 영국 여행·문화 매체 타임아웃(Time Out)이 2026년 9월 16일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쿨한 동네 40곳’에서 호찌민의 떤딘(Tan Dinh)이 12위를 차지했다. 같은 리스트 1위는 서울 종로3가다. 타임아웃이 떤딘을 고른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모두가 찍는 분홍 성당이 아니라 그 뒤편 골목이 진짜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지 하루를 들여 걸어 봤다. 올해 떤딘은 성당 150주년과 시장 100주년이 한꺼번에 겹친 해이기도 하다. 이번 호 트래블에서는 떤딘이 뽑힌 배경과 직접 걸어 본 코스, 그리고 산책 팁을 정리한다.
왜 떤딘인가 타임아웃이 고른 ‘성당 뒤편’
타임아웃의 ‘쿨한 동네’ 순위는 매년 가을 나온다. 세계 각 도시의 현지 필진이 지금 가장 활기 있는 동네를 추천하면, 편집자 패널이 음식·음료, 나이트라이프, 독립 상점, 거주 적합성, 커뮤니티 등의 기준으로 검증해 순위를 매긴다. 올해는 40곳이 이름을 올렸다. 1위 종로3가에 이어 2위는 모로코 라바트의 로세앙 지구, 3위는 그리스 아테네의 네오스 코스모스였다. 떤딘 바로 앞 11위는 스페인 발렌시아의 루사파, 바로 뒤 13위는 리스본의 상벤투다. 동남아에서는 방콕의 딸랏너이가 14위로 떤딘의 뒤를 이었다.

종로3가가 1위에 오른 배경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동네는 2021년 같은 리스트에서 3위였다. 타임아웃 트래블 에디터 그레이스 비어드(Grace Beard)는 CNN 인터뷰에서 늦은 저녁 야외 식사 문화와 독립 상점들이 늘어난 것이 1위로 올라선 이유라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온 독자라면 서울이 1등을 한 리스트에서 자신이 사는 도시의 동네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떤딘 항목은 타임아웃 아시아의 기고가 조이 갠(Joey Gann)이 썼다. 요지는 이렇다. 호찌민을 찾는 거의 모든 방문객이 떤딘의 ‘디즈니 핑크빛’ 성당을 찍고는 곧장 시내로 돌아간다. 그러나 성당 뒤에야말로 진짜 동네가 있고, 그곳에는 호찌민 중심가에서 거의 사라진 것, 바로 ‘고요함’이 남아 있다. 1군의 고층 빌딩과 루프톱 바가 점점 다가오는데도 이 구역만은 낮은 건물, 낮은 소음, 그리고 좋은 음식을 지켜냈다는 평가다.
호찌민의 동네가 이 리스트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3군, 2020년 빈탄군(32위)이 이름을 올렸고, 2024년 타오디엔, 2025년 응우옌타이빈(11위)에 이어 올해 떤딘까지 3년 연속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별도 리스트인 ‘세계에서 가장 쿨한 거리’에서 옛 4군의 빈카인(Vinh Khanh) 거리가 31곳 중 10위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앞선 동네들과 떤딘은 결이 조금 다르다. 응우옌타이빈이 새로 문을 연 피자집과 칵테일 바, 이전해 온 오마카세로 주목받았다면, 떤딘을 설명하는 단어는 150년, 100년, 80년 같은 숫자들이다. 원래 있던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사이를 젊은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는 점이 이번 선정의 핵심으로 읽혔다.
직접 걸어 보니 하루 동안 만난 다섯 개의 시간
이번 산책은 타임아웃이 제안한 ‘완벽한 하루’ 동선을 뼈대로 삼았다. 성당에서 출발해 시장, 골목 식당, 옛 특공대 거점 카페, 바(bar) 거리를 지나 운하에서 해 질 녘을 맞는 코스다. 걷는 거리는 길지 않았다.
첫 번째 시간: 150년 된 분홍 성당
출발은 하이바쯩(Hai Bà Trưng) 거리 289번지의 떤딘 성당(Nhà thờ Tân Định)이다. 정식 이름은 ‘예수 성심 성당’이다. 교구 기록에 따르면 1870년 착공해 1876년 12월 16일 축성했으니, 올해 12월 16일이 정확히 150번째 생일이다. 교구는 이미 기념 분위기에 들어갔다. 지난 6월 12일 열린 수호성인 축일 미사를 ‘성당 150주년’을 주제로 봉헌했다.
첫 성당을 세운 사람은 프랑스인 에베야르(Donatien Éveillard) 신부다. 그는 1875~1876년 직접 자금을 모으고 공사를 지휘해 1만5천 피아스트르(당시 약 3만8천 프랑)로 성당을 완공했다. 지금 서 있는 건물의 대부분은 1890년대 초 후임 루베(Louis-Eugène Louvet) 신부가 복권까지 발행해 자금을 마련한 뒤 1896~1898년 다시 지은 것이다. 건축 양식은 로마네스크를 기본으로 한다. 이 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분홍빛은 1957년 보수 때 입혀졌다고 전해진다. 외벽은 연어빛 분홍, 내부는 딸기색과 크림색이다.
성당 옆 건물에도 사연이 있다. 에베야르 신부는 성당 곁에 고아원과 기숙학교를 세웠는데, 그 건물 일부는 지금도 수녀회가 쓰고 있고 대부분은 하이바쯩 중학교(295 Hai Bà Trưng)로 바뀌었다. 교구 신자는 현재 약 6,500명이다. 관광 명소이기 전에 지금도 매일 미사가 열리는 동네 성당이라는 점은 기억해 두면 좋겠다.

성당 앞 건물에서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
두 번째 시간: 100년 된 ‘부자 시장’
길을 건너면 노란 외벽 위로 종탑 세 개가 솟은 떤딘 시장(Chợ Tân Định, 314~336 Hai Bà Trưng)이 나온다. 이 시장도 올해 한 세기를 맞았다. 시작은 1870~1880년대 ‘푸호아(Phú Hòa) 시장’이라는 마을 장터였다. 1926년 당시 프랑스 당국이 11만 피아스트르를 들여 새로 짓기로 하면서 떤딘 시장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듬해인 1927년 문을 열었다. 프랑스 SIDEC사가 설계한 약 3,000㎡ 규모의 건물이다. 가운데 종탑에는 지금도 옛 청동 종이 걸려 있다.

호찌민시는 2025년 3월 18일 이 건물을 시급 건축예술 유적으로 지정했고, 같은 해 11월 21일 현판식을 열었다. 떤딘방은 올해 7월 24일 ‘떤딘 시장 100년, 정체성과 자부심’을 주제로 100주년 기념식을 치렀다. 이때 시장 역사를 담은 벽화와 차양 지붕, 무료 식수대가 함께 공개됐다. 기념 기간에는 상인들이 일제히 할인 행사를 열고 아오자이와 아오바바를 맞춰 입었다. 이 행사가 시장에 새로운 인상을 남기고 매출에도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옛 사이공 사람들은 이곳을 ‘부자 시장’, ‘콧대 높은 시장’이라 불렀다. 개장 당시 다른 시장보다 물건값이 조금씩 비쌌기 때문이다. 지금은 원단과 의류, 신선식품과 건어물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하나 짚어둘 것이 있다. 타임아웃은 이 시장 건물이 2027년 7월 100주년을 맞는다고 썼다. 반면 현지는 착공 연도인 1926년을 기준으로 올해 이미 100주년 행사를 치렀다. 개장 연도로 세느냐 착공 연도로 세느냐의 차이이니, 어느 쪽이든 지금이 ‘100주년 시즌’인 셈이다.
세 번째 시간: 아침은 바인꾸온, 점심은 바인쎄오
시장 구경 전후로 끼니는 타임아웃 추천을 따랐다. 아침은 ‘바인꾸온 떠이호 127(Bánh Cuốn Tây Hồ 127)’이다. 쌀가루 반죽을 얇게 쪄서 다진 고기와 목이버섯 소를 넣고 돌돌 만 바인꾸온(bánh cuốn)을 파는 집이다. 타임아웃은 이곳을 길거리 노점에서 출발해 미쉐린 가이드에 새로 이름을 올린 집으로 소개했다.

점심은 딘꽁짱(Đinh Công Tráng) 거리의 ‘바인쎄오 46A(Bánh Xèo 46A)’다. 쌀 반죽에 새우와 고기, 숙주를 넣어 바삭하게 부친 베트남식 부침개 바인쎄오(bánh xèo) 전문반쎼오 46a점이다. 타임아웃은 이 집이 1940년대부터 숯불에 바인쎄오를 부쳐왔다고 소개하며, 유명 셰프 방송을 탄 뒤 맛이 변하는 집이 많은데 이곳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평했다.

네 번째 시간: 김치를 곁들인 껌떰, ‘껌떰 다이한’
배를 채우고 당중(Đặng Dung) 거리로 접어들었다. 현대식 건물이 늘어선 길 중간에 2층짜리 목조 가옥 한 채가 끼어 있다. 113A번지 ‘카페 도푸 – 껌떰 다이한(Cà phê Đỗ Phủ – Cơm tấm Đại Hàn)’이다. 이번 산책에서 한국 독자에게 가장 각별할 곳이 여기다. 간판의 ‘다이한(Đại Hàn)’은 ‘대한(大韓)’을 베트남식으로 읽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 집은 1946년 지어졌다. 원래 도미엔(Đỗ Miễn)·응우옌티스(Nguyễn Thị Sự) 부부가 껌떰(cơm tấm, 부서진 쌀로 지은 밥에 구운 돼지고기를 얹은 남부식 덮밥)과 커피를 팔던 밥집이다. ‘도푸’는 ‘도(Đỗ)씨 집안의 집’이라는 뜻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동네 밥집이었지만, 1968년 무신년 구정 공세를 앞두고 사이공-자딘 특공대가 서신과 문서, 의약품 등을 주고받던 연락 거점으로 쓰였다. 이 거점들을 마련한 인물은 특공대 지휘관 쩐반라이(Trần Văn Lai)다. 2층 나무 옷장 뒤에는 이웃집과 맞닿은 벽 사이로 폭 20㎝도 안 되는 비밀 공간이 숨어 있다. 타임아웃도 이 옷장을 콕 집어 소개했다. 길 바로 옆이 당시 남베트남군 고위 장성의 자택이었다니, 가장 위험한 곳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쓴 셈이다.

‘다이한’이라는 이름은 당시 손님들에게서 나왔다. 베트남 매체들에 따르면 길 건너편에 한국인들이 머물렀고, 이들이 단골이 되면서 ‘한국 손님 밥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만 그 한국인들이 누구였는지는 매체마다 기록이 엇갈린다. 참전 군인이라는 기록도 있고, 도로·교량 기술자라는 기록도 있다. 이 상호가 한국인 손님을 모으는 동시에 거점을 감추는 위장 역할도 했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도 이 집 껌떰에는 김치가 곁들여 나온다. 반세기 전 한국 손님들 입맛에 맞추던 흔적이 메뉴로 남은 것이다.

다섯 번째 시간: 오래된 식당과 새 셰프들
당중 거리에서 몇 걸음 떨어진 당떳(Đặng Tất) 거리에는 떤딘의 ‘유명하지만 요란하지 않은’ 성격을 보여주는 집이 있다. 10번지의 ‘꾹가익 꽌(Cục Gạch Quán)’이다. 건축가가 베트남 시골집처럼 꾸민 가정식 식당이다.
2011년 11월 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 부부가 베트남 출신 입양아 팍스 티엔과 함께 점심을 먹었고, 2019년 12월에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베트남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저녁을 이곳에서 먹었다.

떤딘의 저녁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졌다. 하노이의 테이스팅 메뉴 1세대 셰프 두 명이 남부 첫 매장으로 이 동네를 골랐다. 핀란드 경력을 살려 북유럽풍 베트남 요리를 선보이는 호앙뚱(Hoàng Tùng) 셰프의 식당은 최근 ‘Ö’라는 이름으로 새로 문을 열었다. 꽝중(Quang Dũng) 셰프는 식물성 재료만 쓰는 ‘테일스 바이 챕터(Tales by Chapter)’를 운영한다.
테일스 바이 챕터는 지난 6월 4일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2026에서 지속가능한 미식에 주는 그린스타를 처음 받았다. 버려지는 재료가 없도록 손질하고 남은 부분을 발효해 버섯 가룸과 옥수수 누룩을 만들고, 달랏의 협력 농장과 식당 옥상 텃밭에서 재료를 얻는다. 같은 시상식에서 이 식당의 응우옌타인번(Nguyễn Thanh Vân)은 서비스상도 받았다. 베트남 그린스타 세 곳 가운데 호찌민 식당은 이곳뿐이다. 타임아웃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에만 떤딘 안의 식당 세 곳이 처음으로 미쉐린의 이름을 얻었다.

마무리: 운하 산책
타임아웃의 마지막 조언은 동네 북쪽 경계인 니에우록-티응에(Nhiêu Lộc–Thị Nghè) 운하로 나가 해 질 녘을 맞으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3군에 위치한 헬스장으로 갈때 지나가는 도로여서 별로 놀랍지는 않다. 이곳은 사이공에서 보기힘든 잘 정비된 강변도로와 더불어 운동기구 등이 갖추어져 있다.
밤시간에는 산책 및 조깅을 나온 주민들과, 바로 옆에 있는 까페들이 인상적이다, 운하 북쪽이 남쪽보다 정비가 잘되어 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지 말고 걸어서 바로 운하변으로 나오는것을 추천한다.

헷갈리는 주소 — ‘떤딘 성당’은 떤딘방에 없다
걷다 보면 한 가지가 헷갈린다. 모두가 ‘떤딘 성당’이라 부르는 성당이 행정상 떤딘방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당은 원래 3군에 속했고, 2025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에는 쑤언호아(Xuân Hòa)방 소속이다.
같은 개편으로 떤딘방의 경계도 바뀌었다. 국회상무위원회 결의 1685호에 따라 옛 1군 떤딘방 전체와 다까오(Đa Kao)방의 나머지 지역이 합쳐져 지금의 떤딘방이 됐다. 결의는 2025년 6월 16일 발효됐고, 새 행정단위는 7월 1일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새 떤딘방은 면적 1.23㎢, 인구 약 4만8천 명이다. 그래서 옛 다까오 지역에 있던 테일스 바이 챕터(10 Nguyễn Thành Ý)는 이제 떤딘방 주소를 쓰고, 정작 ‘떤딘’의 상징인 성당은 이웃 방 주소를 쓴다. 타임아웃이 말한 ‘성당 뒤편의 진짜 떤딘’은 행정 지도로 봐도 맞는 말인 셈이다.
원래 있던 것들로 ‘쿨해진’ 동네
떤딘을 하루 걸어 보니, 타임아웃이 말한 ‘쿨함’은 화려한 신규 개장보다 오래 버틴 것들에서 나오고 있었다. 150년 된 성당, 100년 된 시장, 80년 된 목조 밥집이 그대로 서 있고, 그 사이 골목에 하노이에서 내려온 젊은 셰프들과 위스키 바가 자리를 잡았다. 서울 종로3가가 오래된 한옥 골목 위에 새로운 밤 문화를 얹어 세계 1위에 올랐듯, 떤딘도 비슷한 공식으로 12위에 오른듯 하다. 그리고 이곳에는 종로3가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냄새나지만 정비가 잘되어 있는 운하다.
분홍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면 한 블록만 더 걸어 들어가 보자. 그 골목 어딘가에서 김치를 곁들인 껌떰 한 접시가 반세기 전 한국과의 인연을 조용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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